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비속어가 난무하는 글은 처음이었다.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외설적이지 않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에리카 종을 생각했다. 그녀는 그녀의 몸으로 글을 쓰고 있었다. 어떤 남성 작가도 자신의 몸으로 글을 쓰지는 않는다. 남성 작가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타자의 위치에서 글을 쓴다. 이야기와 서사적 거리를 두고. 남성 작가들이 자신의 성 경험을 쓴다 하더라고 이렇게 '자기'를 쓰진 않는다. 왜 여성은, 여성 작가는 독자 앞에서 벗고 서야 하는가? 몸으로 글을 써야 하는가? 이것이 이 책을 읽는 내내 떠나지 않는 질문이었다.
“역사를 통틀어 모든 책들은 정액으로 쓰여졌다. 생리혈이 아니고"(54쪽)라고 이사도라 윙은 말한다. 그러면서도 이사도라는 “페미니즘의 구호들과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남자의 몸에 대한 갈망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173쪽)가 항상 문제였다고 한다. 이 남자에서 달아나 저 남자에게로 가는 식이 아니라 한 번이라도 혼자 힘으로 살아 보기 위해(242쪽), 윙은 자아를 찾아 나선다. 성적 탐닉, 결별, 또 결별, 또 결별 끝에, 글을 쓰는 작가가 되기 위해, 자신으로 살기 위해 혼자 떠난다.
그녀는 아버지로부터, 어머니로부터, 남자로부터 모든 것으로부터 자신을 잘라냈다. 가족, 친구, 남편을 떠났다.(548쪽) 그래서 남자에게서 배운 여자를 버린다. 지금까지 그녀는 남성 작가의 눈으로 여성을 보았다. 그들을 작가로, 권위자로, 신처럼 모든 걸 알고 있는 자,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긴(293쪽) 나를 버린다. 그리고 글을 쓴다.
그녀의 글쓰기는 미지의 세계로 그녀를 데려다 줄 잠수함이고 우주선이다. 그 모험은 끝이 없고 무궁무진하다(395쪽). 글을 쓰고, 사람들이 자신의 글을 읽고, 강의를 하고,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그녀의 정체성을 찾아간다. 그녀는 비로소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완전히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515쪽), 혼자 있는 법을 배우고(518쪽), 모든 것이 지나간 뒤 결국 내게 남아 있는 건 오직 나의 영혼은 나의 것(533쪽)이라는 것, 그것을 알게 된다.
이제 그녀는 자신으로 살고, 타자 치는 여자가 아니라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 것이다. 그리고 커피의 훌륭한 맛에 행복하고, 스며드는 햇살에 행복해 하는(551쪽) 사람으로 살 것이다. 점점 더 자신을 마음에 들어하면서 말이다(56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