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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 Nov 10. 2023

1. 존 버거 <A가 X에게>

기대는 몸이 하는 거고 희망은 영혼이 하는 거였어요

존버거, <A가 X에게> 편지로 씌어진 소설, 김현우 옮김, 열화당, 2011.7.1.


희망과 기대 사이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어요. 처음에는 그저 지속되는 시간에서만 차이가 있는 줄 알았죠. 희망이 좀 더 멀리 있는 일을 기다리는 거라고 말이에요.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어요. 기대는 몸이 하는 거고 희망은 영혼이 하는 거였어요. 그게 차이점이랍니다. 그 둘은 서로 교류하고, 서로를 자극하고 달래주지만 각자 꾸는 꿈은 달라요. 내가 알게 된 건 그뿐이 아니에요. 몸이 하는 기대도 그 어떤 희망만큼 오래 지속될 수 있어요. 당신을 기다리는 나의 기대처럼요.(40쪽)*




 아침이 열리는 시간, 직장인의 상징 만다리나 덕 백팩에 넣을 그날의 책을 고르는 순간은 살짝 떨리는 시간이에요. 책탑에 쌓인 책 중에 손이 가는 대로 순간 포착하면서 담는답니다. 마치 타로카드 고르는 것처럼요. 이번 주는 친구가 추천한 존 버거의 <A가 X에게>가 일 순위였어요. 그 책에서 고른 문장입니다.


몇 년 전 박연준 시인이 존 버거를 소개했을 때는 마음에 와닿지 않았답니다. 그런데 이번에 만난 존 버거는 가을 한가운데 노란 은행나무 아래 서 있는 것처럼 마음을 흔들었어요. 편지글 형태로 쓴 소설이라니, 구성부터 기발하네요. 문장은 존 버거답게 묘사적이고 섬세합니다. 


주변의 소소한 일상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난민 문제와 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름답고, 사람들을 보는 시선이 참 따뜻합니다. 문학은 이런 거라고 알려주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렇게 똑똑하고 지적인 여자라니. 화학기호까지 줄줄 외우는 여자, 너무 매력적인걸요. 아이다는.


만약 이런 방식으로 글을 쓴다면 하고 상상해 봅니다. 가칭 <J가 I에게>. 20대의 그녀에게 50대의 그녀가 편지를 쓰는 거예요. 식물 가꾸기, 텃밭 이야기. 산책하며 만난 것들, 소박하지만 맛있는 음식, 소중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여자로, 여성으로 살아내기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엄마로 살기, 조현병 이야기도 빠질 수 없죠. 버지니아 울프, 마르그리트 뒤라스, 벨 훅스, 조한혜정, 김현미, 나임윤경이 우리에게 해 준 이야기들도 전하면서요.


앞이 보이지 않는 외로운 20대의 나에게 편지를 쓰는 겁니다. 다정을 듬뿍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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