55) 대한민국 부도나다 1 (시그널)

셸 위 댄스 -인생의 여정을 소개합니다

by 장하늘

55화




서양수국(꽃말: 교만, 허풍, 변심, 냉담, 처녀의 꿈)



대한민국 부도나다 1 (시그널)


1997년 11월 21일 대한민국은 외환위기를 맞으며 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했다. 22일 당시 대통령이었던 김영삼 대통령이 TV에서 침울한 표정으로 발표했다. "대통령으로서 국민 여러분께 참으로 송구스러울 뿐입니다. 우리 모두가 다시 한번 허리띠를 졸라매고 고통을 분담하여 위기 극복에 나서야 할 때입니다." 23일 구제 금융 지원에 따라 IMF 실사단이 국내에 들어왔다. 그들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긴축을 요구했다. 뉴스에서는 각 개인들이 소장한 장롱 속 달러를 모은다며 연이은 보도가 이뤄졌다.


국가도 하나의 회사처럼 부도가 날 수도 있다는 걸 국민들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금융위기를 맞았다고 나라가 없어지는 게 아니다. 말 그대로 나라의 부도는 회사의 부도와 비슷하다. 다행스러운 것은 회사들 같은 경우 흡수합병되어 다른 회사에 편입되거나 폐업하고 없어질 수 있는데 그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다른 나라들은 그런 걸 꿈꿨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대한민국은 다른 나라에 편입되지 않았고 발기발기 찢기거나 소멸하지 않았다. 개인이 파산이나 회생 절차를 밟는 것처럼 나라도 신용 회복 같은 절차를 밟기 위해 국제금융기구 IMF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대부분은 사실 IMF가 발표날 때까지만 해도 그게 뭔지조차 몰랐다. 이후에도 외환위기라는 말처럼 '외화가 나라에 없구나' 정도로 받아들였을 뿐이다. 나라에 위기가 발생했고, 도움을 요청한 대한민국을 IMF라는 기구가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상은 많이 달랐다. IMF에 신청한 순간 대한민국의 신용도가 바닥을 찍은 것이다. 신용도 하락은 원화, 환율을 폭락시켰다. 수출을 주도로 하는 많은 기업들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국제 금융에 도움을 요청한 후 대한민국의 많은 대기업들이 줄도산했다. 30대 대기업 17곳 부도, 127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대기업이 이 정도 규모였으니 관련된 중소기업의 줄도산은 당연한 결과였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풍요로운 줄 알았던 세상이었다. 우리 회사만 해도 95년, 96년은 가장 많은 정규직원을 채용했다. 양적으로 팽창하는 시기였고 사람들은 여유로워 보였다. 취직은 쉬웠고 대학문도 더 넓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외환위기 전에 곳곳에서 이미 신호를 보냈는지도 모른다. 유교의 나라 동방 예의지국인 대한민국에서 없었던 사건들이 다발적으로 일어났다. 납치, 살인, 여러 가지 강력사고가 발생됐다.


1991년 초등학생 5명이 한날한시에 실종됐다.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이라고 불렸다. 사건 발생 후 11년이 지난 2002년 성산 고등학교 신축공사장 뒤쪽에서 아이들의 유골이 발견됐다.


1993년 6월 10일 대한민국 육군 소도 군단 한 포병대대가 훈련하다 폭발사고가 났다. 예비군 20명이 사망했다.

93년 10월 10일 전라북도 부일 군 위도에서 110t 급의 여객선 서해 훼리호가 침몰했다. 사고로 292명이 사망했다.


93년~94년 동안 5명을 살해한 지존파 엽기 연쇄살인이 있었다. 이들 조직폭력배는 시체를 은닉하기 위한 사채 소각시설과 창살 감옥까지 갖추어놓고 살해했다. 사체를 토막 내 인육을 먹는 등 엽기 행각이 드러났다.


국가부도 되기 불과 3년 전 등굣길에 성수대교가 붕괴됐었다. 한강에는 여러 개의 교각이 있다. 강서와 강남 강북 서울을 오고 갈 때 구를 넘어가려면 한강을 가로지르게 되어있다. 성동구 성수동과 강남구 압구정동을 연결하는 성수대교의 상부 트러스 48m가 붕괴됐다. 텔레비전에서 다리가 무너지는 사고가 반복해서 재생되며 당시의 위급한 상황이 흘러나왔다. 고장 난 장난감처럼 다리의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갔다. 사고 시간은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였다. 시민 49명이 한강으로 추락했고 그중 32명이 사망했다.


1995년 4월 28일 대구 달서구 상인동의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상인역 공사 도중 가스가 폭발했다. 당시 폭발음과 함께 50m의 불기둥이 치솟았다. 등굣길 학생 42명을 포함 101명 사망, 202명이 부상을 입었다.


1995년 6월 29일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삼풍백화점 외 붕괴됐다. 건물이 무너지면서 종업원과 고객들이 다치거나 죽었다. 사망자 502명 부상자 937명 실종자 6명이었다


겉보기에 1996년 대한민국의 눈부신 발전을 이루고 있었다. 10월 13일 오후 7시 30분 잠실 주 경기장에서 마이클 젝슨이 내한공연을 했다. 입장료는 12만 원이었다.


신창원은 1997년 1월 감방 화장실 쇠창살을 자르고 비좁은 틀을 빠져나가 2년 넘도록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 다녔다. 그는 도피 기간 중 절도 104건, 강도 5건, 강도 강간 1건 등 총 142건의 범죄를 저질렀다. 그가 잡혔을 때 마치 영웅놀이를 하듯 사회적 약자 코스프레를 했다. 그가 입은 알록달록한 티셔츠는 유행을 타고 몇몇 추종자들이 그를 따라 하며 영웅시했다.


1999년 6월 30일 경기도 화성군에 위치한 청소년 수련원인 씨랜드에 화재가 발생하여 유치원생 19명과 인솔교사 및 강사 4명 등 23명이 숨졌다.


일제 치하에서 강대국의 개입으로 조선은 해방을 맞았다. 식민지 시대의 종식을 기뻐할 틈도 없이 한반도에서는 동족 간의 피의 전쟁 625가 발발했다. 전쟁으로 황폐회 된 나라는 그야말로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다. 복구를 위해 모든 국민들이 100m 달리기를 하듯 뛰기에 바빴다. 반쪽으로 분단된 남한에서는 과거사 청산도 없이 빠른 소용돌이를 타고 시간이 흘러갔다. 통일은 분단의 상처를 온몸으로 받아낸 자들만 느끼는, 꿈속에 만 존재하는 소망이 되었다. 기득권을 갖게 된 자들은 대부분 과거를 묻지 않기를 바랐다. 국민들은 정의를 찾기 전에 살아내는 것이 급급했다. 가족들과 부모, 새끼들 입에 밥숟가락을 넣는 것이 중요했다. 개천에서 용 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교육뿐이 없었다. 발 빠른 고속 성장, 내실을 따지기에 앞서 우선 양적인 팽창에 박차를 가할 뿐이었다.

대한민국은 '뻥~' 소리도 제대로 못 내고 그렇게 펑크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