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젠베르크는 베를린 우라늄 클럽에서 핵무기 개발에 참여했다. 아니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이민을 가지 않기로 결정했을 때 이런 사태는 예견되어 있었다. 1,2차 세계대전을 겪은 시대의 과학자, 특히 양자역학의 개념을 정립한 과학자로 그의 고뇌는 깊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이젠베르크가 왜 이 자서전을 집필했을까? 여러 가지 목적이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미국의 원자핵 실험 성공과 원자폭탄 투여 이후, 과학자로서 본인의 입장을 밝히기 위해서가 아닐까?
이 책에서 하이젠베르크는 “나는 조국(독일)을 위해 핵무기 개발에 참여했지만 나치가 핵무기를 개발하지 못하도록 교묘하게 방해했다.”라고 거듭 말한다. 그는 베를린 우라늄 클럽에 들어가서 비용이 많이 들어서 못 만든다, 많은 우라늄을 구할 수 없어서 개발에 성공하는 것은 어렵다고 주장했다.
하이젠베르크는 ‘선악을 결정하는 것은 목적인가 수단인가? 수단이 선악을 결정짓는 것이 아닌가?’라고 질문한다. 하이젠베르크는 수단이 선악을 결정한다고 강조한다. 유한한 인간은 최종적 진리를 추구할 수 있을 뿐 완전히 도달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가 전부를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되고, 동시에 위대한 중심질서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사회에서 개인이 어떤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전체 사회를 관통하는 질서를 고민하고 추구하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말이다.
미국이 핵무기 개발에 성공한 것을 보고 하이젠베르크는 도덕적 딜레마에 빠졌다. 좋은 목적이면 원자폭탄을 만들어서 사용해도 되는가? 좋은 목적이라면 폭력이 정당화되는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시키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나쁜 편을 위해서는 절대로 만들면 안 되는 원자폭탄을 좋은 편을 위해서는 만들어도 되는 걸까? 유감스럽게도 세계사에서 되풀이하여 관철되어 온 이런 견해가 옳다면, 어떤 일이 선한 것인지, 악한 것인지는 누가 결정하는 것일까? 여기서 히틀러와 나치가 악하다는 것은 쉽게 판단할 수 있어. 그러나 미국 측도 모든 맥락에서 볼 때 선할까? 여기서도 마찬가지 어떤 일이 선인지 악인 지는 그들이 사용하는 수단으로 미루어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거의 모든 싸움은 나쁜 수단으로 행해지지. 그러나 나쁜 수단이라도 어떤 것은 정당화되고, 어떤 것은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일까?(334쪽)”라고 하이젠베르크는 말했다.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과학자들은 하이젠베르크의 우라늄 클럽에 대해 비판했다. 아인슈타인은 우라늄 클럽에서 핵무기 개발에 참여한 것 자체가 용납해선 안 되는 것을 하이젠베르크가 했다고 비판했다. 우라늄 클럽의 과학자들은 최선을 다해 핵폭탄을 만들려고 했지만 실패했을 뿐이라고는 비판도 있다. 이 책이 자기 변명이라는 견해까지. 독자들은 이 책이 하이젠베르크의 입장에서, 하이젠베르크에 의해 기술된 책이라는 점도 기억하면서 읽어야 할 것이다.
<부분과 전체> 서문의 첫 문장을 기억하자. “과학은 결국 사람이 만든다.” 이 책은 과학-철학-정치를 통합한 위대한 저서이며, 과학자의 책임에 대한묵직한 질문을 남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