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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 Nov 11. 2023

5. 심채경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별에서 빛나니까

지영이, 지영이가 생각났다. <1982년생 김지영> 말고, 고등학교 1학년 반친구 김지영. 이름도 가물가물 했었는데,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를 읽다 보니 얼굴도 기억난다. 목소리까지도.


아침 7시까지 등교해서 밤 11시까지 자율학습이라는 이름의 강제학습을 해야 했던 시절, 나의 주 무대는 옥상이었다.


옥상에서 글을 쓰고, 나는 왜 태어났을까, 내 의지로 오지 않은 이번 인생은 어떻게 살까 고민도 하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무엇보다 밤에는 별을 봤다. 사실 나는 별에 관심이 없었다. 반짝반짝 이쁘다 정도, 북두칠성 정도나 아는 얕은 지식뿐이었다.


내 친구 지영이는 달랐다. 온갖 별 이름을 줄줄 외웠고, 하늘에 손으로 그림을 그려가며 이건 카시오페아, 저건 천칭자리라며 알려주었다. 매일매일 새로운 걸 알려주었다. 그리스로마신화까지. 그래서 친구들 별명도 별자리 따라,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이름 따라 지어주곤 했다. 천문학자가 되고 싶었던 지영이는 웨딩드레스를 만든다고 했다. 30년 전 소식이다.


<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196쪽 ‘잘 알려진 천문학사’를 읽고 있을 때 지영이 생각이 더 났다.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 아리스타르코스, 코페르니쿠스, 튀코 브라헤, 갈릴레이, 모두 남자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여자는 시민이 아니었던 시대, 지식은 남성들에 의해 연구되고 기록되던 시대였다. 저자 심채경 박사도 그 시절에 살았다면 천문학자가 아니라 이름 없는 여자로 사라졌겠지.


지영이도 가난한 집 6남매의 다섯째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천문학자가 되었을까. 어쩌면 지영이는 웨딩드레스에 별을 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어떻고 그렇지 않으면 또 어떤가. 천문학자의 별만 별은 아니니까. 우리 모두 각자의 별에서 빛나니까.


심채경,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문학동네, 2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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