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고가

셸 위 댄스- 인생의 여정을 소개합니다

by 장하늘

68화




개나리 (꽃말: 희망, 기대, 깊은 정, 조춘의 감격, 달성)



고가


98년, 나의 첫 직장에서는 매년 상반기, 하반기 두 번 고가 점수를 매겼다. 여직원들 같은 경우 자신의 업무를 아주 잘했을 경우 B를 줬다. 보통은 C나 D가 많았다. 여직원은 직장 경력이 쌓이더라도 호봉에 따라 급여가 달라지는 게 전부였다. 승진과 상관이 없어서 고가 점수는 큰 의미가 없었다. 불과 20여 년 전 1998년, 대한민국은 그랬다. 여직원이 승진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사원에서 대리까지는 승진을 했지만 대리가 되면 퇴직할 때까지 마지막 직급을 대리로 유지했다. 이후 세월이 지나면서 환경이 변화됐고 지금은 과장 이상 진급하는 경우도 많게 되었다. 승진과 무관했던 당시에는 여직원에게 높은 고가는 기대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고가를 잘 받으면 고가에 따라 수당이 지급되는 혜택이 있었지만 금액도 크지는 않았다.


고가 대상 인원을 살펴보면 대략 이랬다. 하나의 지점에 속한 내근직 직원만 생각해 보자. 지점 내 창구 텔러와 관리직 대략 10여 명, 각 영업소 소장님 15명 정도, 각 영업소 총무(여사원) 10여 명, 보상과 직원 20여 명, 전산 및 심사자 5명. 보통 50명 이상의 정규직 직원들이 한 지점 내에 고과를 받는 대상자였다. 승진이 필요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고과를 차등해서 주기 때문에 고과를 잘 받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따라서 3년 넘게 일을 했어도 고과에 대해 신경을 쓴 적도 없었다. 어차피 고과를 잘 받아도 특별한 것은 없었다. 그리고 평이한 고과를 받더라도 크게 불리할 것도 없었다.


부천지점 한마음 영업소에서 일할 땐 아주 재밌게 일했다. 경력이 몇 년 쌓인 것이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전반적인 부분이 두루두루 좋았다. 최고는 출퇴근 시간이 간소화돼서 하루에 절약되는 시간이 많았다. 소화할 수 있는 업무량이었고 같이 일하는 소장님과도 궁합이 잘 맞았다. 외야 사원분들인 보험설계사님들은 성격이 유순했고 일도 잘했다. 영업소를 위해 자발적으로 시도해 보는 많은 것들이 잘 돼서 사업장 분위기도 좋았다. 총무로서 하는 일도 무리가 없이 척척 진행됐다. 그렇게 6개월 정도가 지났다.

대부분의 총무들은 고과에 큰 관심이 없었다. 매년 때마다 찾아오는 인사고과 시기가 됐다. 지점장님이 친히 전화를 주셨다. 지점장님은 자신과 함께 내가 부천지점으로 발령받은 동기라고 너스레를 하며 늘 잘해주셨다. 당시에는 부활 성과를 칭찬하기 위해 가끔 전화를 주시기도 했다. 그런데 의외의 소식을 전달해 주셨다. 고가 점수가 결정됐는데 올해는 특별히 내가 최고 고과를 받았다는 소식이었다. "네?" 영문을 몰라 대답하자 내가 고가 A를 맞았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고가 A를 여직원이 받는 경우는 아주 이례적이라는 말씀과 함께 축하 인사를 해주셨다.


고가 A는 보통 승진을 앞둔 소장님이나 과장님이 받는 고가였다. 지점이 성과가 좋은 경우 한두 명 정도만 고가 A를 받기 때문에 특수한 경우에만 받을 수 있는 점수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지점 자체가 지역단 내에서 중하위 권일 경우 고가를 A 받는 경우는 전무했다. 전 지점을 통틀어도 A라 고가를 받는 사람이 없을 때도 많았다. 그런 게 실정이었다. 오랜 경력이 있으신 지점장님도 여사원이 고가 A를 받은 경우는 거의 없는 일이라며 거듭 칭찬을 해주셨다. 전화를 끊고 옆에 계신 소장님께 말씀드렸다. 소장님도 소식에 놀라며 함께 기뻐해 주셨다.


신기했다. 애를 쓰고 최선을 다했을 때는 고작 중간 정도도 따라가기 힘들었는데 재밌고 즐겁게 일하는데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이다. 업무량으로 따지면 이전에 안양에서 근무할 때 더 많은 일을 했었다. 그런데도 평범한 성과는 인정받지 못했다. 혹여나 작은 실수가 있다면 그건 큰일로 번지게 될 수도 있었다. 때론 사소한 실수가 큰 약점이 되어 나쁜 평가를 받는 것도 쉬웠다. 고가 A를 맞았을 때 그 때문에 마냥 즐겁지 만은 않았다. 누군가는 힘든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을 텐데 티가 안 나는 시간을 보낼 것이기 때문이다. 즐겁게 일한 것이 더 좋은 결과를 내고 평가 또한 잘 받은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기분이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아이러니라고 생각했다.


그 아이러니에 대한 해답을 2023년 6월인 지금은 알 것 같다. 아들이 1년 전 생일 선물로 줬던 책 <The Having 저자 이서윤, 홍주연>을 지금 읽었기 때문이다. 자기 개발서를 많이 봤었고 한동안은 모든 자기 개발서를 멀리했을 때가 있다. 그때 받게 된 책이라서 바로 읽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번 생일날 생각이 나서 책을 읽게 되었다. 그런데 The Having에서는 내가 살면서 아이러니라고 생각한 부분에 대한 해답이 제시되어 있었다. 더 신기한 건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고가' 소제목 내용 중 아이러니라는 단어를 사용한 부분이다. 20여 년 전 이야기를 쓰고 있는데 그때 풀리지 않았던 아이러니에 대해 기록 중에 그 해답을 찾는 책을 동시에 읽는다니 기적이 일어나는 기분이다. 이것이 바로 Having이다. 책 이야기는 다음에 또 이야기를 풀어가려 한다.


고가 A를 받은 건 분명 행운이었지만 횡재는 아니었다. 그 모든 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전엔 일을 못했다가 잘하게 된 것도 아니었다. 그전이 있었기 때문에 행운도 따른 것이다. 모든 건 과정이었다.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조금 업무량이 줄었을 때 빠른 시간 내에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첫 직장의 습관은 몸에 배게 되어 이미 내 것이 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여유가 생겼을 때도 일을 찾아서 하는 게 습이 되어 다른 업무들도 해낼 수 있었다. 첫 근무지가 나에게 과도하지 않고 알맞은 업무량이었다면 그 또한 <습>이 되었을 것이다. [시작ㅡ과정ㅡ결과]가 모두 유기적이었으니 급작스럽게 일어난 횡재는 아니었다.


함께 일하는 소장님이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 주며 축하 세리머니를 해주셨다. 사무실에 기타를 가져다 놓으셨는데 기타를 집어 들었다. 소장님은 분위기를 띄우고 싶을 때 가끔 조회시간이나 석회 시간에 기타를 친 적이 있다. 그런데 축하 세리머니라니, 축하송 하나를 신청받는다고 하셨는데 나는 그냥 불러주고 싶은 노래를 듣고 싶다고 했다. 소장님이 노래를 해주셨다. 내가 속한 점포는 오롯이 나의 공간으로 채워졌다. 소중한 추억들이 하나둘씩 쌓이고 있었다.


참 잘했어요~
의 의미


글을 쓰며 고가 A는 나에게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봤다. 그건 <참 잘했어요>처럼 도장 같은 의미로 내게 남아있다. 초등학생 때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은 건 거의 운동회 때뿐이었다. 숙제는 잘 안 해가서 노트에 도장받은 기억은 없다. 그러나 운동회 때는 늘 도장을 받았다. 어릴 땐 달리기를 잘했다. 여러 면으로 운동회가 좋았다. 소풍 때 엄마는 가방 가득히 빵이나 음료수를 싸 주셨다. 그러나 한 가지 도시락은 김밥이 아닌 밥이나 다른 먹거리를 챙겨주셨다. 그래서 소풍 때는 도시락을 꺼내는 게 좀 창피했다. 반면, 운동회 때는 엄마, 아빠 그리고 가족들까지 모두 함께 왔었다. 그리고 음식도 만족스럽게 잘 챙겨 와서 먹었다. 100m를 전력질주해서 꼴인 점에 도달했다. 1등으로 도착줄을 끊으며 통과하면서 가족들의 모습을 눈으로 찾았다. 그리고 당당하게 <참 잘했어요>1등 도장을 받고 가족들이 있는 자리로 뛰어갔다.


이후 나는 고가를 받는 직장 생활을 한 적이 없다. 고가는 그때가 마지막으로 받은 것이다. 회사 다니면서 당시에는 여직원에게 이래 적으로 주었던 고가 A. 직장 생활을 참 잘했다고 칭찬해 주는 도장은 나에게 오랫동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인정받고 칭찬받는 건 늘 <하늘>을 춤추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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