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이 스프린트 같았다.
서비스 기획자로 일하면서, 나는 늘 다음을 쫓고 있었다.
다음 기능, 다음 릴리즈. TV 뉴스나 링크드인에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는 AI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세상을 바꾸고 있었고, 조금이라도 늦으면 뒤처질 것 같은 불안감은 내 일상의 BGM처럼 항상 깔려 있었다.
더 빠르게, 끊임없이 배워야 살아남을 수 있다. 이건 내가 매일 되뇌던 말이었다.
그런 내가 삿포로에 갔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친구들과 술 한잔을 기울이다 나온 "일본 여행 갈래?" 한마디에, 평소 업무를 처리할 때는 극강의 J인 내가 극강의 P인 면모로 바로 다음 날 비행기 표와 숙소만 예약하고 아무런 계획 없이 삿포로로 떠났다.
대부분의 시간은 삿포로 스스키노 역 근처에서 보냈다. 네온사인이 빼곡한 거리, 줄 서서 들어가는 유명 가게들,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상점거리. 서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수시로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팀즈 알림이 울리면 반사적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이틀 차 비에이 투어에서 처음으로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는 걸 느꼈다. 스스키노에서 쉴 새 없이 귀를 채우던 소리들이 여기서는 눈바람 한 줄기로 대체되어 있었다. 그 고요 앞에서 나는 멈춰 섰다. 정말 물리적으로 멈추었다.
켄과 메리의 나무, 세븐스타의 나무. 이름이야 관광 명소로 붙여진 것이지만, 실제 가서 직접 마주한 풍경은 관광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냥 넓은 들판 한가운데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그게 전부였다. 화려한 설명도 없고, 특별한 것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래 보았다. 저 나무들은 수십 년을 그 자리에서,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다른 풍경의 일부가 되면서, 그냥 그렇게 서 있는다.
비에이는 참 조용했다. 차 소리도, 사람 소리도 없었다. 그 거리를 걸으니 머릿속까지 조용해졌다. 늘 무언가를 분석하고 비교하던 내 뇌가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그냥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고, 나는 뽀득뽀득 눈 밟는 소리만 내며 걷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은, 열 석 남짓한 작은 미소 라멘집에 들어갔다. 세 사람이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손님이 앉으면 인사를 건네고, 묵묵히 조리를 시작했다. 면을 삶고, 국물을 확인하고, 그릇에 면을 담는다.
모든 과정이 그들이 정한 리듬대로 흘러갔다. 수십 명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지만 급하지 않았다. 어떤 과정도 빠뜨리지 않았다.
라멘을 먹으면서 생각했다. 나는 매일 사용자 경험을 설계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내가 만드는 과정에 이런 정성이 있었나?
그냥 빠르게 만들고 빠르게 배포하는 데 익숙해지면서, 사용자 앞에 놓이는 한 그릇의 완성도에 대해서는 얼마나 고민하고 있었을까. 속도를 경쟁력이라 부르며, 사실은 그냥 급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삿포로에서 느낀 것들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최신 트렌드와 무관하게, 수십 년째 같은 자리에서 같은 방식으로 장사하는 가게들은 유행을 따르지 않았지만 사라지지도 않았다.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변하지 않아도 될 만큼 본질에 충실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비에이의 눈길을 걸을 때, 작은 라멘 가게에 앉아 있을 때, 내 일상이 처음으로 급하지 않게 찾아왔다.
돌아와서 다시 노트북을 열었다. 여전히 세상은 빠르고, 팀즈 알림은 수시로 울리고 있었다. 나도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는 가끔 멈춰서 나 자신에게 물을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나는 빠른 건가, 아니면 그냥 급한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