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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혁 Aug 21. 2022

긴 감상 3

오래 달릴 수 있는 삶에 대해

태어날 때 우리는 가만히 누워있다. 어디론가 가야 한다는 생각 없이, 우리를 지켜봐 주는 사람 곁에 가만히 있는다. 그러다 조금씩 자라면서 우리는 구르기도 하고, 기어 다니기도 하고, 일어선다. 한 발 내딛으면서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한다. 조금 더 자라서 다리에 힘이 붙으면 뛰어다니기 시작한다. 가만히 누워있던 아이에서 이제는 뛰어다니는 어른이 된다. 그런데 이건 우리 몸에만 일어나는 변화가 아니다.


태어날 때 우리에게 주어진 일은 없다. 그저 태어나고, 부모님이 주는 것을 받고, 사랑을 받으며 곁에 가만히 있는다. 그러다 조금 자라고 나면 우리는 학교에 들어간다. 물론 유치원이 먼저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이제부터는 우리에게 해야 할 일이 생긴다는 것이다. 더 이상 우리는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 숙제도 해야 하고, 받아쓰기 시험 점수도 잘 받아야 한다. 간간히 보는 쪽지시험도 잘 봐야 한다.


사회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걷기 시작한다.


나이가 들면서 우리는 점점 더 빨리 걷게 된다. 공부해야 할 과목은 많아지고 시험 범위는 점점 더 늘어난다. 공부만 하면 될 줄 알았지만 친구들과 사이도 좋아야 하고, 운동도 잘해야 한다. 점점 더 우리의 걸음은 빨라지기 시작한다.


어느 순간 주변을 보면 주변 친구들은 걷지 않고 슬슬 달리기 시작한다. 학원에 다니면서 선행학습도 하고, 체험학습도 다녀온다. 다른 친구들 모습을 보면 나도 괜히 달려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슬슬 달리기 시작한다. 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많다. 전보다 더 빨리 달리고 있는데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멀다.


고등학교 때까지 열심히 달렸지만 대학에 가고 사회에 나가도 더 빨리 달려야 하는 건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젠 성인이다. 공부 외에도 챙겨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 그리고 사람들은 너 나할 것 없이 서로 경쟁하며 마치 빨리 달리기 대회를 하는 것만 같다. 주위를 둘러볼 시간은 없다. 그러다 한 번 달리기를 멈추는 순간 더 이상은 따라잡지 못할지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한없이 달린다. 점점 더 빨리.

사회가 우리에게 주는 타임라인은 잘 달리는 사람들에게 맞춰져 있다. 정해진 나이에 대학을 가고, 정해진 나이에 취업을 하고, 정해진 나이에 결혼을 하고, 정해진 나이에 아이를 가져야 한다. 그 속도에 맞추려면 우리는 더 빨리 달리면 달렸지 잠시 걸을 수 있는 시간은 없다.


그런데 그렇게 한참을 빠르게 달리다 보면 가끔은 이게 정말 맞나 싶은 순간이 있다.


한참을 달리다 주변을 둘러보면 내가 좋아하던 것들은 내 옆에 남아있지 않다. 취미도, 사람도, 나도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은 대개 앞으로 달리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괜히 샛길로 빠지게 만들고, 잠깐 다른 곳을 쳐다보다 보면 달리던 속도가 느려진다. 그래서 하나둘 잊고, 버리다 보면 달리는 우리에게는 소중한 것들이 남아있지 않게 된다. 나는 분명히 온 힘을 다해서 달려왔는데 내게 남아있는 건 내 행복이 아니다.


그래서 가끔은 조금 숨을 돌릴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평생을 달리면서 살 수는 없다. 열심히 뛰어야 할 때는 열심히 뛰는 게 맞지만 한 번 온 힘을 다해 뛰고 나면 잠깐 숨을 돌려야 한다. 인생의 템포가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빨라질 때면 한 번씩은 그 템포를 늦춰야 한다. 그래야 너무 빨리 달리다 지쳐서 영원히 달리지 못하게 되는 일이 없다. 잠깐 숨도 쉬고, 물도 마시고, 멀어져 가는 것들, 내가 좋아했지만 놓쳤던 것들을 다시 잡아야 한다. 그래야 건강하게 오래오래 달릴 수 있다.


아마 사회는 우리에게 점점 더 빠른 타임라인을 요구할 것이다. 대학교 1학년 때 놀아도 된다는 말이 조금은 흐려진 것처럼 경쟁사회의 타임라인은 점점 더 당겨진다. 속도는 상대적이다. 모두가 달리고 있을 때 전처럼 달리는 느낌을 내려면 더 빨라져야 한다.


그러니 넘어지지 않으려면, 너무 빨리 달리다 영원히 달리지 못하게 되지 않으려면 우리 스스로 늦춰야 한다.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을 잠시 멈춰보는 일, 영상보다는 책을 읽어보는 일, 잠깐 도시를 떠나서 자연 속으로 다녀오는 일, 뭐든 좋다. 잠시나마 달리기를 멈추고 주위를, 자기 자신을 둘러볼 수 있는 일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그래야 멈추지 않고, 오래오래 달릴 수 있다. 결국 멈추지 않는 거북이가 토끼를 이긴다.


'"살아 있는 사람의 시간은 흐르기 마련이니까. 차라리 그게 나을 수도 있고. 너무 빠르게 달리면 다 놓치고 산대. 유명한 사람 누가 그러더라. 누구였더라. 기억이 안 나네."

...

우리는 모두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 소설 '천 개의 파랑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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