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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안녕 Oct 19. 2024

소설 덕수궁 돌담길, 그 계절에19

2008년 첫사랑 짝사랑 멜로 연애

여름이 되어 다원과 은석은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걸었다.

“가을 되면 여기 한 바퀴 같이 걸을까?”


 다원이 먼저 말을 꺼냈다.


 “연인이 덕수궁 돌담길을 같이 걸으면 헤어진다는 말 몰라?”


 “그런 말을 믿어?”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니겠지.”


 “누가 그런 말을 만들어냈을까?”


 “이 근처에 가정법원이 있었거든. 이혼하기 위해 오는 사람들 때문에 그런 말이 생겨났다는 설도 있고 또 지금 덕수궁돌담길은 끊어져 있기도 하니.”


 “길이 끊어져 있다고? 그건 몰랐네.”


 “영국대사관에서 점유하고 있어 막혀있는데 언젠가는 이어지겠지.”


 “그런 날이 오긴 올 거야. 참, 너 과제 점수 뭐 받았어?”


 은석은 한숨을 쉬며 대답을 했다.


 “왜? 나를 그렸으면 A 받았을지도 모르잖아.”


 “A? 명준이 말하는 거지?”


 “내 얼굴 그려서 A 받았다고 그림 그린 것도 주더라고.”


 “진짜야?”


 “응.”


 은석은 갑자기 열을 받았다.


 “그걸 왜 줬을 것 같아?”


 “나 덕분에 좋은 점수 받았으니까.”


 “그게 아니야.”


 “뭐가 아니라는 거야?”


 “명준이가 그 그림을 왜 줬을 것 같아?”


 “너 왜 그래?”


 “진짜 몰라?”


 다원은 은석의 태도가 답답하기만 했다.


 “명준이가 너 좋아하니까.”


 “뭐라는 거야? 내 그림을 그렸으니까 나를 좋아한다고? 그렇게 따지면 너는 그럼 서경이 좋아하는 거야?”


 “나는 너랑 사귀고 있잖아.”


 “그게 무슨 상관인데? 너야말로 억지 부리는 것 아니야?”


 하던 말을 멈춘 다원은 은석의 지갑에 있던 사진을 떠올렸다.


 교탁 앞에서 칠판을 지우던 은석은 명준의 과제 그림을 얼핏 본 적이 있었다. 분명히 명준은 서경의 얼굴을 그린 그림을 제출했다. 하지만 은석은 이 사실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는 냉랭해졌다.


 “이제 싸우는 것도 지친다. 우리 그만 정리하자.”


 다원이 말했다.


 “넌 그런 말을 왜 그렇게 자주 해?”


 “진짜로 헤어지고 싶으니까. 장난으로 들려?”


 은석이 다원의 손을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다원은 손을 뿌리쳤다.


 “정말 왜 이래? 우리가 별일 아닌 일 때문에 자꾸 싸워야 하는 이유가 뭔데?”


 “그딴 것 모르겠고 그냥 정리하자. 제발.”


 은석은 답답한지 먼 산만 봤다.


 그날 저녁, 은석은 엄마로부터 기말고사가 끝나는 대로 독일에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어느 하굣길에 다원과 은석은 복도에서 마주쳤다. 다원은 은석을 보고도 그냥 지나치려 했다.


 “너 정말 이럴 거야?”


 은석은 다원의 팔을 잡았다.


 “우리 끝났잖아?”


 그 말을 듣고 은석은 손에 힘이 풀린 듯 다원의 팔을 놓았다.


 기말고사를 끝내고 다원은 자신이 은석을 너무 심하게 대했다며 자책을 했다.


 어느 날 다원은 회화과 교실을 찾아 명준을 만났다.


 “은석이는?”


 명준은 대답을 하지 않고 다원을 봤다.


 “왜?”


 “언제부터 연락 안 했어?”


 “무슨 소리야?”


 “기말고사 끝나고 독일에 갔어.”


 다원은 난감한 표정만 지었다.


 뒤늦게 다원이 은석에게 전화를 걸면 없는 전화번호라는 신호만 나왔다. 다원은 컴퓨터 앞에 앉은 은석의 미니홈피를 둘러봤다. 사진첩을 보면 장충단 공원의 사진이 마지막이고 방명록에는 6월의 어느 순간부터 은석의 댓글이 달려있지 않았다.


 


 독일로 간 은석은 병상에 누워있는 아버지를 보고 믿기지 않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몰랐다. 급성 페렴이라 손을 쓸 수가 없다는 얘기만 들었다. 그리고 며칠 후에 아버지는 공동묘지에 묻혔다.


 


 다원과 명준은 골목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대화를 나누었다.


 “너희 반에 아무도 몰라?”


 “응. 자세히 아는 애는 없어.”


 “서경이도?”


 다원은 조심스레 서경의 이름을 꺼냈다.


 “모르더라고. 방학도 끝나가는데 2학기 시작하면 오겠지.”


 며칠 후.


 “그게 무슨 말이야? 자퇴라니?”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독일에서 학교 다니기로 했나봐.”


 “나 때문인가봐.”


 “그게 무슨?”


 “나랑 헤어져서 마주치기 그러니까…”


 그렇게 말하는 다원의 눈에 살짝 눈물이 비쳤다.


 


 그즈음 다원은 버블시스터즈의 ‘그렇게 사랑하고 그렇게 웃었습니다’를 많이 들었다. 햇살 좋은 날에 다원은 혼자서 효창공원 일대를 걷고 장충단 공원, 덕수궁 돌담길, 인사동 일대를 찾기도 했다. 은석과의 추억에 잠기다 눈물을 흘리는 날이 많았다.


 


 “엄마, 디자인하려면 사진도 찍을 줄 알아야 한다니까. 사진 편집도 디자이너가 다 하거든.”


 “예술을 하면 뒷돈이 많이 들어서 내가 그렇게 말린 것 아니가?”


 “비싼 것 말고. 중고로 살게.”


 다원은 그 길로 소형 디지털 사진기를 장만하여 효창공원, 장충단 공원, 덕수궁 돌담길, 인사동 일대를 촬영했다.


 


 독일에서 새롭게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은석은 그 무렵 넬의 ‘기억을 걷는 시간’을 자주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은 다원의 사진을 넘겨봤다. 첫 번째 사진에는 덕수궁 돌담길 앞에 서 있는 다원의 모습이 보였다. 두 번째는 효창공원의 다원, 세 번째는 장충단 공원에서 그림을 그리는 다원의 모습, 네 번째는 청계천의 야경과 다원이 있었다.


 늦가을, 은석은 주변에 낯선 사람이 여럿 지나가는 길을 걷고 걷고 또 걸었다. 어느 날은 바람에 날리는 낙엽을 바라보기도 하고 덩그러니 놓여 있는 의자에 시선을 고정하기도 했다. 그리고 거울 앞에서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는 날도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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