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아침을 열며/ 한국일보 2018.10.6.]
동서양의 다양한 리더십 이론들이 공통으로 지향하는 바는 무엇일까. 바로 ‘솔선수범’이다. 어느 집단에서나 새로운 규범과 가치를 주창하는 리더들은 본인 스스로가 그 가치의 표상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 정부에서 ‘부동산의 공공성’이나 ‘모두가 강남에 살 필요는 없다’는 말을 하는 리더들 중 다수가 집이 강남이다. 특목고를 축소하자면서 자녀들을 그곳에 보내기도 한다. 도저히 영이 설 수 없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강남에 있는 것일까? 바로 학군과 다양한 사교육 시설, 타인들의 선망, 그리고 교통 등이 그들을 강남으로 집결하게 했다. 중진국 이상의 엘리트들은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그런 가치가 서울이라고, 대한민국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었다. 이러한 흐름을 영리하게 이용한 MB 정부는 자사고와 특목고의 확충을 통해 강남 일변도의 입시를 지방 명문 자사고와 특목고 증설로 흡수했다. 비록 일반고의 파탄이라는 결과는 대단히 잘못됐지만, 그들은 적어도 엘리트 교육의 접근성을 전국적으로 높였다. 반면 이번 정부에서 시도한 교육문제 해결을 위한 공론화 과정은 대한민국 입시가 공교육, 사교육, 관료, 학생, 대학 등이 치열하게 전쟁을 벌이는 거대한 이익 전쟁터임을 확인하는데 그치고 말았다. 공론화 결과에서 공교육에 대한 파격적 지원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영리한 정권은 욕망에 맞서지 않는다. 욕망을 당위로 눌러 제압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서민에서 엘리트층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갖는 욕망의 해소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보여주며, 적어도 당신은 이것들 중 하나는 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불안과 초조에 빠진 사람들에게 예측 가능한 정책의 흐름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 하루가 멀다고 발표되는 ‘종합’ 대책보다 중요하다. 왜 요즘 우리 경제에서 투자가 저조하냐는 질문에 대한 답도 이 불확실성과 불안이다.
왜 진보정권만 되면 부동산이 오르느냐는 문제제기가 있다. 20억짜리 아파트에 종부세를 올리는 것도,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조정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대통령과 관료의 진심 어린 고뇌가 느껴진다. 하지만, 2013년 이후 7년간 노후 아파트가 무려 일곱 배 증가하는 현실에는 눈을 감고 있다. 서울과 수도권에는 아파트가 많지만, 단지 내 지상부에 차량이 다니지도 않고 커뮤니티 센터와 체육시설, 근린 상가 등이 편리하게 되어있으며 특히 승강기 안전 문제 등에서도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새 아파트는 절대 부족하다. ‘낡은 아파트’보다 ‘새 아파트’라는 새로운 재화에 대한 수요, 바다모래로 짓지 않고 튼실한 아파트에 대한 수요는 급증하는데 여전히 비가 새는 낡은 아파트를 재건축하는데 소요되는 행정절차는 무려 9단계, 리모델링은 3단계다. 절차 하나하나를 거칠 때마다 이권을 노리는 승냥이들과 권력의 검은 결탁의 여지는 커진다. 어차피 인구감소 때문에 단지 내에 학교도 지어주지 못할 텐데 자꾸 외곽에 새 아파트를 지어주겠다고 하지 말고, 노후 아파트 주민들에게 새 아파트의 욕구를 허하고, 대신 개발로 인한 차익은 상당 부분 세금으로 흡수하는 게 정도다. 그 돈으로 서민을 위한 공공임대주택을 더 짓고 공교육에 대한 지원도 파격적으로 해서 특목고가 움찔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
냉정하게 말한다. 우리 내부에서 들끓는 욕망을 억누르고 유예하는 방식으로는 오래 버티기 어렵다. 결국에는 터져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먼저 집권층 스스로의 욕망에 정직하라. 그리고 본인들의 욕망과 다르지 않은 일반 국민의 욕망을 인정하라. 그 욕망을 다양한 방식으로, 신속히 해소해줄 수 있다는 시그널을 보내라. 그리고 약자들을 위해 사회안전망을 튼튼히 구축하자. 다양한 계층의 욕망을 영리하게 조율해내는 것, 그것이 정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