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때 제2외국어가 중국어였다. 중국어를 배워서 중국어에 능통해지면 꿈이 이루어질 줄 알았다. 이때는 진짜로 그럴 줄 알았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꿈의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그건 단지 미련에 대한 아쉬운 마음이 일으킨 착각이었을 뿐이었다.
멍청하면 손발이 고생하고, 잘못된 확신은 위험하다.
문제는 고지식과, 무지함을 겸비한 어린 날의 나는 굽이굽이 돌아 그 모든 오류들을 거쳐서 지나가고 나서야 조금 깨달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실패와 굴곡이 많았던 내가 겪은 오류를 누군가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만 있다면 이 한 몸 망가지는 건 달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글에는 내 못난 선택의 길이 고스란히 곳곳에 남아있다.
아무 생각이 없던 초등학생 시절이 지나 중학생 사춘기 소녀가 되었다. 소녀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맞아 삶과 죽음에 대해 고뇌했다. 유한한 인생에 의미 없는 삶, 허무한 죽음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다. 살아 있는 동안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생각이 깊어지면서 꿈, 희망에 대해 생각했다. 어릴 적 행복으로 가는 열쇠는 무엇일지 생각했다. 여러 가지 생각이 꿈틀거렸고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고민했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여행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여행을 하며 살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나는 돈이 없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 제2 외국어가 중국어였다. 돈을 벌면서 여행할 방법 중 고작 알고 있는 직업 정도가 번역이나 통역이었다. 그런데 영어는 자신이 없었다. 우연히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중국어를 배웠으니 단순한 생각에 중국어를 잘해서 번역이나 통역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단지 그게 이유의 전부였다. 아는 것이 없어서 온 착각, 꿈이 중국어 공부가 되는 오류가 생겨난 배경이다. 최초 꿈은 분명히 <여행>에서 시작했는데 <중국어>를 배우는 것이 소망이 되어 있었다.
나는 이걸 어이없게도 10여 년이 지나서야 알게 됐다. '내 꿈이 뭐였더라? 중국어를 배워서 중국어를 잘하는 거였나?'라고 생각해 보니 결론적으로 아니었다. 살면서 이렇게 큰 착각을 하는 경우가 있다. 나만 이런 착각을 하길 바란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그런 착각 속에 빠지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우리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찾아낸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수단과 방법들을 내 뜻과 상관없이 못하게 되는 경우들이 생길 수 있다. 좌절의 시간이 지나다 보면 어떤 수단이나 방법이 마치 목표로 둔갑되어 착각을 일으키는 경우가 생긴다. 그렇게 되면 원래의 목표는 까마득하게 잊고 과정이나 방법 중 선택된 한 가지가 과녁이 되어 그것만을 집중하게 된다.
특히 착각에 제일 빠지기 쉬운 것들 중에 <돈, 명예, 인기>등이 있을 수 있다. 돈을 가지고 싶었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명예를 얻고 싶었다면 그 이유도 깊이 생각해 보자. 인지도와 인기가 얻고 싶었다면 그 최초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한번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러니 타인에 대한 평가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꾸준하게 스스로에게 물을 필요가 있다. 그래야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가 있다. 꿈을 이루는 지름길은 꿈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아는 것이다. 목표지점 표시를 잘할 필요가 있다. 물론 길을 헤매는 것이 그저 여행길의 한 장소라고 생각한다면 상관이 없다. 길을 헤매는 순간에도 여행은 지속되며 그 헤매는 길에도 재미와 의미는 충분히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99년도에 나는 착각이 일으킨 꿈의 세분화를 쫓아서 드디어 학생이 되었다. 중국어로 <워 스 셰셩>은 나는 학생입니다를 뜻한다. 중국어를 배우는 건 재미있었다. 한국방송대 부천 학습관에서는 스터디 시간에 선배님들이 기초부터 가르쳐 주셨다. 매주 두 번 중국어 배우는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며 수업에 임했다. 중국어를 가르쳐 주시는 선배님 중 한 분은 중국에서 유학을 다녀오신 분이었다. 선배님의 중국 생활 이야기를 듣는 것도 특별한 재미가 있었다. 다른 한 분은 한국에서만 공부하신 분인데도 실력이 출중했다. 같은 동기 학우들은 나이가 많은 어른들이 많아서 12살 많거나 24살 이 많은 띠동갑 동기님들도 계셨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서로 호칭을 한동안 '000 학우님'으로 통일했었다.
대학 생활은 좋아하는 중국어만 공부하면 끝나는 게 아니었다. 교양과목 등 공부해야 할 게 많았다.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시험이 다가왔다. 중간고사 시험은 출석수업과 리포트로 나뉘었다. 출석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대체시험을 볼 수도 있었다. 출석수업일 동안에는 평일 동안 수업에 참석하고 다음 주에 필기시험을 쳐야 했다. 첫 중간고사를 통해 학교의 시험 방식을 익혀나갔다. 1학기 말이 되면 중간고사와는 달리 모두 객관식으로 시험을 치렀다. 방송통신대학교 시험은 딱히 시험범위가 정해져 있지 않고 책 전체를 대상으로 했다. 첫 기말고사를 경험하면서 책을 몇 번씩 완독 하는 걸 터득했다. 시험범위가 광범위하다 보니 공부해야 하는 양이 상당했다. 과별로 공부하는 방식이 조금씩 다를 수도 있지만 외국어 언어는 책 한 권을 달달 외워야 했다. 1학기 기말고사를 준비하면서 매일 공부만 했다. 평일은 회사에서 퇴근하면 도서실에 가거나 학습관에서 공부했다. 주말은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공부만 했다.
1년에 네 번의 시험이 있었다. 보통 한 학기에 여섯 과목을 공부했다. 중간고사는 세 과목은 출석수업이나, 대체시험을 선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세 과목은 리포트를 써야 했다. 한 학기 점수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시험을 합해서 평가됐다. 중간고사 점수 배점은 30%였다. 기말고사 객관식 배점은 70%였다. 쉬운 것 같지만 결코 쉽지 않은 점수방식이다. 예를 들면 중간고사를 100점 맞고 기말고사를 한 문제만 틀려야 A+ 점수를 맞을 수 있었다. 그러나 중간고사 점수는 굉장히 운빨이 중요했다. 아무리 리포트를 잘 써도 24점~28점 사이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리포트 점수가 특히 짜서 30점 만점을 주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러니 기말고사에 책 한 권을 달달 외워서 객관식에서 다 맞는다고 해도 A+는 못 맞는 점수였다. 방송대학교 시험을 치러보니 왜 이렇게 방송대학교 졸업이 힘든지 알게 되었다.
나는 99년에 빡센 기준이 있는 방송대에서 1학년을 보내고 있었다. "워 스 셰셩~" 수업 시간마다 함께 목소리를 높여 책을 따라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