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마지막 해인 1999년도가 되었다. 한 세기가 바뀌는 시점에 나는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만들고 싶었다. 비록 현실은 빚이 남겨져 족쇄를 찬 죄수가 되었지만 2천만 원이라는 감옥에서는 벗어났었다. 늪에 계속 빨려 들어가던 삶에서 기어 나왔으니 뭔가 나를 변화시키고 싶었다. 잘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잘 살고 싶은 마음은 늘 꿈을 꾸게 했다. 미래를 그리고 당당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나를 만나고 싶었다. 허황된 꿈이 아닌 현실에 맞게 희망 회로를 열심히 돌려보았다. 내 삶의 20세기와 21세기를 달라지게 하기 위해 방향을 틀어 한 발자국씩 걷기 시작했다.
첫 번째 변화는 배움으로 시작하자고 마음먹었다. 98년 말에 어떤 학교를 갈 수 있는지 알아봤다. 다행히 갈 수 있는 학교를 찾았고 1999년 대학교에 입학했다. 나의 상황에는 일반 대학교는 언감생심이었다. 등록금이 너무 부담됐기 때문이다. 직장을 그만둘 때부터 대학교에 가고 싶었다. 공부를 하면 앞으로 인생이 달라지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했던 것 같다. 중학교 때부터 공부만이 인생의 방향을 바꿔줄 것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늦었지만 다시 무언가 시작하고 싶었다. 가장 적은 등록금이 있는 대학교를 찾았다. 그곳은 입학의 문은 넓고 졸업의 문은 좁은 학교였다. 타 대학에 비해 방송 통신대학교는 등록금이 한 학기에 50만 원이 안 되었기 때문에 나에게 안성맞춤이었다. 어릴 때 꿈을 다시 좇아 중어중문과에 원서를 넣었다. 등록금 50만 원도 내게는 아주 큰돈이라서 500만 원이라고 생각하며 학교생활을 임했다.
방송 통신대학교는 일반학교와 달리 공부를 스스로 찾아서 해야 했다. 학교 홈페이지에를 어떤 내용이 있는지 스스로 살피고 Q&A를 찾아봤다. 입학식에는 굳이 안 가도 된다는 말들이 있어서 참석하지 않았다. 그러나 공부를 잘 따라가려면 오프라인 공부모임이나 학습관에 가는 게 좋다는 의견이 많았다. 많은 학생들의 꿀팁에 따라 학습관을 검색해 봤다. 각 지역별로 학습관이 있었고 다행히 부천에도 학습관이 있었다. 주소를 찾아보고 기록해 놓고 가는 길을 검색해 놨다. 하루 시간을 내서 부천 학습관 건물에 도착했다. 학습관에 가니 게시판에 학과별 일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과별 스터디 일정을 알아보니 중어중문과는 주중 평일 이틀 동안 스터디가 진행되는 걸 알 수 있었다. 회사일을 마치고 참여할 수 있는 저녁시간이었다. 매주 화, 목요일 학습관내 중어중문학과 교실에서 스터디가 있다는 것을 메모했다.
화요일에 아침 출근을 하면서 교과서를 챙겨갔다. 버스에서 내려서 학습관까지 걷는 시간은 5분 정도 소요됐다. 교실 앞에 도착하니 이미 열 명 정도의 학우들이 먼저 와 있었다. 노크를 하고 교실로 들어섰다. "이곳이 99학번 1학년 중국어 스터디가 있는 곳 맞나요?" 확인하듯 인사를 하며 중어중문학과실로 들어갔다. 인사를 하고 빈자리를 찾아 앉으며 사람들을 살폈다. 대부분 4,50대로 나이가 많은 분들 같아 보였다. 한분은 특히 더 나이가 많아 보였다. 서로가 아직은 어색한지 과실이 조용했다.
첫날은 수업을 따라가느라 정신이 없었다. 수업시간 동안 따라 읽기가 진행됐다. 조용했던 과실이 중국어 합창으로 활기를 띄었다. 수업을 하면서 사람들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모두 나이가 많은 사람만 있는 줄 알았는데 나보다 나이가 한 살 어린 친구도 있었다. 후에 알고 보니 그 친구는 나의 고등학교 후배였다. 자리에 앉아서 간단하게 인사만 하고 책을 펼치고 필기도구를 챙겼다. 잠시 후 선생님 같은 분이 도착했고 수업이 바로 진행됐다. 일주일에 두 번 있는수업에 요일별로 두 분의 라오스(선생님)가 오셨다. 두 분 모두 중국어를 잘하는 분으로 방송대학교 선배님이셨다. 후배들을 위해 순수하게 봉사해 주는 선배님들이 계셔서 우리 학번 동기들은 중국어 공부를 잘 따라갈 수 있었다. 첫 수업을 끝내고 간단하게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했다. 돌아가면서 학번, 나이, 이름을 이야기하며 소개했다. 내 차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