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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 Nov 11. 2023

4. 술라이커 저우아드 <엉망인 채 완전한 축제>

이야기에는 우리를 치유하고 계속 살게 할 힘이 있어요

J가 I에게_우리 이야기를 할까요.


인아씨, 오랜만이에요. 잘 지냈나요? 저는 잘 지내기도 하고, 조금 못 지내기도 했어요. 잘 지낸 건 글쓰기와 책 읽기 덕분이었어요. 조금 못 지낸 것은 오미크론이라는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기승해서 세상이 온통 불안하고, 밥벌이를 하느라 매일 견뎌야 하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죠. 뭐 그 정도야 견딜 수 있습니다. 별일 없이 산다고 할 수 있어요. 당신은 어떤가요? 인아씨, 여기는 입춘이 지났는데도 눈이 오고 기온은 영하예요. 저는 산수유꽃을 기다리고 있어요. 산수유가 봄꽃 중에 가장 먼저 핀다는 걸 몇 해 전에야 알게 되었어요. 그전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그해 봄에는 유독 눈에 들었어요. 저 조그만 노란 꽃은 뭘까 하고요. 이젠 입춘이 지나면 두리번거려요. 산수유가 피었나 하고요.

 

저는 그저께부터 <엉망인 채 완전한 축제>를 읽었어요. 한번 잡으면 놓을 수 없는 책이에요. 439쪽의 이야기를 쓴 술라이커는 특이한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스위스와 튀니지 출신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난 이민자 2세예요.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고 막 사회생활을 시작할 22살에 백혈병 진단을 받았어요. 그녀는 병실에서 매일 글을 쓰기 시작했지요. 4년의 투병 이후에는 낡은 자동차를 빌려서 반려견과 함께 미국을 횡단했고, 여행길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눴어요.


이야기는 어떤 힘이 있는 걸까요? 그녀는 글을 쓰는 행위는 내 개념과 언어로 상황을 통제하고 재구성하는 일”(146쪽)이라고 했어요. 골수이식과 항암치료의 고통을 저는 상상할 수 없어요. 하지만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건너는 게 인간이죠. 그렇게 고통을 견디는 것이 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면 말이죠. 술라이커는 살아내기 위해서 항암치료뿐 아니라 글쓰기를 스스로에게 처방한 것 같아요.


이야기에는 우리를 치유하고 계속 살게 하는 힘이 있어요. 용기를 내어 다른 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다 보면 우리는 혼자가 아니란 걸 거듭 깨닫게 될 거예요.


조울증으로 아들이 자살한 캐서린이 술라이커에게 해 준 말이에요. 아들은 갔지만 캐서린은 살아야 하니까요.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한 사람을 살게 하는 힘인 것 같아요. 슬픔은 잠재울 수가 있는 게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것이고, 홀로 짊어져야 한다고 캐서린은 말했어요. 나는 이 문장에 밑줄을 그었어요. 지구 저편에 영어를 사용하는 캐서린이라는 여성이 이런 말을 해줘서 기뻤어요. 술라이커가 그녀를 만나서 이 이야기를 책에 써줘서 고마웠고요. 이것이 '연대'가 아닐까요? 언어와 국가를 뛰어넘어 고통과 슬픔에 공감하는 사람들의 연대. 당신과 나처럼.


그리고 인아씨, 이 문장 좀 들어봐요.


치유란 앞으로도 항상 내 안에 살아있을 고통과 공존하는 법을 배우되, 고통의 존재를 외면하지 않고 삶을 고통에 빼앗기지 않는 일이었다.(396쪽)


어때요? 멋지지 않나요? 나는 백혈병을 앓지 않았고, 죽음을 건너오지 않았어요. 그럼에도 이 문장은 나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누구에게나 견디기 힘든 고통이 있고, 그 고통이 사라지지 않아도 살아가야 하니까요. 묵묵히 슬픔을 짊어지고 살아가게 하는 힘이 이야기에 있어요. 인아씨는 어떨 때 글을 쓰나요? 슬플 때? 기쁠 때? 혹은 화날 때? 저는 요즘 매일 글쓰기를 하고 있어요. 사실 글쓰기가 돈을 주지도 않고, 글을 매일 쓴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지 않아요. 아들은 여전히 불안하면 거실을 왔다 갔다 하고, 매달 대출금에 시달리고, 먼 거리 출퇴근은 나의 체력을 고갈시키죠. 그런데 내가 변했어요. 덜 불안하고, 덜 슬퍼요. 그리고 이번 인생을 즐겁게 살고 싶어요. 자주 행복하고 감사를 느껴요. 이게 글쓰기의 힘인 것 같아요. 

 

인아씨, 누구에겐가 편지를 써 보세요. 브룩(등장인물)처럼 모르는 사람에게 감사 편지를 보내는 것도 좋아요. 죽음 전까지는 모든 것이 삶이고, 고통은 삶의 일부이니까요. 당신은 이야기를 하면서 행복해지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 행복합시다.


산수유가 피면 또 편지할게요. 다정을 담아. J.


2022. 2.8.

술라이커 저우아드 저/신소희 역 <엉망인 채 완전한 축제>, 월북, 2022.1. 22.(예스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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