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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혁 Aug 08. 2022

프레드릭 배크만, '오베라는 남자'

좋은 사회란 무엇인가

59세, 오베라는 이름이 이 남자는 아주 무뚝뚝한 사람이다. 처음 그를 만나는 사람에게는 그저 무뚝뚝하다고 느껴지기보다는 좀 더 까칠하고, 신경질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법하다. 하지만 이 남자는 못된 사람은 아니다. 우리 주위에 있는 무뚝뚝하지만 속으로는 은근히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쓰는 사람, 그런 사람이다.


오베는 표현이 서툴렀지만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런 아내가 죽고, 인생의 절반을 몸담아 왔던 회사를 떠나게 된 오베는 죽기로 결심한다. 이게 '오베라는 남자'의 시작이다. 이 책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죽기로 결심한 오베와, 그의 시도가 계속 실패하는 이야기'라는 흥미로운 주제로 잘 알려져 있는 만큼 이 책의 시작은 눈길을 끈다.


물론 흥미로운 스토리라인은 좋은 책이 되기 위해 중요한 요소다. 거기에 아무 이야기나 해도 재미있는 문체를 가진 작가라면 책이 성공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하지만 한 권의 책이 오랫동안 사람들의 마음에 남기 위해서는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작가의 '메시지'다. 작가가 책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 책에 담은 의미, 그런 것들이 느껴지고 독자의 마음을 울릴 때 책은 오랫동안 우리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나는 이 책, '오베라는 남자'도 작가의 메시지가 분명히 담겨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주인공은 오베, 이야기는 오베를 중심으로 흘러가지만 오베와 함께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 모두,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 가는 사회의 모습이 작가가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죽기로 결심한 오베가 죽지 못한 이유는 마을에 새로 이사 온 부부 때문이었다. 부부 중 남편은 키가 크지만 트레일러 운전도 서툴고, 지붕 수리도 잘하지 못하는 서투른 사람이다. 그의 아내는 임신을 했고, 이란에서 태어났다. 허당 같은 남편과 약자이면서 외지인인 아내가 오베의 마을에 이사를 왔고, 그들의 서투른 모습을 보고 오베는 신경질을 내면서도 트레일러가 제 위치에 주차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지붕을 고치다가 다친 남편을 보러 가는 아내,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을 태워준다. 물론 병원 주차장에서 별 거 아닌 이유로 관리인과 다투기도 하지만 아무튼 그는 그들 부부를 돕기 위해 자신의 죽음을 미뤘다.


이들 부부뿐만이 아니다. 옆집에 사는 청년은 방에 틀어박혀서 나오지 않는다. 살도 많이 쪄서 겉보기에는 뭔가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청년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도 오베의 도움을 받았었고, 그가 오베의 죽음을 방해(?)하게 되기도 한다. 우편배달부 소년은 학교에서 불량학생 취급을 받고, 부모님은 교도소에 있지만 소년이 좋아하는 소녀의 자전거를 고쳐주는 일을 오베가 도와주면서 그의 도움을 받고 또 그 일로 오베의 죽음은 미뤄지게 된다. 그리고 죽은 오베의 아내가 마을 사람들에게 했던 이야기, 주었던 도움이 하나하나 드러나면서 아내를 그리워하는 오베도 예전 생각을 하나 둘 떠올리게 된다.


그렇게 처음에는 우연히 오베의 죽음을 방해하던 마을 사람들은 어느새 오베와 서로 돕고, 도우며 살아가는 이웃이 되고, 예전에 친하게 지냈지만 어느 순간 틀어져 버린 마을 친구와도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화해하게 된다. 그렇게 그들의 마을은 진짜 사회가 된다.



오베, 그리고 그의 마을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은 우리가 '보통'이라고 말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면 어딘가 하나씩 부족하거나 보통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오베는 사교성이 부족하고, 새로 온 부부의 남편은 실용적인 능력 부족하다. 그의 아내는 임산부이면서 외지인이다. 약자이면서, 소수자다. 옆집에 사는 청년은 아이폰 앱 개발자이지만 방에 틀어박혀서 나오지 않고, 살이 많이 쪄서 흔히 생각하는 컴퓨터만 하는 살찐 청년의 이미지를 가졌다. 우편배달부는 어려운 가정에서 자랐고, 오베와 틀어졌던 그의 마을 친구는 파킨슨병에 걸렸다. 우리는 항상 '정상적인 것'을 규정하는데, 우리가 규정하던 정상의 눈으로 바라보면 그들 각각은 모두 비정상이다.


하지만 그 하나씩 비정상적인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사회는 우리 사회보다 전혀 부족하지 않다.


오히려 그들 사회는 서로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채워주고,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나서서 도와주고, 행복한 일이 있으면 축하하고, 슬픈 일이 있으면 나누는 좋은 사회다.


우리는 항상 정상적인 것을 머릿속에 규정하고 살아가지만 우리 모두는 부족한 것을 가지고 살아간다. 일이 서투른 사람도 있고, 대화가 서투른 사람도 있고, 꿈은 있지만 현실의 일이 벅찬 사람도 있다. 옷을 잘 입는 사람, 요리를 잘하는 사람, 노래를 잘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성격도 그렇다. 모든 것이 완전한 사람은 없다. 우리가 규정하는 것에 따르면, 우리는 모두 '비정상'이다.


오베와 마을 주민들과 우리 사회 사이에 다른 점이 있다면 오베의 마을에서는 서로 부족한 것, 그 '비정상적인 것'을 서로 채워주지만 우리는 비정상적인 것을 배제하고, 없는 것처럼 생각하려 한다는 점이다. 마치 타인의 비정상적인 면이 부각되어야 내가 가진 비정상적인 면이 보이지 않는다는 듯이 우리는 누군가가 가진 결점이 더 부각되게 만들려는 듯하다. 그들의 부족함을 채워주려고 하기보다는 그들은 문제가 있는 것이고, 나는 그 문제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하며 거리를 두고 구분한다. 물론 우리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만들어가고 있는 사회의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고, 점점 더 그런 모습이 커져만 가는 것 같을 뿐이다.


하지만 그렇게 비정상으로 낙인을 찍고, 나누고, 배제해서 정상적인 사람들만 모인 작은 집단을 만들었다고 해도 그 집단은 전혀 행복해지거나 나아지지 않는다. 더 나누고 배제할수록 우리 사회가 더 행복해진 적은 없는 것 같다. 이유는 단순하다. 애초에 '정상적인 사람'은 없다. 아무리 잘라내고 배제해도 우리는 모두 어딘가 부족하기 때문에 또 다른 비정상이 드러난다. 그렇게 모두가 모두를 배제하는 사회가 되어갈 뿐이다.


그래서 나는 작가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린다.

'불완전한 사람들, 비정상적인 사람들이 모여서 그들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서 완전한 하나를 만드는 것,

그게 사회다.'


좋은 책이 되기 위해 좋은 메시지가 담겨야 한다면 '오베라는 남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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