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렛 (꽃말: 마음속에 감춘 사랑, 진실한 사랑, 예언, 사랑을 점치다, 자유, 비밀을 밝힌다)
탈옥을 꿈꾸다
98년, IMF 시기에 대한민국의 많은 회사들이 줄도산을 이어갔다. 우리 회사도 인원 감축을 몇 차례 진행하고 있었다. 여기저기에 퇴직자가 속출하고 있었다. 내가 아는 분 몇 분도 명퇴를 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은행이 망하는 것도 경험했다. 당시만 해도 아주 큰 은행인 제일은행, 조흥은행, 경기은행 등 은행들도 줄줄이 도산했다. 흡수합병이란 말이 여기저기서 일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우리 회사도 크고 작은 소식이 전해졌다. 위기, 위기, 위기 여기저기에 '위기를 극복하자'라는 슬로건이 붙어있었다. 경비를 줄이고 매출을 늘리고 기존 계약의 이탈을 줄이기 위한 캠페인이 펼쳐졌다. 정규직 직원을 상대로 회사에서는 벌써 몇 차례 명퇴 희망자 지원을 받고 있었다.
수많은 회사들이 도산했다. 가장들이 직장을 잃었다. 내 고등학교 친구는 IMF에 아버지 회사가 가장 많이 성장했다. 위기가 기회가 되는 사람도 있었다. 회사건, 사람이건 위기를 맞는 사람들이 있었고 기회를 맞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보험회사는 IMF 당시 '증원'에 열성을 다했다. 직장을 잃은 남편을 위해 여자들이 일터로 나왔다. 그런 여성들을 대상으로 리크루팅이 활발해졌다. 보험회사는 영업사원이 늘어나는 것이 아주 큰 자산이 된다. 영업사원들을 교육하면 그들은 우선 자신과 가족들의 보험을 재정비한다. 재정비를 통해 보험을 새로 가입하게 된다. 그 후 친지 지인 혹은 개척을 통해 보험영업을 시작하게 된다. 보험회사에서 매출이 늘어나려면 그전에 리크루팅이 선행되어야 한다. IMF에는 보험회사는 오히려 리크루팅이 잘 되는 호시절을 맞았다.
회사는 날로 성장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회사에서는 직원들을 상대로 위기라는 말을 반복했다. 나는 부천지점으로 발령받아서 오고 상반기 고과를 이례적으로 A를 받았다. 한마음 영업소는 매출이 꾸준하게 늘고 있었다. 증원도 잘 됐고 영업소 분위기도 좋았다. 인정받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IMF 구제금융은 우리나라에 돈을 빌려주면서 기업들을 상대로 비용을 절감하라고 강조했다. 회사는 비용 절감을 위해 구조조정을 확대해 나갔다. 정규직 직원을 정리하고 영업 직원을 계속 늘리고 있었다. 몇 차례나 명퇴 희망자 지원을 받고 있었다. 처음보다 이후 진행되는 명퇴 조건은 더 좋게 변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직장 생활을 한 분 중에 퇴직금과 명퇴 위로금으로 새 출발을 한다는 소식도 듣게 됐다.
명퇴는 애초에 나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일이었다. 우선 나는 최초부터 명퇴 대상자가 아니었다. 초창기에 명퇴는 경력이 최소 10면 이상 된 분들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계속 더 확대되는 구조조정으로 그 대상자의 폭이 확대됐다. 몇 차례 명퇴 희망자를 받게 되면서 대상자는 모든 정규직 직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명퇴 위로금도 차츰 금액이 더 확대되고 있었다. 새로 갱신되는 명퇴 희망자에게 이전보다 더 좋은 조건이 제시됐다. 그때마다 이번만은 이례적인 조건이라는 공지가 올라왔다. 정해진 만큼의 희망 퇴직자로 구조조정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강제적으로 권고사직을 진행할 수 있다는 회사 방침이 배포됐다.
명퇴를 떠나서 나는 퇴직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IMF 시기에 내가 받았던 대출이자는 정상 이자인데도 20% 가까이로 이율이 늘어있었다. 예금이율조차도 10% 이상을 줬을 때라서 대출이자는 천정부지로 올라갔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총을 쏘며 발생됐던 병원비'로 나에게는 2천만 원이 넘는 빚이 있었다. 회사를 퇴직하고 싶어도 그 빚 때문에 퇴직은 꿈같은 일이었다. 매달 나가는 이자는 30만 원이 훌쩍 넘었다. 매달 월급을 타도 이자를 내고 엄마에게 생활비를 드리고 나면 저축할 돈도 없었다. 대출 원금을 단돈 1원도 갚지도 못하고 오롯이 이자만 납입하고 있었다. 원금은 전혀 줄어들지 않고 매달 이자만 내는 것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아서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당시 나의 부족함에 집중했던 것 같다. 대출이자가 버거웠다.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그 부족함은 나에게 결핍이 되고 있었다. 중학생 때 공부하고 싶었고 고등학생 때는 대학교를 가고 싶었다. 그 모든 부분들이 나에게는 꿈을 못 이룬 아쉬움으로 남아있었다. 최근 책 THE HAVING을 읽고 나서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나는 당시 나의 결핍에 매립되어 있었다. 그 부족은 나에게 인지부조화를 일으켰다. 만족스러운 직장 생활에 대한 <가지고 있음>은 잊고 대출금으로 줄어든 통장 계좌와 꿈을 이룰 수 없다는 <없음>에 굴레에 갇혀버렸다. 나는 고마운 회사가 나를 속박하는 감옥처럼 느껴졌다. 감옥처럼 느껴지는 회사를 탈출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져갔다.
나는 수감자가 되어 감옥에 있는 죄수로 그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탈옥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대출금을 갚는 것이었다. 대출을 받을 때 애초에 직장인 대출을 받았다. 회사를 그만두면 그 원리금을 모두 갚아야 했다. 만약 갚지 않으면 이자는 두 배 가까이 오르게 되어있었다. 2천만 원이라는 돈은 나의 목에 칼을 채웠고 팔에는 수갑을 채웠으며 발에는 족쇄를 채웠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나의 처지는 나를 한없이 처량하게 만들었다. 탈옥 계획을 세웠다. 차츰 좋아진 명퇴 조건을 다시 계산해 보았다. 명퇴금이 무려 천이백만 원이 넘었었다. 퇴직금은 3백만 원 정도에 달했다. 그래도 5백만 원 이상이 부족했다. 5백만 원은 나에게 너무 큰돈이었다.
계산기를 두드리다가 마음을 다시 내려놓았다. 포기할 수밖에 없는 걸까? 탈출하고 싶었다. <부족, 없음>이라는 프레임에 나는 단단히 갇혀버렸다. 도망가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