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기월식이라고? 베란다 창을 열어 달을 찾는다. 지구 그림자에 가려 손톱만큼 남았다. 200년, 이번 생에서 볼 수 있는 개기월식은 다 보았구나.
아침, 마을버스 첫차를 탔다. 버스기사는 여느 날처럼 CBS 라디오 방송을 틀어두었다. 버스 창밖에는 지난밤 지구 그림자에 가렸던 달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떠있다. 달도, 지구도 자기 할 일을 하고, 버스기사도 오늘의 일을 하고, 나도 오늘 몫의 삶을 또 살 것이다. 우리에게 새날이 왔다.
출근 기차에서 읽는 신형철의 <인생의 역사>는 쉬이 넘어가지 않는 책, 일단 머리말부터 막혔다.
"인생은 불쌍한 것이지만 그래서 고귀한 것이라고."
에서 한참을 머문다. 그랬지. 그랬구나 하면서.
"그대는 그대 자신을 위해 그대를 돌보면 되고, 나도 그대를 위해 나를 돌보면 된다."
그래. 달은 달을 돌보고, 나는 나를 돌보고 그러면 되지.
"손으로 새를 쥐는 마음, 시인에게 내가 배운 것은 '나'에 대한 조심"
이 대목이 마음을 울린다.
오늘 저녁, 그에게 이 구절을 읽어주려 한다.
"나는 조심할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각오할 것이다. 빗방울조차도 두려워할 것이다. 그러므로 죽지 않을게. 죽어도 죽지 않을게."
그도, 나도, 같은 마음으로 27년을 살아왔으니. 나의 동지에게 이 문장을 천천히 읽어주겠다. 오늘의 달은 거듭 제자리를 지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