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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나도 몰라

[나의 글/삶과 문화/한국일보 2013.5.16.]

연구를 업으로 삼다보니 설문조사를 해야할 때가 있다. 응답자들이 난처한 질문을 발견할 때면, 몇 분씩 망설이기도 하고, 때로는 공란으로 두기도 한다.


어차피 내 생각을 바탕으로 그냥 답변하면 되는 것인데, 왜 망설이게 되는걸까? 첫 번째는 실제로 응답자가 스스로의 마음을 모르는 경우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이슈에 관해 질문을 받으면, 그제서야 사람들은 곰곰이 그 논제에 관해 생각을 해보게 되고, 그런 생각이 거칠게나마 어떤 방향성을 띠는 단계에 이르러서야 설문지에 답할 준비가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질문을 아예 이해할 수 없거나 너무 어려운 경우에는 오랜 시간 생각을 하고도 결국 '모름'을 체크하거나 무응답을 선택하기 마련이다.

두 번째는 질문 자체가 아닌 다른 요인에 마음을 빼앗겼을 경우다. 답변을 했을 때 주어지는 보상이 너무 크거나 작을 때, 예를 들어 답변을 한 사람에게 추첨으로 아주 비싼 자동차를 주는 경우에는 설문 내용 자체보다 답변시 받게 되는 보상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얻은 답변은 의미 있는 연구 자료가 되기 힘들다. 독재국가에서 국민이 처벌 때문에 설문조사에 정직하게 대답하기를 두려워해서 자신의 마음에 반하는 답을 할 경우에도 오류가 생기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설문조사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응답과 행동의 간극이다. 1930년대 인종차별이 여전했던 미국에서 라피에르(LaPiere)라는 학자는 수백 개의 모텔과 음식점 주인들에게 "중국인 부부가 손님으로 온다면 받겠느냐"고 설문했다. 그러자 거의 모든 응답자가 "노(No)"라고 답했다. 하지만, 막상 그 학자가 실제 중국인 부부에게 응답자가 운영하는 모텔에 들어서게 하자, 실제로 서비스를 거부하는 곳은 거의 없었다. 이런 한계 때문에 설문지에 드러난 자기보고된 태도 (self-reported attitude)가 과연 믿을만한 것인지 지금까지 학자간의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응답과 행동이 달라서 생기는 설문조사의 오류는 실생활에서 말과 행동이 다른 경우가 낳는 결과에 비하면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바로 일상에서 상습적으로 자기 자신을 속이면서도 그런 자신의 오류를 전혀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게 문제다. '나는 남보다 우월한 사람'이라는 착각 속에 살면서 남을 하대하고 괴롭히면서도 언제나 마음의 평온을 유지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사람 말이다. '내 결정은 항상 옳으니 그냥 밀어붙이면 돼'라는 착각도 흔히 볼 수 있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대통령이 9ㆍ11 이후 이라크전 등 일련의 전쟁에 뛰어들면서 사용한 전비(戰費)는 미국 전역의 고속도로를 순금으로 포장하고도 남을만한 거액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약 10조 달러(장기비용 포함)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미국경제는 전쟁과 함께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고 이제 그의 전쟁 결정이 과연 옳았는가가 다시 화제가 되는 가운데, 최근 그의 발언은 과연 그가 자신의 결정이 가져올 파장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고 있었을까 의문을 낳는다. "공포를 불러일으킨 대량살상무기(WMD)를 찾진 못했지만 2003년의 이라크 침공은 역사가 판단할 것"이라는 당당한 발언.


지금 우리는 감당할 수 없이 촘촘히 연결된 세계 속에서 너무도 큰 결정을 아주 쉽게 내리면서 산다. 내 마음을 좀처럼 가늠할 수 없는 문제일수록, 우리는 보다 균형 잡힌 정보를 취해서 조금이라도 더 합리적이면서도 남을 배려할 수 있는, 인간적인 답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지구의 자원이 갈수록 고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아파하면서도, 커피전문점에서 머그컵 대신 종이컵을 고집하고 있지는 않은지. 아이들 교육이 문제라면서도 오늘도 불필요한 술 약속을 잡아 새벽에 귀가하는 건 아닌지. 입으로 선(善)을 말하지만 행동은 다르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이제 어떤 말로, 어떤 행동으로 살아갈 것인가 고민해볼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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