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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혁 Aug 14. 2022

이디스 워튼, '여름'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사람의 만남에 대해

이디스 워튼은 1862년에 태어났고 소설 '여름'은 작가가 살아가는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배경은 미국이지만 오늘날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어디를 가든 화려한 모습의 미국이 아니라 뉴욕을 중심으로 중심부는 고도성장을 이루며 화려하지만 아직 변두리 마을은 시골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그런 미국이다.


그래서 이 책에는 도시와 시골의 모습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도시는 번화하고 있고 시골은 쇠퇴하고 있다. 도시에는 온갖 것들이 있지만 시골에는 작고, 그마저도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도서관뿐이다. 그리고 책의 배경뿐 아니라 등장인물도 대조된다.


주인공 채리티는 시골 마을인 노스도머에서 자랐다. 하지만 그녀의 출생은 노스도머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이루어졌다. 노스도머 주위에 있는 '산', 거기에는 시골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노스도머 사람들조차 산 사람들을 야만인 취급하고 무시한다. 그들 사이에는 교류가 거의 없다. 그리고 채리티는 그 '산' 출신이다. 산 사람들 중 한 남자가 노스도머에 내려왔다가 범죄를 저질렀고 감옥에 수감되기 직전, 피해자의 변호사였던 로열 씨에게 산에 있는 자신의 딸을 데려다 문명인으로 키워달라고 부탁했다. 그 딸이 채리티다. 그러니 채리티에게는 자신이 시골 사람이라는 사실, 심지어 그 시골보다도 못한 곳에서 태어났고 부모는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쉽게 입양시켰다는 것에 대한 열등감을 마음에 가지고 있다.


또 다른 주인공, 하니는 도시 출신이다. 그는 노스도머에 있는 친척을 만나러 이 시골 마을에 왔다. 건축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도서관 건물을 보기 위해 들렀고 채리티를 만난다. 채리티와 달리 하니는 도시 출신이기도 하고 가문도 괜찮다. 요즘 말로 하면 '있는 집 자식'이다. 그래서 그에게는 채리티에게 있는 자신의 출신에 대한 열등감 같은 것이 전혀 없다.


제목에 걸맞게 이 책은 뜨거운 여름을 배경으로 한 연애 소설이다. 우연히 만난 하니와 채리티는 서로에게 호감을 갖고 만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출신의 차이가 가져다주는 벽이 있다. 하니는 그걸 전혀 의식하지 않지만 채리티에게는 그건 너무나 큰 벽이고 열등감이다. 자신이 하니와 맺어질 수 없는 사람이라는 마음이 깔려 있기에 조금이라도 불안한 것이 생기면 크게 흔들린다.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냥 모든 사람에 대한 호의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잠깐 연애는 하지만 결혼은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하니 옆에 다른 도시 여자가 있을 때면 괜스레 위축되기도 하고, 이런저런 벽에 수없이 부딪힌다.


이 책이 가진 독특한 점은 보통 다른 책이 '그럼에도 둘은 신분이나, 출신의 차이를 뛰어넘어 사랑의 결실을 맺었습니다.'의 이야기로 끝나는 반면 여기서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결말을 이야기하진 않겠지만 그리 순탄하게 끝나진 않는다. 평범함 이야기에 길들여진 상태라면 '이렇게 끝나버린다고?'라는 생각이 들 지도 모른다. 그래도 푸르른 여름 배경에 대한 묘사, 둘의 심리상태에 대한 치밀한 묘사가 좋은 책이다.



출신이 다르다고 해야 할지, 요즘은 출신이라고 말할 것 까진 없으니 자라온 환경이 다른 두 사람 간의 연애 이야기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릴 것 같은데... 아무튼 이런 이야기는 드라마 단골 소재이기도 하다. 사실 드라마는 조금 극단적으로 차이를 드러내긴 하지만 이건 우리 일상에서도 흔하디 흔한 이야기다. 자라온 배경을 하나하나 대조한 뒤에 만날 사람을 찾는 게 아니라면 정도가 다를 뿐 언제나 배경의 차이는 있을 수밖에 없다. 


이때 중요한 건 두 사람에게 그 배경의 차이가 주는 무게가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이다. 유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는 가슴이 철렁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하니가 약속 장소에 조금 늦게 나타났던 게 채리티에게는 둘 사이의 호감이 사실은 그저 호의였던 게 아닐까 하는 불안이 생겼던 것처럼.


그러니 연인 관계에서 완전히 같은 수준이라는 게 불가능하다면 더 유리한 입장에 있는 사람은 항상 더 많이 생각해야 한다. 그는 유리한 위치에 있기에 무감각할 수 있다. 스쳐 지나가는 말도, 무의식적인 행동도 그저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상대에게는 그렇지 않은 순간이 될 수도 있다. 상대가 나보다 더 예민할 수 있다는 걸 이해하고 더 많이 생각하는 일, 그게 연인 관계에서 필요한 마음이다. 하니와 채리티가 결국 맺어지지 않은 이유도 자신은 평온했던 하니와 자신은 불안했지만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던 채리티, 두 마음의 어긋남 때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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