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하지 않으면서 만나는 사람들이 달라졌다. 그리고 그들을 대하는 내 마음과 태도에도 변화가 있었다. 성인이 되고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들이 있었나 싶다. 가족들도 분명한 이해관계가 뚜렷해졌으니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폭넓게 생각한다면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은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돈을 버는 일과 관계가 전혀 없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했다.
생활이 단조롭게 되니 만나는 사람이 줄었고 움직이는 반경도 줄었다. 일상에서 루틴을 지켜야 하는 것으로 오전에 운동하는 것과 격주 주말에 독서모임 두 가지가 전부였다. 백수의 시간을 재밌게 채우기 위해 할 일을 추가했다. 놀거리를 찾다가 인터넷 커뮤니티 가입을 하기로 했고 테니스 게임하는 곳과 동네 모임 각각 한 곳에 참여했다. 단조롭던 생활에 활력을 찾고 바쁘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평일 루틴이 된 테니스 레슨을 받기 위해 광탄테니스장에 가면 나보다 몇 살 혹은 열 살 이상 많은 여성분들이 가장 많았다. 한량들의 집합소 같다는 생각이 스치는 곳이었다. 코치님도 나보다 연배가 많았고, 부부 몇 팀, 그리고 남성분들도 몇 분이 계셨다. 코치님은 늘 친절하고 체계적으로 레슨해 주셨고 다른 분들과 어울려 게임을 하라고 독려하셨다. 그러나 그곳의 폐쇄적인 분위기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어서 그 벽을 뛰어넘기엔 버거움이 있었다. 아니 굳이 그들이 만든 벽을 넘기 위해 노력할 필요를 못 느꼈다. 나는 타의에 의한 거리두기(?)에 겉돌며 혼자 운동하는 시간이 많았다.
레슨 받는 곳에서 게임을 자주 못하다 보니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참여하게 되었다. 인터넷 테니스 모임은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불특정인이고 그날그날 번개모임을 통해 만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게임에 참여하면 최소 한 시간에서 네 시간 동안 게임을 했고 게임비용은 보통 만원 미만이었다. 미천한 실력으로 참여했지만 늘 재밌게 게임할 수 있었던 건 주로 복식게임을 했고 참여자들이 늘 매너를 지켜주셨기 때문이다. 실력이 낮은 사람에게 고수님들은 매너 있는 게임을 해주시기에 게임은 져도 즐겁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단발성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아서 딱히 인간관계로 연관되는 일은 없었다.
동네 커뮤니티는 보통 맛집을 가거나 친목으로 술을 마시는 자리가 많았다. 일주일에도 몇 번씩 이곳저곳에서 번개모임이 있어서 내가 시간이 될 때 자유롭게 참여하면 됐다. 술을 잘 못 마시는 나는 먹고 싶었던 음식을 먹는 곳이나 생소한 장소에서 모임이 있는 경우 참여했고 하루를 재밌게 보낼 수 있었다. 동네 커뮤니티는 온라인에서도 소통할 수 있어서 그들과는 친밀해질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각자 다른 환경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라서 신기한 일들도 많아 관전하는 재미도 있었다. 별별 신기하고 지랄 맞은 사건사고도 많았다.
가장 큰 인간관계의 변화는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타났다. 시간에 쫓기지 않게 되자 피붙이인 가족들을 자주 보게 된 것이다. 아들이 당시 군복무를 하고 있어서 마음 한편이 더 허전했었다. 아들을 자주 못 보게 되니 관심의 대상이 다른 가족으로 발전했다. 시간을 내서 부천에 계신 엄마와 언니를 보러 갔고 전화도 종종 하게 되었다. 한동안 엄마와 언니를 보는 게 힘들었던 때가 있었고 그때는 일부러 가끔만 봤었다. 예전에 너무 잘하려고 노력할 때 그 무게감에 내가 깔려버려서 숨쉬기 힘들었을 때가 있었다. 그 후 한동안 소홀히 하고 멀리했던 틈을 가진 덕분에 마음이 어느 정도 가벼워진 것 같았다. 가족들이 소중하게 느껴지고 마음속에 몽실몽실 가족애가 피어올랐다.
엄마에게 이타적인 마음을 낼 수 있었던 건 한동안 철저히 이기적인 마음으로 나를 치료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일 할 때는 바쁘다는 핑계로 가장 소홀 해지기 쉬운 게 가족이었다. 일하지 않게 되면서 다시 그 존재가치가 얼마나 큰지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고 그들을 다시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