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기고/한국일보 2017.1.4.]
2017년은 로봇-인공지능경제의 원년이 될 것이다. 내가 ‘라 이코노미’(RA Economy: Robot-Artificial Intelligence Economy)라 칭하는 이러한 변화는 로봇과 인공지능이 인간노동의 주요 부분을 대체해내는 경제를 의미한다.
최근 한 교수는 동영상이나 그림을 입력하면 거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음악을 자동으로 작곡해주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었다. 기존 동영상 배경음악을 학습해서 유사한 음악을 제안해주는 단계를 지나, 사람이 가장 좋아할 만한 리듬과 멜로디를 자동으로 ‘창작’해서 새로운 느낌을 주면서도 호감을 줄 수 있는 음악을 작곡해주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기존 영상을 분석해서 이미지와 음악의 연계규칙을 찾아낸 방식에 그치지 않고, 인간에게 즐거움을 주는 원리를 학습해서 스스로 그러한 음악을 만들어내는 인공지능이 바로 우리 곁에 와 있다. 아직은 마지막 단계에 사람이 개입해서 약간의 편곡을 해줘야 하지만, 머지않아 그마저도 완전히 필요 없는 인공지능 소프트웨어가 만들어질 전망이다. 이젠 노래도 인간이 작곡한 것과 인공지능이 작곡한 것을 분리해서 표기해야 할지 모른다.
지난해 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 알파고에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던 즈음, 유럽과 미국에서는 제러미 리프킨이 얘기했던, 대체에너지에 기반한 ‘3차 산업혁명’을 넘어서 주요 공정에 인공지능이 개입하게 되는 ‘4차 산업혁명’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었다. 4차 산업혁명의 전시장 격인 스마트공장에서는 더 이상 사람이 주역이 아니다. 사람은 공정의 감시자이자 하나의 옵저버일 뿐이다.
새해는 로봇과 인공지능이 본격적으로 인간을 주(主)가 아닌 보조(補助)로 만드는 새로운 해가 될 것이다. 하지만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이 스스로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기본적인 삶의 여건은 보장되어야만 한다. 정작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은 기술 그 자체뿐만 아니라 기술의 뒤편에서 하루하루 삶을 영위해 내야 하는 인간이다. 기술변화가 긍정적일 수 있는 유일한 조건 역시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을 때이다.
병신년의 정치변동이 정유년을 맞아 ‘아랍의 봄’의 말로와 같은 혼란상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려면 새로운 거버넌스를 만들 때 인간을 가장 앞세워야 한다. 수시로 야근과 주말 근무에 시달리는 경비원과 같은 노무직과 공장노동자들은 촛불시위에조차 나올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무인경비시스템과 스마트공장에 자리를 빼앗기고 거리에 나앉을 때 쯤이면 촛불시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혼란이 전 국토를, 아니 전 세계를 뒤흔들지도 모른다.
이러한 예감은 이미 많은 이들에게 공유되어 왔다. 그런 분위기 때문인지 지난 2012년 대선에서도 ‘경제민주화’라는 구호가 정치인의 입에 수시로 오르내리곤 했다. 하지만 경제민주화는 한낱 표를 얻어내기 위한 거짓 미끼에 불과했음이 명확해졌다. 비록 정치인들에 한 번 속았다 할지라도 대안경제 모델의 실현을 더 이상 미룰 수는 없다. 이제 로봇의 보조 역할을 하게 될 많은 '보통 노동력'들에게 기본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소득을 제공해야 돌아가는 경제가 우리 앞에 성큼 와 있다. 한국이 어서 이러한 대안경제 모델을 실현해야 한다. 한국이 대안경제 모델의 리더가 되어야 한다.
대안경제 모델의 전조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재생에너지와 같은 에너지 혁명, 소유보다 접근을 더 중시하는 공유경제, 투자자를 위해 무제한 이윤추구에 내몰리기보다 조합원들이 선의의 사회기여를 앞세우는 협동조합, 그리고 직장을 찾는 젊은이들과 노동시장에서 은퇴한 경제적 소수자를 위한 기본소득 모델까지. 새해에 우리가 뽑아야 할 새로운 리더십은, 새해에 우리가 만들어 내야 할 새로운 거버넌스는 바로 이러한 바탕 위에서 수십만 청년 실업자에게 희망을 주고, 역대 최고 취업률로 스스로와 자식세대를 부양하려 애쓰는 노년층, 그리고 만성적인 실업위험에 노출된 중장년층까지 두루 사회의 지속 가능한 일원이 될 수 있도록 돕는 거버넌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