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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혁 Sep 10. 2022

프레드릭 배크만,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어른들이 7살 아이에게 배울 수 있는 것에 대해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은 항상 세 가지를 가지고 있다. 따뜻함, 유머 그리고 흥미진진한 이야기 구조까지. 아이러니하지만 따뜻함이 묻어나는 글을 쓰려면 어두움이 필요하다. 이건 누군가의 성공 수기도 아니고 에세이도 아니고, 봉사활동을 적은 일기도 아니다. 이 글은 소설이기 때문에 따뜻함을 쓰기 위해 따뜻함으로 책을 가득 채울 수 없다. 소설은 재미있어야 하니깐.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 그 말만 반복하는 뻔한 단조로움을 독자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따뜻한 소설에는 어두운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러다 보니 따뜻한 이야기를 쓰고 싶은 소설가는 한 가지 딜레마에 빠진다. 극적인 이야기를 위해 어두운 내용이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어두운 이야기에 너무 깊이 빠져버리게 되면 따뜻함이 빛을 발하지 못한다. 끝에 가서 억지로 모든 일을 해피엔딩으로 끝맺는, 그래서 독자들은 충분히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가 되기 쉽다. 물론 책을 읽는 사람들도 그걸 안다. 이야기의 후반부까지 수많은 문제와, 혼란과, 어두운 이야기가 점점 더 깊이를 더해가게 되면 독자는 불안해진다. '이 이야기는 도대체 어떻게 끝이 나게 될 것인가?', '몇 번 읽어봤던 억지 끝맺음으로 이 책도 끝나는 게 아닐까?' 이런 불안감이 피어오르고, 불안은 책에 몰입하는 독자를 방해하기도 한다.


그래서 따뜻한 이야기에는 유머, 그러니깐 위트 있는 문체가 필수다.


어두운 이야기를 쓰면서도 거기에 너무 깊이 빠져들지 않게 만드는 위트 있는 문체는 어두움 끝에 나타나는 따뜻함을 보다 자연스럽게 만든다. 그래서 따뜻한 소설에는 어두운 이야기 필요하고, 그 글은 위트 있는 문체로 쓰여야 한다.


프레드릭 배크만은 위트 있는 문체를 가진 작가다. 억지로 쥐어 짜낸 유머 말고, 일상의 말투에서 자연스럽게 묻어 나는 유머, 그런 스타일을 바탕에 깔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따뜻한 소설을 쓰기에 가장 알맞은 소설가 중 한 명이다. 아마 그도 그걸 알고 있어서일지, 그의 소설 대부분이 따뜻한 소설이기도 하다. 그의 책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도 그런 소설이다.


물론 그는 소설에는 한 가지 요소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말했듯이 이건 재미가 필요한 책, 소설이기에 흥미진진한 이야기 구조가 필요하다. 그의 책은 항상 처음부터 모든 걸 밝히지 않는다. 어떤 때는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것처럼 조금씩 흘리던 실마리를 천천히 풀어내기도 하고, 어떤 책은 등장인물의 이상한 행동을 그의 과거로 돌아가서 설명해주기도 한다. 아무튼, 그의 이야기는 노골적이지 않다.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는 그런 면에서 아주 독특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는 책이다. 주인공인 7살 아이 엘사에게 할머니는 잠이 들락말락할 때 언제나 동화 속 이야기를 들려줬다. 흔한 이야기 말고, 할머니가 직접 지은 이야기, 그래서 엘사와 할머니만의 것인 '미아마스 왕국'이야기다. 엘사는 현실에서 어떤 일을 겪을 때마다 할머니가 들려준 미아마스 왕국 이야기에 빗대어 생각한다.


그러니 이 소설에는 두 개의 이야기가 있다. 엘사가 사는 현실의 이야기, 그리고 엘사와 할머니의 상상 속 왕국, '미아마스 왕국'이야기다.



이 문단에는 책 내용이 조금 이어진다. 책을 온전히 읽고 싶다면 이 문단은 생략해도 좋다. 할머니는 소설 초반에 암으로 돌아가신다. 돌아가시면서 미아마스 왕국이 기사인 엘사에게 한 가지 임무를 준다.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편지를 전해 달라는 임무다. 한 명에게 편지를 전해주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 사람을 통해 할머니의 또 다른 편지를 찾고, 또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는 일이 이어진다. 그러면서 7살 아이인 엘사는 할머니가 편지를 전해달라고 한 사람들, 같은 건물에 사는 사람들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아픔도 자연스럽게 치유되게 된다. 마치 할머니는 '나는 이 사람들을 돕기 위해 여기 모았다. 그런데 나는 아직 이들을 끝까지 돕지 못했어, 그러니 남은 역할을 너에게 맡길게 엘사'라고 말하며 이 임무를 맡긴 것만 같다. 그리고 알다시피, 이건 따뜻한 이야기라서 온갖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엘사는 할머니가 준 임무를 아주아주 성공적으로 마친다.



엘사는 7살 아이다. 사실 편지를 전달해주는 것만 해도 쉽지 않은데 소설 속에서 엘사는 편지를 전달해주며 여러 어려움을 겪는다. 덩치 큰 개를 만나기도 하고, 술에 취한 어른을 만나기도 하고, 사람들이 모두 피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심지어 폭력을 일삼는 범죄자를 만나기도 한다. 뭐 아무튼 할머니가 시킨 일 치고는 그리 쉽지는 않다. 왜 굳이 할머니는 엘사에게 이런 임무를 주게 됐을까? 아니, 프레드릭 배크만은 왜 하필 7살 아이를 실마리를 풀어 가는 주인공으로 두게 되었을까?


아마 아이만이 할 수 있는 것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항상 어른이 아이보다 더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엘사도 어른들을 보며 이 사람은 이런 초능력이 있고, 저 사람은 저런 초능력이 있구나 하며 어른들의 능력을 초능력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분명히 어른들은 하지 못하는, 아이들만이 할 수 있는 능력, 그들의 초능력도 있다.


'편견 없이 바라보는 일'


할머니의 임무는 그냥 편지 전달이 아니었다. 그들이 가진 아픔을 치유해주는 일이다. 그런데 그들이 가진 아픔이라는 게 당연히 몸이 아픈 것만은 아니다. 그들에겐 자신들의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 안에서 받은 상처로 마음의 문을 닫았을 뿐이다. 그렇게 마음의 문을 닫은 사람들을 치유해줄 수 있는 사람은 그들을 어떤 선입견도 가지지 않은 채로 바라보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다. 어른이 된 우리는 아픔을 겪은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그 아픔이 그에게 어떤 변화를 줬겠지라고 먼저 단정 짓는다. 그걸 배려해준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사람이 원하는 건 그냥 당신이 아무런 생각을 갖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그들에게는 자신이 가진 기억보다 다른 사람과 같은 일을 해도, 같은 행동을 해도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순간이 더 힘이 들 수 있다.


아무런 선입견 없이, 같은 행동을 같은 행동으로 받아들여 줄 수 있는 능력, 그건 아이들의 초능력이다.


책에서 아무런 편견 없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엘사에게 브릿마리는 이렇게 고백한다.

"우리는 남들이 우리를 사랑해주기를 바란다.

그게 안 되면 존경해주길.

그게 안 되면 두려워해주길.

그게 안 되면 미워하고 경멸해주길.

우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남들에게 어떤 감정이라도 불러일으키길 원한다.

우리의 영혼은 진공상태를 혐오한다.

무엇에라도 접촉하길 갈망한다."


사실 사람들에게는 사랑이 필요할 뿐이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줄 수 있는 누군가의 사랑.

할머니는 그런 초능력을 가진 사람에게 임무를 맡기고 싶었고, 프레드릭 배크만은 그런 주인공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 일은 7살 아이인 엘사가 해야만 했지 않을까.


7살 아이한테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그 답이 이 책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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