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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안녕 Sep 10. 2024

나만 빼고 퇴사해11

중소기업 지역 청년 연쇄 퇴사 소설

오전에 대명마트 시식코너에서 어묵탕을 만들고 들어온 인오와 하진은 오후에 막걸리 공장에서 일손을 도왔다. 천 공장장은 직원들의 작업 속도가 느리자 호루라기를 불며 재촉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끝이 보이지 않던 작업도 드디어 끝이 났다.

“현장직 채용 공고는 올린 게 맞냐?”


 기풍은 인오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네, 수시로 상단에 보이도록 신경 쓰고 있는데요.”


 “그런데 사람들이 어떻게 지원을 안 해?”


 “그러게요.”


 “지원하는 사람이 있거든 우리는 면접을 안 보니까 당장 출근부터 하라고 해.”


 “네. 알겠습니다.”


 곤 부장은 퇴근을 코앞에 두고 회의를 소집하는 특기가 있다.


 “백마트. 이거 남산대학교 쪽에 있는 것 아니야?”


 마트 별 실적 자료를 유심히 보고 있던 곤 부장이 드디어 말을 꺼냈다.


 “네, 맞아요.”


 하진이 쏜살같이 대답을 했다.


 “유통기한 임박 상품을 밀어붙이는데 이렇게 실적이 안 나와? 내가 대학교 주변 원룸가는 하지 말자고 했잖아.”


 “그건 부장님이 적극 추진하셨는데요.”


 인오가 말했다.


 “무슨 소리야? 내가 왜?”


 곤 부장은 기가 막혔다.


 “진짜인데요.”


 이번에는 하진이 거들었다.


 “두 사람. 무슨 작당을 하고 나한테 뒤집어씌우는 거야? 어?”


 


 석 달 전.


 인오는 유통기한 임박 상품을 공단 주변의 마트에 밀어넣자고 제안을 했다.


 “네. 할인율을 높여서 판매하면 시장성이 있습니다.”


 “그래. 따지고 보면 유통 기한이 지나도 소비 기한은 길기 때문에 사실 먹는 데 있어서는 상관이 없잖아. 할인은 너무 내리지 말고 공단 주변 마트에 유통기한 임박 상품을 입점해보는 걸로 하고… 대학생들이 밀집해 있는 원룸가 주변은 어떨까?”


 곤 부장의 말에 인오와 하진은 생각에 잠겼다.


 “교내 편의점에서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고 학생 식당도 잘 되어 있으니 조금은 힘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하진은 그렇게 말하며 조금은 회의적인 표정을 지었다 .


 “별로야? 괜찮아 보이는데. 생각을 해봐. 생각을. 남산대 원룸가 주변 마트도 같이 뚫어봐.


 “네.”


 “공단보다 훨씬 나을 거라고 내가 아주 확신을 한다.”


 


 인오와 하진은 축 처진 얼굴을 하며 탕비실을 찾았다.


 “진짜 기억을 못하는 걸까?”


 하진이 인오에게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보는데.”


 “왜?”


 “처음에는 나도 이상하다고 여겼는데. 회사가 돌아가는 일보다 자기 부동산에 신경을 더 쓰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더라. 매번 나한테 맡겼던 업무를 너한테 찾고 너한테 맡긴 업무는 나한테 찾는 것도 신기하지 않냐?”


 “50%의 확률인데 매번 틀리는 것도 재주지.”


 


 퇴근을 한 인오는 집 근처 편의점에 앉아 1시간 30분을 보냈다. 멀리서 터벅터벅 걸어오는 인서가 보였다. 인오는 인서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인서는 그런 인오를 보며 무슨 상황인가 싶어 뒤를 돌아봤다.


 “설마 날 기다렸냐?”


 “그러면?”


 “왜 이러는데? 뭘 잘못 먹었구나?”


 “앉아라. 참, 저녁은 먹었고?”


 “왜? 이러는 이유가 뭔데?”


 “그냥 할 일이 없어 나온 거다. 여기 계속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네가 보인 거고.”


 “기다린 것도 아니네.”


 두 사람은 오랜만에 마주 앉아 라면을 먹었다.


 “좀 쉬고 싶다는 생각 없나?”


 인오가 인서에게 물었다.


 “휴가가 있어야 쉬던가 하지.”


 “회사 그만둘 생각 없냐고? 이제 우리 집 대출 상환도 끝나잖아.”


 “모아놓은 것이 없다.”


 “돈을 떠나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 안 되겠나?”


 “무슨 소리인데?”


 “네가 야근할 때마다 무슨 생각을 하는 줄 아나? 과로를 해서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도 들고…”


 “그 정도는 아니다.”


 “진짜 관둘 생각 없나?”


 “이 나이에 어디를 가는데? 내가 능력이 엄청 있는 것도 아니고. 혹시 네가 그만둘 거가?”


 “나도 뭐… 대책이 없어서 다니는 거지.”


 “그만두고 싶으면 관둬라.”


 “그만두면?”


 “뭐 하고 싶은 것 없나?”


 “그런 게 어디 있노?”


 “드럼은?”


 인오는 그 말에 잠깐 생각에 잠겼다.


 “그림은?”


 이번에는 인오가 인서에게 물었다.


 “대답 먼저 해라.”


 “드럼? 지겹지. 그림도 지겹나?”


 “그릴 시간이 없다.”


 “회사 관두고 그리면 되잖아.”


 “그림 그린다고 돈이 나오나?”


 “진짜 별 볼일 없는 어른이다. 둘 다.”


 그 말을 듣고 인서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을 터트렸다.


 인오도 괜히 괜히 딴청을 피웠다.


 “우리 서울이나 경기도에 갈래?”


 인서가 말을 꺼냈다.


 “가서 살려고?”


 “서울이나 경기도로 이직 생각은 있었거든.”


 “능력이 없다며?”


 “생각을 해보니 그렇네. 아 놔~ 그냥 여기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은 자주 한다. 거의 30년 넘게 여기서 살고 있잖아. 좀 지긋하거든.”


 “진짜 그렇게라도 할까?”


 “그런데 엄마한테 말하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 빤하지 않나?”


 “서울 물가가 비싸다고 타령하겠지. 서울보다 대구가 살기에는 더 좋다는 말도 하고.”


 “나한테는 또 서울병이 도졌다고 난리 친다.”


 “둘이 벌어서 월세며 식비 정도는 감당할 수 있지 않겠나?”


 인오는 전화기를 꺼내 계산기를 두드려봤다.


 “모이는 건 없겠지?”


 인서가 말했다.


 “이러나저러나 힘들다. 답이 없네.”


           


 집으로 돌아온 인오는 컴퓨터 앞에 앉아 서울 강서구, 금천구, 관악구, 구로구, 경기도 부천시, 광명시 지역의 부동산을 알아봤다.


 “6평. 보증금 1000에 월세 30. 지옥철은 감당할 수 있을까? OECD 출·퇴근 시간 1위답게 사람다운 삶은 포기해야겠지?”


 인오는 한숨을 내쉬며 KBS <다큐멘터리 3일> ‘사당사거리 블루스’를 찾아서 봤다. 그리고 알고리즘에 등장한 KBS부산의 <청춘X도시> ‘서울 로그 아웃’을 이어서 시청을 하고 취침을 하기 위해 자리에 누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단체대화방의 수신음이 울려 눈을 떴다. 단체대화방에는 원규가 2010년대 초반에서 중반까지 사용했던 5대의 전화기 사진이 있었다.


 


원규       판도라의 상자다.


인오       작동은 하냐?


원규       충전하니까 멀쩡히 돌아가는 것도 있고~


 


 원규가 곧바로 동영상 하나를 보냈다.


 


인오       이것은???ㅋㅋㅋ


원규       짐작이 가냐?


인오       10대 시절 마지막 공연인데 당연히 기억해야지.


 


 인오가 재생한 동영상에는 대봉중학교·대봉상업고등학교·대봉여자고등학교 등을 거느리고 있는 대봉교육재단의 ‘대봉 가요 한마당’ 현장이 나왔다. 무대에서 고등학생의 인오는 드럼, 원규는 베이스, 윤혁은 기타와 보컬을 맡았다. 신해철의 ‘니가 진짜로 원하는게 뭐야’의 전주가 나오고 윤혁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대가 끝난 다음에 화면은 나오지 않지만 세 사람의 말소리가 담겨 있었다.


 ‘우리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뭘까?’


 원규의 목소리였다.


 ‘글쎄.’


 이어 인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 열여덟이라 모르는 거다.’


 이번에는 윤혁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럼 언제 아는데?’


 원규가 물었다.


 ‘서른 전에는 알겠지.’


 윤혁이 대답했다.


 ‘그렇게나 오래 걸린다고?’


 인오의 화들짝 놀라는 목소리를 끝으로 세 사람이 ‘니가 진짜로 원하는게 뭐야’를 흥얼거리는 소리가 나오다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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