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메타버스 시대의 소통

[2021.12.8 세계일보 사이언스프리즘/ 내 글]

가상과 실재 자유롭게 넘나들어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메타버스
인간적 냄새 나는 공간 되려면
따뜻한 소통·공유문화 복원돼야


3차원 가상공간인 메타버스 시대의 소통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가상과 실재를 실타래처럼 엮어 하나의 공간처럼 자유롭게 넘나드는 삶의 양식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첨단 가상현실 기술, 5G 초고속 이동통신망, 스마트폰이라는 인프라가 갖춰진 2020년대의 메타버스는 이전의 온라인 공간과는 분명 다르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새로운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표식은 바로 거래수단이다. 오랜 논쟁 끝에 부분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블록체인 기반 교환수단은 점점 더 정교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NFT(대체불가토큰)라는 블록체인 기반 고유성(거래기록) 검증체계가 디지털 상품과 연결되면서 폭발적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보통 사람은 꿈도 꾸지 못했던 대가의 예술작품을 디지털화해서 수만명이 분리 소유할 수 있다는 개념은 새로운 투자처의 등장을 알리고 있지만, 적지 않은 우려도 자아낸다.


메타버스의 기술적 구성은 수십년간 꾸준히 발전해온 VR(가상현실), MR(혼합현실), AR(증강현실) 기술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세컨드라이프와 같은 다중사용자 온라인 게임이 제공했던 가상공간도 현재의 메타버스, 즉 게더타운이나 제페토에서 볼 수 있는 가상공간에서의 활발한 인터랙션과 상당히 유사한 소통경험을 제공했다.



2000년대 필자가 재직했던 외국 대학에서는 세컨드라이프상에 온라인 캠퍼스를 구축해놓고 교수들이 자유롭게 모임을 갖고, 서로 특강을 해주고, 심지어 연주회를 열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지만 그 당시의 인터넷 인프라에서는 끊김없는 소통을 하기에는 다소 어려웠다. 클라우드와 5G 기술이 보편화된 지금도 메타버스상에서 수백명이 모이는 행사를 하다보면 접속이 끊기거나 느려지기 일쑤다. 세컨드라이프에서 두 번째 삶을 살려는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기술적 불편을 지금도 완전히 해소하지 못한 것을 보면 메타버스의 성공을 좌우할 핵심요소 중 하나는 신뢰성 있는 기술이 아닐까 한다.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이 1950년 한 논문에서 제안한 튜링테스트는 인공지능(AI)과의 대화를 실제 인간과의 소통과 구별할 수 있는지에 따라 AI의 성공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1966년 개발된 챗봇 ‘일라이자’가 사람의 반응에 맞춘 질의응답을 시연하자, ‘일라이자 효과(엘리자 효과)’라는 말이 등장했는데, 인간이 컴퓨터와 소통할 때 무의식적으로 컴퓨터의 행위를 인간의 행위와 같은 것으로 믿거나 의인화하는 경향을 일컫는 말이 됐다. 튜링테스트를 통과하고, 일라이자 효과를 더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결국 기계가 인간을 ‘확실히’ 속여야 한다는 딜레마를 낳게 된다.



가끔 초고속인터넷에 가입하라고 오는 스팸 전화에 마치 실제 사람에게 하듯 응답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을 보면, 우리는 앞으로 더욱 세련되어질 AI 상담원을 진짜 사람과 구별할 수 없게 될 확률이 높아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 그런 과정에서 인간은 기계와의 소통에서 어쩌면 더 편안함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어차피 무미건조한, 용건 위주의 대화로 일관할 전화통화라면 상대방이 진짜 사람일 필요가 없다고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메타버스와 AI 상담원의 시대에 인간의 삶이 더욱 풍성해지기 위해서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조금은 허술해보이지만 다정하고 따뜻한 소통을 더 복원시키는 수밖에 없다. 불과 3040년 전만 하더라도 동네 골목에서 아이들은 층간소음 걱정 따위는 없이 시끄럽게 뛰어 놀았고, 겨울이면 이웃집 담장은 모두 눈싸움 전쟁의 진지가 됐으며, 동네 웅덩이에 조금만 물이 고여 얼어도 임시 무료 썰매장이 됐던, 그러한 정경이 펼쳐졌었다. 어느 집에서 김장이라도 하려면, 동네 사람 모두 모여 김치 한 줄 쭉 찢어 밥 한 공기 더 퍼서 배불리 나눠 먹으려 했었다.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메타버스가 인간적인 냄새가 많이 나는 공간이 되려면, 조금은 허술하지만 따뜻한, 시끌벅적하지만 인간의 정이 느껴지는 그런 소통과 공유의 문화가 복원돼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작가의 이전글 사진 공유와 경험의 시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