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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혁 Jul 03. 2022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실패를 딛고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우리 모두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실패를 경험한다.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기도 하고,

오랜 시간 동안 공들 일이 무너지기도 하고,

영원할 것만 같던 사랑이 신기루처럼 사라지기도 하고,

추억을 공유하던 친구들이 서서히 멀어지기도 한다.


그 모든 일은 내 탓일 수도,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아무튼 우리는 그렇게 넘어지면서 살아간다.

인생을 살면서 마주하는 이 수많은 실패, 화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혼돈'라 불리는 것들

그 혼돈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삶을 이어나갈 것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화자의 여정을 담은 이야기가 바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이다.


이야기는 혼돈에 맞서는 삶의 자세를 배우고 싶은 '화자', 그리고 화자의 삶에 해답을 줄 것만 같았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을 통해 이어진다. 화자는 그의 삶을 만나기 전에 혼돈을 마주하고 있었다. 자신을 사랑해주던 남자에게 자신의 실수로 커다란 상처를 입히고, 떠나버린 그를 기다리며 깊은 혼돈 속에 빠져있었다. 삶을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모르던 화자는 우연히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눈에 띄는 어린 시절은 아니었지만 꿋꿋한 호기심을 가지고 분류학자가 되었다. 아직 세상에 어떤 종들이 존재하는지 알려지지 않은 시기에 아주 오랜 시간을 공들여 지구 상의 수많은 물고기를 분류하고, 그에 걸맞은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렇게 공들여 수집한 표본, 거기에 붙은 이름표가 대규모 지진으로 한 순간에 무너졌다. 표본은 박살 나고, 거기에 붙은 이름표는 모두 뒤섞어버렸다. 수십 년간 공들여왔던 일이 한순간에 무너져버린 참혹한 광경 앞에서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앞으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겠다고 다짐한 듯이 바늘을 들고 물고기 표본에 이름을 꿰매기 시작했다. 물론 모든 것을 살리진 못했지만 가능한 것들을 지켜내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이어나갔다. 그런 그의 삶에서 화자는 혼돈에 대처하는 삶의 태도를 배울 수 있기를 바랐다.


'결코 승리하지 못할 거라는 그 모든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로 하여금 혼돈을 향해 계속 바늘을 찔러 넣도록 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시련이 와도 더 강하게 밀어붙이는 태도, 낙관적인 자기기만, 자신의 일이 신의 의도를 해석하는 일이라는 자부심,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에서 화자는 그 답을 찾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그의 삶에 대해 너무 많이 알아버린 이후에는 그가 답을 줄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신이 사다리처럼 종을 설계했다는 생각에 심취한 나머지 우열을 정하고, 인간에게도 그 우열을 접목시켜 우생학을 지지했다. 우생학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어 '적합한 사람들'을 구분하고, 그들을 모으고, 그들이 아이를 가질 수 없도록 강제로 불임시술을 하는 것을 지지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씻을 수 없는 아픔을 주었다.


결국 화자는 그에게서도 삶의 답을 구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한 가지 사실이 밝혀진다. '물고기'라는 분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고기는 겉으로 비슷할지 몰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너무도 달라 같은 것으로 분류할 수 없는 집단이다. 어떤 물고기는 장기나 기관이 오히려 우리 인간과 더 가깝기도 하다. 모든 물고기를 물고기라는 하나의 분류로 구분 짓는 일은 산에 사는 모든 짐승을 산짐승이라는 하나의 분류로 구분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 우리가 생각하는 '물고기'라는 범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건 인간의 상상이 만들어낸 산물일 뿐이다.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혼돈이다. 그것도 아주 거대한 혼돈이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게는 일생동안 했던 일이 잘못되었을 수 있다는 혼돈이고, 보통 사람들에게도 자신들이 믿고 있던 세계가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혼돈이다. 중요한 건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혼돈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이다.


어릴 때부터 '우리 삶은 중요하지 않다.'라고 이야기했던 화자의 아버지는 과학자였음에도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반대로 어릴 때부터 남들보다 느리고, 잘 적응하지 못했던 언니는 그 사실을 쉽게 받아들였다.

무엇이 그들이 혼돈을 대하는 태도를 갈랐을까?


혼돈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이해하는 방식이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마음가짐. 화자가 '민들레 법칙'이라고 부르는 것이 필요했다.

'어떤 사람에게 민들레는 잡초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똑같은 식물이 훨씬 다양한 것일 수 있다 약초 채집가에게 민들레는 약재이고 간을 해독하고.. (생략)'


책은 분명히 표현하고 있지 않지만 내 생각을 붙여 정리하자면 이렇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인생에서 마주하는 실패, 화자가 말하는 '혼돈'은 인간이 만든 범주일 뿐이다. 자연에는 성공도, 실패도 없다.

인간인 우리가 하나의 결과를 '성공'이라고 단정 짓고 그 외의 것들을 '혼돈'이라고 규정한다.

우리는 우리가 규정한 혼돈으로 우리의 인생이 향할 때 힘들어하고, 혼란스러워한다. 그러나 사실 혼돈은 없다.


한 가지를 '질서'라고 구분하는 사람에게는 질서 있지 않은 것은 혼돈이다.

한 가지를 '성공'이라 구분하는 사람에게는 성공이 아닌 것은 실패다.

하지만 무엇이 당신이 '질서'라고 부르는 것을, 당신이 '성공'이라 부르는 것을 옳다고 규정했는가


자연은 그러지 않았다. 인간이 규정했을 뿐이다.

그리고 인간은 틀릴 수 있다.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래서 화자의 아버지는 받아들이지 못했고, 화자의 언니는 받아들였다.

한 명은 구분하는 사람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애초에 구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우리도 같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많은 것들을 규정한다.

이것이 옳고, 저것이 그르다. 이 삶이 바르고, 저 삶은 바르지 않다. 이 사람이 성공했고, 저 사람은 실패했다.

그리고 우리가 규정짓고 있는 그 삶의 방식이 우리에게 혼돈을 가져온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자.

자연은 질서와 혼돈을 나누지 않는다.

혼돈이라는 것은 없다. 당신의 마음속에만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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