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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안녕 Oct 18. 2024

소설 덕수궁 돌담길, 그 계절에18

2008년 첫사랑 짝사랑 멜로 연애

다원이 씩씩거리며 집으로 향했다. 은석은 쩔쩔매면서 다원을 따랐다.

“난 오늘 네가 화 푸는 것 보고 들어갈 거야.”


 “화 풀렸으니까 가라고.”


 “말투가 전혀 아니잖아.”


 “그냥 혼자 있고 싶어. 제발 좀 가.”


 멀리서 걸어오던 명준이 둘을 마주쳤다. 명준은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안녕. 잘 갔다 왔어?”


 “응.”


 명준과 은석이 대화를 하는 동안 어느 새 보면 다원은 저 멀리 가고 있었다. 두 사람은 다원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무슨 일 있었어?”


 명준의 물음에 은석은 한숨만 쉬었다.


 


 은석과 서경이 교실 앞쪽에서 다정하게 얘기를 하고 있었다. 무슨 재미난 이야기를 하는지 서경은 웃다가 넘어갈 지경이었고 은석도 따라 웃었다. 다원은 복도를 지나다가 그 모습을 봤다. 은석과 서경은 다원을 보지 못했고 다원은 발걸음을 되돌렸다. 교실 뒷문에서 나오던 명준은 그런 다원의 모습을 지켜봤다.


 


 다원은 은석과 통화를 했다.


 - 나 조만간에 또 사생대회 나가야 하거든. 그러면 시간이 없어.


 - 그럼 대회 준비 열심히 해.


 - 아직도 화난 거야?


 - 우리 그냥 헤어지자.


 - 뭐? 그런 일로 헤어지자고?


 - 꼭 그 일 때문만은 아니고.


 - 일단 만나서 얘기해.


 


 은석은 다원의 집 근처로 찾아왔다.


 “네가 속상해하는 것 내가 다 이해할게.”


 “난 너한테 이해해달라고 바라는 게 아니거든. 그냥 내 문제야.”


 “내가 더 잘하면 되잖아.”


 “아니. 네가 잘한다고 뭐 달라지는 건 아니야. 내 마음의 문제라니까.”


 “나는 못 끝내.”


 “넌 자존심도 없어?”


 “응. 없어. 자존심 따위는 모르고. 손다원 밖에 모르겠다.”


 그 말에 어이가 없어 다원은 피식 웃었다. 은석은 다원의 웃음에 안도를 하며 따라 웃기 시작했다.


 “진심으로 한 말이야.”


 은석이 다원을 안아주며 말했다.


 “알았어.”


 다원이 은석의 볼에 입을 맞췄다. 은석의 눈에 다원은 그저 사랑스러워 보였다.


 


 두 사람은 오랜만에 효창공원을 찾아 자리를 깔고 앉았다. 은석은 챙겨온 스케치북을 다원에게 건넸다. 다원은 스케치북을 넘겨보며 빈 공간을 찾았다. 그런데 서경의 얼굴 그림이 나왔다. 다원은 서경의 인물화를 한참 들여다보았고 은석도 그 광경을 목격했다.


 “잘 그렸네.”


 다원은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지만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과제 때문에 그린 거야. 그림 좀 이상하지? 내가 실력이 없어서.”


 “이만하면 괜찮은 것 아니야?”


 “인물화는 명준이가 잘 그려. 반 애들도 인정할 정도로.”


 “그래?”


 “명준이가 그린 그림 못 봤어?”


 “응.”


 “그때 화실에서 그리지 않았어?”


 “완성은 안 한 걸로 아는데. 그러고 보니… 그때 왜 못 봤지?”


 다원은 명준이 인물화 그리기 과제가 있다며 부탁했던 모습을 떠올렸다. 남학생은 여자를 그리고 여학생은 남자의 얼굴을 그리는 과제라고 했다. 명준은 자기 반 여학생들과는 친하지 않아 자신에게 부탁을 한다고 말했던 기억이 났다.


 그날 다원은 책상 앞에 앉아서도 생각에 잠겼다.


 “아무나 그려도 된다고 했는데.”


 효창공원에서 본 서경의 그림을 떠올랐다.


 “왜 하필 걔를 그렸을까?”


 다원은 갑자기 기분이 확 상했다.


 


 어느 날, 서경은 은석에게 물었다.


 “강은석, 너 다른 사람 그리면 안 돼?”


 “왜?”


 “나는 너 못 그리는데 넌 어떻게 날 그려?”


 “아무런 감정이 없으니까. 그럼 설마 넌 나한테 남아있다는 거야?”


 “날 뭘로 보고. 그런 감정 남았으면 우리가 이렇게 지낼 수 있겠냐?”


 


 명준이 다원의 집앞으로 찾아와 포장지로 감싼 조그마한 액자를 건넸다.


 “뭐야? 지금 풀어도 돼?”


 “마음대로.”


 다원이 포장지를 풀자 액자에 자신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 보였다.


 “벌써 다 그린 거야? 잘 그렸다.”


 다원은 액자에 눈을 떼지 못하고 아이처럼 좋아했다. 명준은 그런 다원을 보며 덩달아 기분이 흐뭇해졌다.


 “그렇게 좋아?”


 “당연하지.”


 “과제 점수 나왔는데 A 받았어.”


 “정말? 나 덕분이지?”


 “그래서 선물로 주는 거야.”


 “고마워. 저기 명준아.”


 “왜 그래?”


 “저번에 보니까 은석이는 서경이를 그렸더라고.”


 “아… 그거? 왜 여자친구를 안 그리냐고 물어본 적 있는데. 그냥 모르고 있으면 안 될까?”


 “왜?”


 “알면 재미가 없잖아.”


 “무슨 소리야?”


 “은석이가 준비하고 있는 게 있어. 난 거기까지만 알아.”


 “근데 왜 하필이면 서경이 걔를 그렸을까?”


 “너 말고 아는 여자애는 서경이 밖에 없으니까.”


 “설마… 못 잊어서 아직도 좋아해서는 아니겠지? 처음 연애했고 지금도 둘은 계속 보니까.”


 “왜 그렇게 생각해? 그렇게 따지면 난 너를 좋아해서 그린 거야?”


 다원은 놀라서 명준을 빤히 쳐다본다.


 “아니잖아.”


 “응. 아니지.”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며 다원이 대답했다.


 “내가 양심에 손을 얹고 장담하는데. 은석이는 내가 보장할 수 있어. 내가 뒷자리에서 매일 같이 둘을 보잖아. 전혀 그런 낌새도 없었고.”


 “머리로는 아는데…”


 “왜 그렇게 못 믿는 거야? 네가 은석이 여자 친구잖아. 자신이 없는 거야?”


 “질투인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나도 내가 싫다니까. 너한테는 이런 얘기 잘 털어놓는데… 은석이 앞에서는 꺼내지도 못하겠어.”


 “왜?”


 “그런 얘기하면 속 좁아 보이고 좀 그렇잖아.”


 “은석이를 믿는다면 의심하지 마. 그럼 너만 더 괴롭잖아. 알았지?”


 명준은 다원을 빤히 보며 얘기를 했고 다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다원을 보다가 명준은 시선을 돌렸다.


 ‘네가 괴로워하는 모습 보는 게 나는 힘들어.’


 명준의 얼굴은 착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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