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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혼식'에 다가서자

[나의 글/삶과 문화/2012.1.19.]

성장기 아이들이 한 두가지 음식만 집중적으로 섭취하면 질병이나 성장부진으로 평생 고생하기 쉽다. 그래서 부모들은 가급적 다양한 음식을 골고루 섭취시키기 위해 애를 쓴다. 편식의 유형을 정리한 연구에 따르면,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먹는 일을 소홀히 하거나 음식의 맛이나 향에 지나치게 예민할 경우 충분한 영양을 골고루 섭취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또 부모가 아이의 성장을 위해 특정한 음식을 강요할 경우에도 발생한다. 편식은 건강상의 문제나 질병과 연관이 있으며, 방치하면 할수록 심해진다고 한다.


그런데, 음식을 가리는 것 이상으로 심각한 문제는 바로 '정보 편식'이다. 습관적으로 소비하는 정보와 그 공급원인 미디어는 우리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슬그머니 지배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형성된 가치관은 세상을 보는 관점이나 특정 사안을 해석하는 방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미국에서 이뤄진 한 연구에 의하면 폭스 뉴스를 주로 시청하는 사람들은 이라크전에서 상당수의 민간인 사상자가 있었고,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WMD)가 발견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거의 알지 못했다. 그들에게는 이라크인들이 후세인에게 '해방'되어 자유를 만끽하는 이미지만이 강하게 남아있다. 하지만, NBC나 뉴욕타임스를 주로 접하는 사람들은 이라크전을 비판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확률이 평균치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지 W 부시라는 대통령이 얼마나 많은 예산을 정당화하기 힘든 전쟁에 쏟아 부었는지 관심을 갖고 보도한 언론들은 다수의 독자들로 하여금 비슷한 시각을 공유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조지 거브너라는 학자는 사람들이 섹스나 폭력으로 가득찬 콘텐츠를 습관적으로 접하면, 세상이 온통 불의와 범죄로 가득 차있다는 착각에 빠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바로 '비열한 세계' 신드롬이다. 이러한 인식은 폭력을 당연시하고, 폭력에 대해 무감각해져버리는 부작용을 일으킨다. 미디어가 조장한 세상에 대한 왜곡된 인식은 개인의 비행을 정당화하고 냉소주의에 빠지게 할 우려가 다분하다. 이런 현상은 폭력적 게임에 빠진 아이들이 자신이 게임공간에서 키우는 '캐릭터'를 스스로와 동일시하는 경우에도 잘 드러난다.


지금 우리 사회가 정치적 '세대 분단' 상태에 빠진 것도 젊은이들이 주로 이용하는 매체가 장노년층의 그것과 전혀 다른 데 원인이 있다. 젊은이들이 다수인 소셜미디어 속에서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끊임없이 나누는 정보는 그들의 생각을 한쪽으로 몰아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노년층이 주로 의존하는 특정매체 역시 '그들만의 리그'를 만드는 자양분이 된다.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무심코 접하는 텔레비전이나 신문, 인터넷은 우리의 사고방식을 끊임없이 견인하고 있는 매체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돌파구는 바로 '정보편식'을 벗어나 '정보혼식'으로 다가서는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언론의 논조가 양극화된 사회에서는 실체적 진실을 알기 위해 양 극단의 미디어를 꼼꼼히 비교해보는 수고가 절실히 요구된다. 진실은 양측의 중간 어디쯤인가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정보 혼식은 종이신문, 방송, 인터넷 등 다양한 종류의 매체를 소비하는 것과 한 종류의 매체 중에서도 여러 논조의 매체를 두루 살펴보는 것을 포괄한다. 비록 시간과 비용이 좀 더 들지언정, 이러한 정보 혼식을 통해 균형 잡힌 지식과 판단을 얻을 수 있다면 충분히 감당할 이유가 있지 않을까?



좋은 음식의 간이 조금 심심하듯, 좋은 정보도 조금 지루하면서 무미건조해 보이는 경우가 많다. 뉴욕타임스가 싣는 장문의 기사들은 무엇하러 이런 측면까지 다루고 있을까 싶을 정도로 취재 대상의 다양한 면모를 골고루 정리해준다. 우리에겐 그런 미디어가 부족하니 조금 불편하더라도 자신과 다른 관점을 가진 미디어를 자주 접해보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불통' 현상을 조금은 개선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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