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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혁 Aug 15. 2022

프레드릭 배크만, '불안한 사람들'

불안한 우리들을 불안에서 꺼내 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프레드릭 크만은 믿고 읽을 수 있는 작가다. 그의 책 '오베라는 남자'에 대해 썼던 것처럼 그는 좋은 책을 쓰기 위한 세 가지 조건을 모두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무엇을 써도 재미있게 쓸 수 있을 것만 같은 문체, 흥미로운 스토리라인을 만드는 상상력, 그리고 작가 자신이 책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까지, 베크만의 책에는 세 가지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이 책 '불안한 사람들'에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어느 날 벌어진 우연하고, 황당하고, 또 바보 같기도 한 인질극 이야기다. 보통 인질극이라고 하면 스릴 넘치고 험악하고 위험한 이야기를 생각하겠지만 이 책은 그렇지 않다. 살면서 갑자기 닥친 잔인한 현실에 바보 같은 선택을 하고 만 은행강도의 이야기다. 또 그 허술한 은행털이가 아파트 오픈하우스로 도망치게 되면서 집을 보고 있던 사람들을 인질로 잡게 된 이야기다. 그리고 인질로 잡혀 있던 사람들도 각자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 이야기 안에서 이 '불안한 사람들'은 서로 아픔을 나누기도 하고, 이해하기도 한다. 자세한 내용은 이야기하지 않겠다.


그냥 스토리만 놓고 봐도 재미있는 책이다. 긴장감 넘치는 인질극은 아니지만 장면과 인물에 대한 묘사, 그리고 인질극이 끝난 뒤 경찰의 인터뷰 내용을 번갈아가면서 보여주며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재미를 준다. 인물들 하나하나의 성격이나 말투도 워낙 개성 있는 편이라 여러 등장인물이 나온다고 해서 누가 누군지 이해하기 어렵다거나 정신없이 흘러가지도 않는다. 각자는 각자의 성격을 가지고, 각자의 불안을 가지고, 각자의 이야기를 한다. 어쩌다 그 이야기들이 서로 이어지고 맞물리며 자연스럽게 책이 흘러갈 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프레드릭 크만의 책은 믿고 읽어도 좋다.



책 내용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 하고 조금 더 감상을 덧붙이자면 이렇다. 내가 크만의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세 가지 요건을 다 갖춰서이기도 하지만 가장 두드러지는 한 가지를 꼽으라면 세 번째 요건이다. 나는 크만은 자신의 소설을 통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분명하게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책이 좋은 이유는 그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크만이 자신의 메시지를 이야기하는 방식은 등장인물을 통해서다. 그의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물론 개성 있지만 잘 보다 보면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오베라는 남자'에서도 서로 다른 등장인물이 나오지만 그들은 모두 우리 사회의 '정상성'관점에서 보면 어딘가 하나씩은 부족하고, 약자의 위치에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부족한 사람들이 모여서 좋은 사회를 만들어나간다. 인물과 그들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무언가를 통해 전달하는 메시지, 이게 크만의 방식이다.


이 책은 보다 명확한 힌트를 주고 있기는 하다. 제목이 '불안한 사람들'이다. 이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모두 '자신만의 불안'을 가지고 있다.


은행 임원인 사라에게는 자신이 10년 전에 다리에서 자살한 남자에게 원인을 제공했지 않을까 하는 마음, 거기에서 비롯된 '내가 나쁜 사람,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아닐까'하는 불안

로게르는 능력 있는 남편이 되지 못할까 하는 불안, 안나레나는 남편 로게르에게 육아를 맡기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의 기회를 오랫동안 뺏은 것에 대한 미안함과 그가 자신을 버릴지 모른다는 것에 대한 불안

율리아와 로는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

주인공인 은행 강도는 말할 것도 없다.


문제는 이들이 가지고 있는 불안, 콤플렉스가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점에 있다. 불안은 우리가 스스로 생각해서 만드는 것이다. 내가 나를 바라봤을 때 스스로 느끼는 부족함, 거기서 불안과 콤플렉스가 생긴다. 내가 나에게 느끼는 부족한 점이 불안으로 드러난다. 그러니 스스로 해결하려고 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불안은 커질 뿐이다. 내가 생각하는 내면의 약점을 더 자세히 바라보게 될 뿐이다.


이들의 불안을 해결해줄 수 있는 사람은 그들 옆에 있는 사람들이다. 사라에게는 10년 전 그 일이 당신 탓이 아니었다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로게르와 안나레나는 서로가 서로를 걱정하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 밖으로 꺼낼 용기가 필요했다. 율리아와 로에게는 그들이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얘기해줄 수 있는 어른이 필요했다. 은행강도에게는 그 힘든 순간을 잠시나마 버티게 해 줄 수 있는 이웃이 필요했다.


사실 그들을 불안에서 꺼내 주는 사람들에게는 그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들어주고, 이해하고, 한마디 말을 건네주는 게 전부다.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그 일의 효과는 작지 않다. 특히 그 이야기를 듣는 불안한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전혀 작은 것이 아니다. 그 말 한마디가 그에게 힘을 줄 수도 있고, 그를 살릴 수도 있고, 그들에게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줄 수도 있다.


책 밖에 있는 우리라고 다르지 않다. 누구나 자신만의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특히나 요즘은 더 그렇다.


나는 좋은 사람일까?

나는 좋은 연인일까?

나는 좋은 부모일까?

나는 좋은 아들인가?

나는 좋은 친구인가?

나는 좋은 직원인가?

나는 좋은 선생인가?

나는 좋은 학생인가?


우리는 겉으로 티는 내지 않아도 불안해한다. 세상에 나쁜 사람이 있냐는 사라의 질문에 심리삼당사인 나디아는 이렇게 대답한다.


'맞아요.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가 세상을 개선하는 데 이바지한다고 말하고 싶은 욕구가 있죠. 적어도 세상을 지금보다 망가뜨리는 데 일조하고 있지는 않다고, 자기가 옳은 편에 있다고 말하고 싶은. (중략) 왜냐하면 저는 솔직히 자기가...... 나쁜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보거든요.'


굳이 선, 악을 놓고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좋은 무언가가 되고 싶어 한다. 세상에 이바지하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들과의 관계에서는 내가 있어서 도움이 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그리고 불안은 거기에서 온다.


요즘은 관계도 워낙 다양해지고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들도 많아지다 보니 그들에게 내가 좋은 사람일까?라는 생각에서 오는 불안은 점점 더 늘어만 간다. 어떤 사람들은 그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더 노력한다. 더 많은 시간을 쓰고, 더 열심히 준비하고, 더 뛰고, 더 공부하고, 더 많은 것을 내어준다. 하지만 그런 노력은 그들을 지치게 할 뿐 불안을 해결해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그 사람들에게 크만이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불안은 당신이 그렇게 애쓴다고 쉽게 해결되는 불안이 아닙니다. 당신에게 생긴 그 불안, 당신이 타인을 사랑하기에 생기는 그 불안은 그 사람들만이 해결해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 또한 누군가의 불안을 해결해줄 수 있는 유일한 타인입니다.'


우리 사회에 점점 더 늘어나는 이 불안을 줄여줄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라는 건 타인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 자신이다. 나는 내 옆에 있는 누군가의 불안, 나를 사랑해서 불안해하는 그의 마음을 치료해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그들의 불안을 줄여주자. 방법도 어렵지 않다. 내 옆에 있는 누군가에게 그가 있음으로써 내가 얼마나 웃었는지, 즐거웠는지, 행복했는지, 그런 작고 고마운 마음을 그저 이야기하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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