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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랖이 넓은 사람

[나의 글/삶과 문화/한국일보 2013.3.1.]

'오지랖'은 본래 '겉옷의 앞자락'을 의미하고, '오지랖이 넓다'는 말은 남의 일에 두루 참견하는 모양을 일컫는다. 오지랖이 넓은 사람들은 '자기 일이나 신경쓰지' 식의 냉소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간혹 주변인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 각박한 요즘의 세상인심에서는 오지랖이 넓어서 문제인 경우 못지않게 어려움에 빠진 타인을 돕지 않는 이기주의도 문제다.


얼마 전 대낮 지하철 안에서 열 여덟살 먹은 젊은이가 중1 여학생을 성추행하는데 주변에서 아무도 피해자를 돕지 않았다고 한다. 어려움에 빠진 남을 보고도 도움을 주지 않는 행동은 여러가지 설명이 가능하다. 먼저, 주변 사람들이 곤경에 처한 이를 이미 도와주고 있거나 도울 것이라고 지레 판단하고 멈칫거리는 것이다. 여러 구경꾼이 서로에게 책임을 미룸으로써 마음의 부담도 줄이고, 방관자의 역할에 만족한다. 두번째로는 구경꾼들이 가해자가 아주 막강한 힘의 소유자이거나 상황 자체가 불가항력이라는 추론을 하는 경우다. 다른 이가 도와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불가능의 사회적 증거로 받아들이고 도움주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이렇듯 사람들은 점점 자신이 알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관심과 책임을 포기하는 한 편으로, 잠재적으로 이익이 될만한 지인의 수를 늘리는 데에 혈안이 되고 있다. 특히 정치 같은 분야에서는 발이 넓은 것이 능력의 지표인양 받아들여진다. 고위직에 지명되었다 낙마한 한 인사는 '형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만 800명이라는 설이 있다. 인맥관리의 귀재이자 정부의 실세라 불리는 어떤 이는 한 때 3,000명의 지인번호를 입력한 휴대전화를 2개씩 들고 다녔다고 언론 보도는 전한다. 소셜미디어는 어떤가. 사람들은 수 백 명의 페이스북 친구들을 자랑한다. 하지만 그 어두운 면, 예를 들어 영국에서 1,000명이 넘는 페이스북 친구를 가진 한 여성이 자살을 암시하는 글을 남기고 실제로 자살했지만, 무려 이틀이 지난 후에야 딱 한 사람만이 의문을 갖고 그 여성의 어머니에게 여성의 안부를 물었던 일 등에는 눈을 감는다.

아무튼 강하건 약하건 다양한 인맥은 때때로 커다란 힘을 발휘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라노베터는 약한 관계의 장점을 발견한 학자다. 그는 직장을 옮긴 사람들에게 어디서 얻은 정보로 취직하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른바 강한 관계라고 불리우는 '절친'이나 가족보다도 평소 업무와 관련해서 공식적 소통을 주로 했던 사람들과의 관계가 예상외로 유용함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인의 수를 무작정 늘렸을 때 감당할 수는 있을까. 개인차는 있겠지만 아무리 800명의 '형님'과 3,000명의 휴대전화 연락처를 갖고 있다고 해도,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인맥의 수는 대략 150명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로빈 던바라는 인류학자가 제시한 숫자로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인맥의 크기가 의외로 크지 않음을 보여준다.



사업가나 정치가라 할지라도 뚜렷한 철학도 없이 무조건 지인만 늘리다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부패와 청탁의 늪에 빠져버릴지도 모른다. 더구나 가뜩이나 바쁜 세상에 그 많은 지인들을 일일이 챙길 시간도 돈도 없거니와, 지인의 수를 무조건 늘려야 한다는 스트레스는 그로 인해 얻게 될 효익보다 결코 크지 않을 것이다.

'업 인디 에어'라는 영화에서 조지 클루니는 일상의 복잡함을 내려놓고 인간관계에 구속 받지 않는 외로운 늑대 같은 삶으로 돌아가자고 말한다. 


하지만, 그도 결국 가족의 힘에 의지하려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에게 표현할 관심과 사랑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정작 자신의 가족은 소홀히 하면서 단지 인맥을 넓히기 위해 연일 폭탄주를 들이키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에겐 '모르는 사람'에 대한 따뜻한 관심도 필요하다.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살뜰히 챙기면서도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어려움에 처할 때 외면하지 않는 '오지랖'이 넓은 사람, 그런 사람이 되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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