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엉뚱하고 무심하게_파열에서 나를 구한건 일상, 루틴, 형식이었다
엉뚱하고 무심하게
신형철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읽고 있다. 내지 첫 표지에 '2023.5.19. 리스본 서점'이라고 적혀있다. 그날 서점에서 가져온 책이구나. 하지만 제대로 읽지 못했다. 지난봄에는 4부 '시는 없으면 안되는가'만 읽었다. 이 책이 다시 손에 들어왔다.
나는 오늘 2부 '삶이 진실에 베일 때'를 읽었다. 진실에 베인다는 것이 무엇인가 들여다보았다. “삶이 어딘가에 금이 가고 있는데 인물들은 그것을 모른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고 나서야 그들은 파열을 깨닫는다.”(117쪽) 그렇다. 인생에서 그럴 때가 있다. 삶에 금이 가고 있는데 모를 때가. 나는 아이가 아프기 전 전조증상을 몰랐다. 금이 가고 있었는데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발병하고 나서는 돌이킬 수 없었다. 우리는 파열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진실에 베이고 나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파열을 깨닫고 난 뒤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모든 걸 잃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말이야. 가만히 주위를 돌아보면 뭔가 남아 있다는 걸 깨닫게 될 거야. 이를테면 친척집에 심부름을 간다거나, 업무 파트너의 경조사를 챙긴다든가 하는 것들(120쪽)” 나는 알고 있다. 이런 일들이 파열을 극복하게 한다는 것을. 이 책에서 소개하는 권여선의 단편소설 <사랑을 믿다>의 주인공도 그렇다. 큰 고모님 댁에 심부름을 갔다가 엉뚱한 할머니들만 잔뜩 만나고 돌아오는데 그때 “계단을 다 내려왔을 때 그녀는 스스로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라고.
신형철은 내용이 아니라 형식이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내가 타인을 보는 것 말고 타인이 나를 보는 것으로 가기, 거기서 내 눈을 버리고 타인의 눈을 얻기, 그리고 마침내 그 타인의 눈으로 나를 보게 되기. 이러한 '관점의 이동'을 통해 실연의 상태를 극복한 이 소설을 소개한다(120쪽). 소설은 이런 방식으로 단절선을 긋는다고, 그것이 단편 소설이라고 말한다. 그 선이 의식적이고 능동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편견이고, 삶을 깊이 들여다볼수록 엉뚱하고 무심하게 단절선을 그린다고 했다.
나는 파열과 단절선을 어떻게 그었나? 장을 보고, 하루 세끼 밥을 하고, 아이를 씻기고, 옷을 챙기고, 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공과금을 내고, 그러면서 단절선을 그었다. 파열에서 나를 구한 것은 이런 일상이었고, 루틴이었고, 형식이었다. 그렇다면 계속 엉뚱하고 무심하게 단절선을 그어보자. 영자 씨와 수다를 떨고, 친구들과 다정을 나누고, 아름다운 문장을 읽으면서. 그러면 어느 순간 관점이 이동하고, 타인의 눈으로 나를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나를, 나의 문제를 거리두기 하면서 보는 것 말이다.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한겨레출판, 2022년 12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