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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세, 39세 천재를 위하여

[나의 글/삶과 문화/한국일보 2013.10.15.]

입시철이 다가오면서, 주변의 많은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좋은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교에 넣을까 고민하는 모습을 본다. 물론 나 자신도 시골 학교에 다니면서 자연을 벗삼아 손수 기른 작물을 손에 들고 기뻐하는, 초등학교 다니는 큰 애를 보고 가끔은 "내가 너무 아이를 순진하게 키우는 건 아닌가?"하는 불안감을 느낀다. 


초등학교 고학년인 아이를 꼭 국제중에 보내야 한다며 분주히 '입시정보'를 캐러 다니는 한 친구는 요즘 세상엔 부모가 유치원부터 달라붙지 않으면 자식을 좋은 대학에 결코 보낼 수 없다고 일갈하곤 한다. 그 친구 앞에서 나는 '세상물정 모르고 자식을 시골스럽게 키우는' 철없는 학부모가 아닐런지.


그런데 한가지 할 말이 있다. 우리가 학부모로서 고민하는 것들은 대부분 아이의 19세 전후에 관한 것들이 대부분인 것 같다. '명문' 대학에 진학시켜 10대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우리 교육의 최대 현안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하지만, 아이가 만약 19세에 인생의 절정기를 맞는 '19세 천재'라면, 그것은 행복이라기보다는 불행에 가까운 것은 아닐까.


오히려 아이들의 절정기는 20대와 30대여야 할 것 같다. 학자의 길을 걷는 청년이라면, 20대에 학사-석사-박사 과정을 밟으면서, 지식의 깊이와 폭을 마음껏 넓히고 자신이 평생 연구할 어젠다를 손에 넣은 뒤에 30대 10년을 다 바쳐 일로 매진하는 모습이 흔한 과정이다. 그런데, 인생의 절정기를 19세로 전제한다면, 이삼십대의 노력은 그냥 김빠진 맥주일 뿐이다. 인생의 정점을 이미 경험했는데, 무슨 흥이 나서 전력질주를 하겠는가.


클라우스 폰 클리칭(Klaus von Klitzing)이라는 노벨상 수상자가 얼마 전 필자가 재직중인 학교에 와서 특강을 했다. 그는 1943년에 태어나 30대 중반이었던 1980년에 뮌헨 공대의 교수가 되었는데, 바로 그 시기에 발표한 논문이 '양자 홀 효과(Quantum Hall Effect)'라는 물리학에서의 기념비적인 발견을 담고 있었다고 한다. 


30대에 물리학계를 뒤흔든 논문을 쓰고, 40대 초반이었던 1985년에 노벨상을 받은 뒤, 70대가 된 지금까지 세계 곳곳을 다니며 자신의 최신 연구를 소개하고 있는 그에게 인생은 충분히 흥미진진한 듯 보였다. 그를 보기 위해 장사진을 이룬 수많은 초중고생들과 기꺼이 사진을 찍을 때, 그는 천진난만한 미소를 보였다. 그의 강연장은 마치 한류스타가 온 듯 북적거렸지만, 정말로 행복이 넘치는 왁자지껄함이 있는 시간이었다.


수학의 노벨상이라고 불리우는 필즈 메달(Fields Medal)의 경우, 수상자의 연령은 만 40세가 넘지 않아야 한다는 제한규정이 있다. 수학분야는 2,30대에 주요한 업적을 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러시아의 천재 수학자 그리고리 페렐만은 1966년생으로 불과 36세였던 2002년에 수학계의 최대난제 중 하나를 풀었고, 그 공로로 40세였던 2006년에 필즈메달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나 고사했다. 문제를 풀었으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라면서.

우리의 10대들은 너무 일찍 최고의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고난도의 문제풀이에 집중하며, 20대에는 이미 경험한 인생의 절정기를 뒤로 하고 이미 '익숙해진' 고난도의 문제들에 만족하며 안주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들에게는 '고난도'의 문제를 스스로 찾아내거나 정의할 의지가 부족하다. 어느 누군가가 그런 문제를 만들어 풀어 놓으면, 그 풀이를 찾아서 공부할 준비에 오히려 더 치중한다. 이런 식으로 공부한다면, 문제를 스스로 정의하면서 해결책 역시 스스로 찾아 제시해 내는 지식창조자가 되기는 영원히 글렀다.


내가 굳이 '19살 천재'라는 용어를 쓰는 것은 명문대학에 입학하는 순간 마치 인생의 모든 것을 다 이룬 것처럼 대접받는 우리의 풍토 때문이다. 이제 29세, 39세 천재들을 많이 길러야 할 때는 아닐까. 물론 김연아 같은 19세 천재도 필요한 분야가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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