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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 Nov 21. 2023

13. 마르그리트 뒤라스 <이게 다예요>

사랑과 죽음에 대한 글, 작가의 마지막 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이게 다예요> 중에서 옮겨 봅니다. 




이따금 나는 아주 오래도록 텅 비어버린 느낌이다.

내겐 신원이 없다.

그게 날 두렵게 한다 우선은. 그러고 나서 그것은 행복의 움직임으로 스쳐 지난다. 그러고 나서 그것은 멎는다.

행복하다는 감정, 말하자면 얼마쯤 죽어있는 느낌.

내가 말하고 있는 곳에 얼마쯤 내가 없는 듯한 느낌. (7쪽)


함께 있다는 것, 그것은 사랑이고, 죽음이고,  말이고,  잠자는 것이다.(14쪽)


아주 빨리 그는 내가 예전에 들판에서 알았던 새(鳥)로 되돌아갔다.(19쪽)


내가 안다고 믿었던 것 또는 다시 보기를 기다린다고 믿었던 것에 대해 이젠 아무런 생각이 없다. 

그래, 이게 전부다.(23쪽)


나는 마침내 자살하지 않게끔 되었다. 단지 그의 죽음에 대한 생각만으로는.

그의 죽음과 그의 삶에 대한 생각만으로는.(24쪽)


나는 숙명의 날짜에 바짝 다가서 있다.

그 날짜는 아무것도 아니다.

....

그것은 기록의 잉여다. 그것이 기록의 한 의미다.

그것은 또한 거길 스쳐 지나간, 그 어린아이를 스쳐 지나간 사랑의 향기다.(26쪽)


당신은 고독을 향해 직진하지.

난 아니야. 내겐 책들이 있어. (30쪽)


길 잃은 것 같다.

죽음이 이와 대등하다.

무시무시하다.

더는 뭔가에 힘 쏟고 싶지 않다.

나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나머지도 끝났다.

당신도 역시.

나는 혼자다.(31쪽)


나는 원시적인 그리고 예상 밖의 작가다.(38쪽)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됨이요 바람을 뒤쫓음이라. 

이 두 문장이 지상의 모든 문학을 낳는다.

헛되고 헛되도다. 그래.

이 두 문장만이 세계를 연다. 사물들, 바람들, 어린아이의 외침들, 이 외침 동안에 죽는 태양.

세계가 멸망을 향해 가기를.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됨이요 바람을 뒤쫓음이라. (39쪽)


바람을 뒤쫓음, 그게 바로 나다.(40쪽)


죽는다는 것은 정말 끔찍하다.

삶의 어느 순간에, 사물들은 끝난다.

나는 이렇게 느낀다. 사물들이 끝난다고.

바로 그렇다.(41쪽)


나는 새 텍스트를 하나 쓰려고 해.

남자 없이. 이젠 더 아무것도 없을 거야.

나는 이제 거의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이제 아무것도 보지 않아.

다시 말하지만 이게 다야, 오래도록, 죽기 전에.(48쪽)


백 미터만 앞으로 더 나아갑시다.(49쪽)


일생 동안 나는 썼지.

얼간이처럼, 나는 그 짓을 했어.

그렇게 되는 것도 또한 나쁘지 않아.

나는 결코 거드름 부리지 않았지.

일생 동안 쓰는 것, 그게 쓰는 것을 가르치지. 그렇다고 아무것도 면해지지는 않아.(53쪽)


사랑이라는 말은 존재해.(57쪽)


너는 모든 것의 저자야.

내가 한 모든 걸 넌 할 수 있었을 거야.(59쪽)


너는 이 침묵을 듣니.

나, 나는, 쓰고 있는 여자를 대신해서 네가 말한 문장들을 듣지.(60쪽)


난 삶을 사랑해, 비록 여기 이런 식의 삶일지라도.

좋아. 난 말들을 찾아냈어.(63쪽)


다시 볼 때까지 안녕.

그러나 아무도 다시 보게 되진 않겠지요. 당신마저도.

끝났어요.

아무것도 없어요.

페이지를 닫아야 해요.

지금 오렴. 거길 가야 해.(68쪽)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것도.

이중의 제로.(75쪽)


너처럼 될 수 없다는 것. 그게 내가 아쉬워하는 그 무엇이지.(77쪽)




사랑과 죽음에 대한 글, 죽음 앞에 있던 뒤라스가 쓴 마지막 글이다. 죽기 전에 자신을 글 쓰는 사람, 작가라고 정체화하는 것은 무엇일까?


다가오는 죽음에 대해, 끝까지 사랑을 놓지 않는 뒤라스의 글을 읽으며 잘 사랑하고, 잘 살고, 잘 죽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아버지와 생전에 이런 이야기들을 나눴으면 좋았을 텐데 하면서. 빨간색 장지갑에서 아버지의 마지막 쪽지를 꺼내어 본다. 아버지는 죽음 직전에 무엇을 쓰고 싶었을까? 아버지 이름 석자가 삐뚤빼뚤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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