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1학기 기말고사를 무사히 끝냈다. 교양과목 중에 대학 영어가 있어서 깜짝 놀랐다. 대학에서 배우는 영어라는 이름답게 어려워서 참담한 점수를 맞았다. 다행히 영어는 딱 한 과목이고 F가 아닌 것에 안심했다. 타 대학은 4.5점이 만점인데 비해 방송 통신대는 4.3점이 만점이었다. 시험 점수가 왠지 더 박 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96학번으로 대학교에 갔을 때는 점수를 잘 받았었는데 방송통신대학교 점수는 객관식이라서 얄짤없는 점수가 매겨졌다. 다른 학우들과 점수를 비교해 보니 내가 잘 나온 점수라서 신기할 따름이었다. 한 학기만으로는 아직 감이 안 잡혔다. 2학기에는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대학교라는 특성에 맞게 일일호프도 있고 과에서 진행하는 MT도 있었다. 공부하는데 서로 도움을 받으려면 학우들의 조언이 필요했다. MT도 가고 일일호프에도 참여했다. 2학기가 되자 학교 축제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대동제에 참여해서 과 행사의 일꾼으로 도움을 줬다. 아무래도 대부분 나이가 많은 분들이라서 당시 23살로 어렸던 나는 봉사하는 입장이 되었다. 축제를 통해 알게 된 건 부천 학습관에 학생회 임원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학과 일을 돕다 보니 임원분들이 나에게 연락처를 묻더니 연락처를 받아갔다. 이후 임원분들이 학생회 일을 도와달라며 임원 가입을 종용했다. 20대는 안락하게 즐길 게 아니라 봉사를 해야 한다며 당연한 듯 강조했다.
'대동제 마무리 시간에 늦게까지 청소하는 게 아니었구나' 싶은 뒤늦은 후회가 잠시 스쳤다. 그나마 학생회 임원 선배들이 봉사하는 게 재밌어 보여서 그냥 그들의 분위기를 못 이기는 척 따라갔다. 방송대학교를 경험하기 전만 해도 앞에 나가서 무언가를 바꾸는 게 임원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방송대 임원은 말 그대로 시중을 드는 머슴 역할을 자처하는 무리였다. 그 때문인지 선배 임원들도 나이가 보통 20대나 30대 초반이었다. 과에는 대부분 나이대가 4,50대라서 공부하는 팁을 오히려 젊은 사람들이 공유를 해줘야 했다. 학생회 활동을 하면 뭔가 얻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느 무리에 속하든지 열심히 하는 나는 임원이 되어서도 열심을 다했다.
학생회 임원을 그렇게 별생각 없이 얼렁뚱땅하게 되었다. 1학년 2학기부터 학교 행사 시에는 봉사활동을 자연스럽게 하게 됐다. 임원 활동은 크게 부천 학습관 관리와 각 과별 도우미 역할로 나뉘었다. 학습관은 두 가지를 신경 쓰면 됐다. 하나는 학습관 사무실에 문의전화가 오는 경우 당직처럼 1,2주에 한번 오후 시간에 상주하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부천 학습관 행사인 대동제와 체육대회를 주관하는 것이었다. 과 별 도우미는 각과 MT나 일일호프에 도움을 주는 봉사활동이었다. 각 과별 행사는 임원들끼리 조를 나누어서 시간에 맞는 곳에 참여했다.
1학년 동안 두 번의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다 경험하고 나니 공부하는 방향이 어느 정도 확충이 되었다. 학생회 임원이 되면서 독서실이 아닌 학습관에 와서 공부하게 되었다. 과목마다 공부하는 방식이 조금씩 달랐다. 1학년은 전공과목보다 교양과목이 많았다. 교양과목 공부는 학교임원선배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전공과목은 중국어라서 딱히 공부방법이랄 게 없었다. 책을 무조건 달달 외우며 무식하게 공부했다. 학생회 임원 활동도 적응이 되어가고 있었다. 회사를 다니며 공부를 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학교생활에 많은 시간이 할당됐다.
자연스럽게 PC 통신 동호회는 참여가 어려워졌다. 내가 학교생활에 열중하고 있을 때 고등학교 친구인 심은 생애 최초로 남자친구와 열애 중이었다. 지난해 12월 심과 나는 늘 그래왔던 것처럼 단 둘이 만나서 놀았다. 부천역에서 만나 밥을 먹고 비디오방을 갔다. 당시만 해도 여자 둘이 오는 경우가 많이 없었던 것 같다. 비디오방 아저씨는 단골손님인 우리가 가면 음료수를 서비스로 줬다. 그때 우리는 좋은 영화들을 많이 봤다. 옛날 명화를 찾아보고 영화를 본 후 서로 이야기도 나눴다. 그때 봤던 많은 영화들이 내 삶을 조금은 더 즐겁게 만들어주었다.
여느 때처럼 12월이 깊어갔을 때이다. 크리스마스에 여자 둘이 놀기엔 좀 심심했다. 그때 내가 가입했던 포켓볼 동호회 한 분이 PC 통신 부천지역 모임이 있으니 오라고 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날 심과 나는 부천 지역 모임에 갔었다. 이후 나는 방송대에 입학했고 심은 부천 PC 통신 모임 시샵 오빠와 사귀었다. 절친이었던 심에게 남친이 생겨서 그런지 초창기에는 내 친구가 너무 아깝고 남자친구(모임 오빠)가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런데 둘의 연애 이야기를 전달받을 때마다 안심이 되고 좋은 오빠라서 다행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심과 나는 각자 다른 곳에서 바쁜 일상을 보냈다.
20세기 마지막인 1999년도에 나는 방송대 1학년을 무사히 마쳤다. 총(점수 F) 맞은 건 한 과목도 없고 1학년 2학기 성적은 매우 우수한 편이어서 장학금을 받을 성적표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