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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공유와 경험의 시대

[세계일보 22.1.12 사이언스프리즘/ 내 글]

인증샷 이라는 경험의 공유
대리 만족과 공감 이끌지만
보편적 정서 거스르면 역풍
남에 대한 배려·존중 갖춰야


요즘 백화점들은 사람들 눈길을 끄는데 시쳇말로 ‘진심’이다. 건물 외벽 전체를 동영상 디스플레이로 활용해서 본래 건물이 아닌 환상적인 새로운 공간으로 인식되도록 한다. 또한 백화점 광장에 아이스링크를 꾸며 사람들에게 예기치 못한 재미를 주기도 한다. 이렇게 눈길을 끌기 위한 노력이야 마케팅의 오랜 기본이겠지만, 단순히 눈길을 끄는 것이 궁극적 목적은 아니다. 바로 다양한 사진과 동영상의 공유를 통해 고객의 경험이 스마트폰을 타고 눈덩이처럼 확산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경험의 공유가 기하급수적으로 일어난다면 천문학적 마케팅 비용을 충분히 뽑고도 남는다.

이러한 경험의 공유는 국경을 넘어 전 세계로 확산된다. 관광지에는 이제 사진 찍어 공유하는 곳으로 유명한 ‘스팟(장소)’이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다른 이가 그곳에서 찍어 올린 사진을 보며, 나도 언젠가는 그곳에 가서 비슷한 포즈로, 또는 전혀 다른 아이디어를 가미한 포즈로 사진을 찍어 올리고 싶어한다. ‘인증샷’이라 불리는 경험의 공유는 ‘나도 거기에 다녀왔다’는 자랑의 표현일 수도 있지만, ‘거기에 있는 나’의 모습을 통해 다른 이들과 공유한 경험의 표식을 남기는 측면이 강하다.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사진에 관해서는 나르시시즘(자기애) 측면의 연구가 다수 축적되어 있다. 사진을 많이, 자주 올리는 사람일수록 나르시시즘이 대체로 높은 경향성을 보여준다. 적절한 수준까지는 자기애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는 성향이 강한 사람일수록 사진을 올리려는 동기를 더 많이 갖게 되기도 한다.



타인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사람과 자신의 개별성을 중시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어떤 쪽이 더 사진을 많이 올릴까? 이에 관해서는 연구 결과가 다소 엇갈리고 있다. 관계의존적인 사람들이 더 많은 사진을 올린다는 일부 연구가 있는 반면, 자신의 개별성을 중시하는 사람은 남들과의 차별성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에 사진을 많이 올린다는 결과를 보여주는 연구도 있다.



우리가 타는 자동차, 집에서 사용하는 가구, 스마트폰에 설치한 앱들은 일상의 경험을 구성한다. 경험을 중시하는 흐름에 발맞춰 기업들은 최고 고객경험관리 책임자(Chief Experience Officer), 약자로 CXO를 두기 시작했다. 고객에게 인상적인 경험을 제공하고, 그것을 스스로 공유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마케팅이자 제품력이라는 ‘경험’을 얻게 된 것이다.



음식을 먹는 장면을 생생한 소리와 함께 공유하는 ‘먹방’ 인플루언서들이 이렇게 전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킬 줄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후루룩 쩝쩝 하는 소리와 음식에 들락거리는 젓가락과 포크, 그리고 치아를 사용한 씹기와 목넘김이 만들어내는 멀티미디어 종합 경험. 이를 통해 경험이 꼭 고상하고 희귀한 것일 필요는 없다는 점을 사람들은 알게 됐다. 내가 대리만족하고 공감할 수 있으면 그것만으로 족한 것이 바로 경험의 세계다.


사람의 인식에서 일어나는 경험의 구성도 문화와 교육의 영향을 받는다. 이제 우리 K팝 아티스트들은 소셜미디어에 한 줄의 생각이나 한 장의 사진을 올릴 때에도, 각 나라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고민해야 한다. 최근 어느 기업인이 느닷없이 소셜미디어에서 정치적 표현을 사용했다가 해당 기업의 주가가 폭락했다. 그 표현을 보고 불쾌해할 국가의 정부가 해당 기업에 불이익을 줄까 투자자들이 우려했기 때문이다. K팝 스타와 CEO의 자유분방한 한마디 말이 글로벌한 임팩트를 주는 시대, 이것이 바로 경험의 시대다.



경험을 중시하는 흐름은 모든 것이 순식간에 공유되는 기술적 발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앞으로 이러한 추세가 심화될 것임을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사람들의 보편적 성정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자신만의 개성을 잘 녹여낸 경험을 공유하는 기술. 이것은 바로 인문학적 소양과 상통한다. 남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갖추지 않으면 경험의 시대에 생존하기가 어렵다. 이래저래 남을 무시하는 ‘꼰대’들에게는 험난한 시대, 그것이 바로 경험의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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