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찰스 디카스의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졌다. 영화로 만들면서 시대가 달라지면서 내용도 일부 각색이 됐다. 찰스 디킨스는 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하급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빚을 지고 감회에 간 아버지 때문에 어려서부터 공장 노동을 하기도 했고 어려운 유년을 보냈다. 영화 <찰스 디킨스의 비밀서재>를 보면 작가의 불우한 어린 시절이 잘 드러난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올리버 트위스트>에도 하층민 인생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데 작가의 어린 시절과 닮아있는 부분이 있다.
영화 줄거리
주인공 핍(에단 호크)은 어린 시절 부모를 일찍 여의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누나와 매형 조(크리스 쿠퍼)의 손에서 자랐다. 누나는 핍을 학대하고 남편 조에겐 폭력을 썼다. 핍과 조는 서로 동지애를 느끼며 친구처럼 지냈다. 조는 선하고 순수한 사람이다.
어느 날 핍은 부모님 묘지에 갔다가 탈옥수 러스티그(로버트 드 니로)를 만나게 된다. 탈옥수는 족쇄를 차고 있었는데 줄칼과 음식을 가져오라고 협박했다. 핍은 누나 몰래 줄칼과 음식을 가져다준다. 죄수는 붙잡혔고 그때의 기억은 어린 시절 공포로 남아있게 된다.
동네 부자인 중년 부인 해비셤은 핍에게 자신의 수양딸 에스텔라(기네스 펠트로)와 놀아달라고 부탁한다. 해비셤은 약혼남에게 버림받은 기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진한 화장을 하고 은둔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해비셤은 수양딸 에스텔라를 자신을 이용하고 버린 남자들에게 복수하는 마음으로 키웠다. 에스텔라를 차갑고 도도한 여성으로 키워서 남자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으로 대리만족을 하고 싶었다.
핍은 불만 없이 살고 있었으나 에스텔라를 만난 후 자신의 형편을 비천하게 여기게 된다. 에스텔라를 좋아할수록 매형 조에 대한 부끄러움도 생긴다.
그림을 그리던 핍에게 어느 날 변호사가 찾아왔고 유산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려줬다. 누구의 유산인지는 비밀이었고 유산을 받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뉴욕에 가서 개인 전시회를 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핍은 뉴욕에서 전시회를 열었고 그림을 다 팔게 되면서 성공하게 된다. 뉴욕에서 다시 만난 에스텔라는 핍의 기대와는 달리 곧 결혼을 할 거라는 소식을 전한다.
매형 조가 전시장에 찾아왔지만 핍은 조에게 상처를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는 핍을 응원하며 돌아간다.
이후 핍은 유산을 준 사람을 알게 됐다. 핍의 예상을 벗어난 사람이었다. 어릴 적 트라우마로 남았던 죄수 러스티그가 유산을 것이다. 러스티그는 핍이 선한 사람이란 걸 알고 있으며, 어렸을 때 자신에게 베푼 선의를 은혜로 갚은 것이라고 유산을 준 이유를 핍에게 말해준다.
핍은 죄수 러스티그가 남긴 유산의 의미를 되새기며 자신의 행동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성공했다고 자신에게 관대했던 조에게 함부로 말해서 상처 주고 말았다. 핍은 조를 만나기 위해 고향으로 찾아가고 조는 핍을 받아준다.
에스텔라가 이혼을 하고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핍은 해비셤의 대저택으로 간다. 그곳에서 에스텔라와 그녀의 어린 딸을 보게 된다. 에스텔라와 핍은 서로의 손을 잡는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네이버 검색 참조
다시 이어가는 이야기에 영화, 위대한 유산으로 시작하는 건 나름의 이유가 있다. 첫째, 내가 이어갈 이야기가 1998년도 당시의 일들이기 때문이고, 이 영화가 98년도에 개봉했기 때문이다. 둘째, 개봉 후 영화관에서 영화를 봤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셋째, 영화 속 주인공 핍이 위대한 유산을 받은 것처럼 나도 핍처럼 위대한 유산을 받았기 때문이다.
핍은 실체가 있는 러스티그에게 유산을 받았다. 나와 다른 점은 나는 그 실체가 특정 1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일을 하거나 살면서 그때마다 유산을 남겨주는 러스티그들이 있었다. 내 이야기를 하면서 여정 속에 수많은 러스티그들이 소개될 것이다. 그리고 핍에게 매형 조가 있었다면 나에게 조와 같은 사람 중에 그 대표적인 사람이 작은언니다. 조와 같은 사람도 한 명이라고 말할 수 없다. 재밌게도 나에겐 미스 해비셤도 있었고 핍을 때렸던 누나 같은 존재도 있었다. 그리고 에스텔라도 있었다. 어떤 때는 연인으로, 어떤 때는 친구로, 어떤 때는 동료로, 한 명의 에스텔라가 아니라 각기 다른 에스텔라가 있었다. 비유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한 편의 영화에 자신의 인생을 대입해 보면 그 흐름이 비슷한 경우가 종종 있다. 노래도 그렇다. 한 곡의 노래에 삶 전편에 걸친 스토리가 있기도 하다. 전편이 아니더라도 순간으로 생각하면 노래마다 우리들의 찰나가 그 가사 속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유행가 노래 가사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라고 하지 않던가?
불혹이라는 나이를 넘어 지천명으로 가는 길에는 매 순간 '감사'라는 띄어쓰기가 있다. 지천명에서 조금 더 현명해진다면 이순으로 가는 길에는 '감사'가 바탕이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에 힘쓰는 이순을 넘어가고 종심을 맞이했을 때는 말하는 것에 부끄럽지 않지 않을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잘 산다는 것이 여간 쉬운 게 아님을 알게 된다. 지금은 불혹을 넘어섰으니 얼굴에도 책임을 지려면 정성을 다해야 한다.
40은 미혹되지 않는다 하여 불혹,
50은 하늘의 명을 알았으니 지천명,
60은 남의 말을 들으니 이순,
70은 마음속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해도 법도에 넘어서지 않으니 종심,
20여 년 전 일들을 복기하는 건 팩트체크가 종종 필요해진다. 가족들에게 이런저런 일을 묻고 기억을 다시 떠올린다. 일종의 인터뷰를 하는 것이다. 기억에는 왜곡이 있어서 팩트체크에 한계가 있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최대한 사실에 근거해서 기록하려고 노력 중이다. 가족들과 옛날이야기를 하면서 더 많이 대화하며 웃을 수 있다는 것도 글쓰기를 하면서 받는 귀중한 선물이다.
별별챌린지 2기 66일간의 여정이 끝이 났다. 시작은 별별 챌린지라는 동기부여 덕분에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아직 나의 이야기는 80%가 남았다. 매일 글을 쓴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경험했다. 글 쓰는 시간과 장소가 40% 이상이 출. 퇴근 시간에 전철이라는 것만 봐도 그렇다. 매일 글쓰기에 도전한다기보다는 나의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려고 한다.
이어가는 글을 다시 시작하면서 누구나(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함께 써보자고 권하고 싶다. 역사기록도 잘, 잘못을 판단하지 않고 사실에 근거해서 쓰이는 실록이 가장 가치 있다고 하지 않던가? 나의 역사를 기록하는 건 나에게 아주 큰 가치가 있다. 지금 내가 이어가는 기록은 나에게 위대한 유산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삶이 곧 여행이다'라고 쓴 건 4년 새벽을 담은, 새벽을 닮은 그녀들과 처음 책을 낼 때 나의 주제글이었다. 그때 그 글이 수장되었기 때문에 지금 <셸 위 댄스>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산다는 게 여행이라고 느낀다. 그리고 수많은 노래는 우리들 인생이 빚어낸 가락이다. 흥에 겨운 몸짓, 기쁜 환호, 고통에 절규하고, 흐느끼는 몸짓, 하나하나의 움직임은 춤이 된다. 블로그에 쓰는 이 글이 나의 해우소에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나의 이야기를 하고,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블로그가 소통의 장소가 되고, 내 글이 공감이 되고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 모두에게 위로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