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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 Nov 13. 2023

6. 정혜윤 <삶의 발명>

책임감과 희생과 헌신의 경이로운 이야기들의 흐름 속에

아아. 여러분, 안녕하세요. 여기는 순천만 상공 10미터입니다. 저는 오늘의 날씨를 전해드릴 흑두루미, 라미예요. 오늘 날씨는 맑을 예정입니다. 미세먼지는 하루종일 좋음 상태를 유지하겠습니다.

 

오늘부터 기상 캐스터를 맡게 된 저를 잠시 소개할게요. 저는 지난해 순천만에 돌아왔어요. 2023년에는 제가 천연기념물이었다면서요. 이젠 옛날이야기가 되었어요. 요즘엔 친구들이 많아져서 우리가 내는 소리를 자주 들을 수 있을걸요.

 

순천에 사는 연두에게 들었는데요. 2025년 1월 1일부터 한국에서는 기후위기대책법이 생겨서 더 이상 플라스틱을 쓰지 않기로 했다면서요. 국제협약도 맺어서 아마존의 나무 벌목도 덜 하고, 석유 연료도 덜 쓰기로 했다고요. 무엇보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것이 세련된 사람의 트렌드가 되었다면서요. 그래서 너나 할 것 없이 따라 했다고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새로운 직업도 생겼다고 들었어요. 그때부터 조금씩 날씨가 좋아졌다면서요. 연두가 알려주었어요. 더 늦기 전에 그렇게 해서 참 다행이라면서요.

 

그 덕분인가 봐요. 엄마가 그러는데요. 예전에는 순천만에서 살기 힘들었대요. 점점 갯벌이 없어지고, 마실 깨끗한 물이 없고, 우리가 쉴 곳이 없었대요. 이제 우리는 순천만에서 1년에 일곱 번 색이 변하는 칠성초 위를 날아요. 빨간색으로 물든 들판 위를 날 때는 황홀한 기분이 든답니다. 아, 흑두루미로 태어나길 잘했다 싶어요. 이 소식을 제주 대정 앞바다에 사는 춘삼이에게도 전해줬어요. 춘삼이도 제주 바닷속에 칠성초 같은 게 있다고 자랑하더라고요. 문어 친구도 자랑하고.

 

여하튼, 오늘은 흑두루미가 날기 좋은 날씨고, 돌고래 춘삼이는 헤엄치기 좋은 날씨입니다. 여기까지 2055년 5월 10일, 기상소식이었습니다.




정혜윤 작가의 <삶의 발명>을 읽다가 기분 좋은 상상을 해 보았습니다. 세상살이가 이렇게 동화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어른을 위한 동화가 필요합니다.


이 책의 여러 문장에 밑줄을 그었습니다. 특히 이 문장을 다시, 천천히 읽어봅니다.


사랑 안에서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이 없다면 시간과 우연 너머 살아남는 것은 없다. 사실 그것을 빼면 우리 인생에 무슨 좋은 이야기가 남아 있겠는가. 우리는 우연의 산물이지만, 책임감과 희생과 헌신의 경이로운 이야기들의 연속된 흐름 속에 있을 수 있다.(1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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