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 띠리릭. 폐쇄병동의 문이 닫혔다. 아이는 문 안으로, 나는 문 밖에 있다. 여기는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 소아정신과 병동이다.
이날, 성탄절을 앞둔 겨울날 3.47kg으로 건강하게 태어났고, 감기 말고는 아픈 적이 없었으며, 속눈썹이 길고, 가무잡잡한 피부에, 보통 키에, 보통 체격에, 웃음이 이쁘고, 책 읽기를 좋아하고, 일기를 멋지게 쓰고, 조잘조잘 말을 잘하고, 친구들과 축구하는 걸 좋아하는 아이가 소아정신과 병동에 입원했다.
소아정신과라니, 그것도 폐쇄병동이라니. 이게 무슨 일인가? 왜 이 사랑스러운 아이가 아픈 것일까? 그것도 정신질환이라니.
다 내 잘못이다. 내가 아이를 더 사랑해 주지 않아서. 내가 일한다고 바쁘게 살아서, 내가 까칠한 엄마라서. 다, 모두 다 내 탓이다. 그런데 도대체 왜? 우리는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나쁜 짓 안 했는데, 잘못한 거 없는데, 신은 왜 이렇게 가혹한 형벌을 우리에게 내리는 것일까? 왜? 도대체 왜?
“어머니 잘못이 아니에요. 자책하지 마세요. 백혈병의 원인을 알 수 없는 것처럼. 그냥, 그냥 병에 걸린 거예요.”
주치의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그냥 병에 걸린 거라고 말했다. 위안이 되었다. 위로가 되었다. 자책이 가장 나쁜 거라고 하니까 그만하기로 했다.
2009년 봄날, 어린이날이라 병동에서 작은 행사를 했다. 나는 보호자 대표로 편지를 읽었다.
눈웃음이 멋진 우리의 첫아이 나무야,
너는 지금까지 엄마 아빠에게 준 것이 너무 많단다.
돌 지나면서 아장아장 걸어서 기쁨을 주었고,
항상 웃으며 잘 놀아서 행복을 주었고,
학교 다녀오면 엄마를 껴안으며 사랑한다고 말해서 사랑을 주었지.
너는 언제나 엄마 아빠의 사랑이고 행복이었어.
네가 지난 13년 동안 엄마 아빠에게 준 것만으로도
가슴 벅차게 감사하단다.
앞으로는 네가 건강하고 더 행복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엄마 아빠가 네게 받은 것을 돌려주는 것이겠구나
-중략-
이 시간을 거치면
너는 크고 울창한 마음 나무를 가진 사람으로 성장하고,
우리 가족은 큰 사랑을 배우게 되겠지?
지금은 힘들지만 먼 훗날,
‘그때 그런 일이 있었지’하면서 지금의 시간을 추억하는 것을 상상하자.
그날에는 하하 호호 크게 웃자꾸나.
너의 모든 모습을 사랑하고,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한다.
네가 엄마 아빠의 아이로 태어나줘서 고맙고,
너를 통해 엄마 아빠가 있게 해 줘서 고마워.
사랑한다.
2009년 4월 28일
언제나 너를 응원하는 엄마 아빠가
눈물이 흘러 중간중간에 쉬었다. 그래도 끝까지 읽었다. 아이가 보고 있으니까.
아이는 춤을 추었다. 슈퍼주니어의 ‘쏘리 쏘리’에 맞춰 앞줄 왼쪽 세 번째에서 춤을 추었다. 나는, 우리는 손이 아프게 박수를 쳤다. 이 춤은 간호사 선생님들이 지도한 것이다. 아픈 아이들과 얼마나 씨름하면서 이 행사를 준비했을까? 내가 읽은 편지도 분홍색 케이스에 담아 읽기 좋게 주었다.
그때 병동 간호사 선생님의 이름을 기억한다. 아이를 진심으로 대해 주었다. 학교 다니는 아이를 위해 공부를 봐주고, 책을 읽어 주곤 했다. 외출 허락을 받아 대학로에 나가 피자를 사주고 산책을 했다. 아이는 지금도 그날을 이야기한다. 햇살이 좋았던 그날을.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보기 시작했다. 우선 2편을 봤다. 1화는 조울증 환자 이야기, 2편은 사회불안장애 환자의 이야기였다. 이렇게 질병 유형별로 한편씩 구성될 모양이다. 작가가 정신병동에서 6년 동안 간호사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웹툰이 원작이라고.
이 드라마를 보면서 아이의 병동 생활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6학년 올라가던 겨울방학에 급성발병한 아이를 데리고 이 병원 저 병원으로 뛰어다녔다. 동네 정신의학과, 소아정신과 전문병원을 거쳐 분당 서울대병원에 입원한 뒤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으로 전원 했다. 그게 2008년 4월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아이의 병동생활은 중학교 3학년까지, 입퇴원을 12번 반복하면서 계속되었다. 3년 6개월이 걸렸다. 중학교 3학년 때는 파주에서 대학로까지 통학을 했다. 아이가 그렇게라도 졸업을 하고 싶다고 했다. 아침이 되면 병실에서 교복을 갈아입고 1시간 30분을 달려 학교에 가서, 한 시간 수업을 하고, 다시 병원에 돌아오는 식으로. 그렇게 중학교를 졸업했다.
3년 6개월, 소아정신과 병동에 입퇴원을 반복한 그 시간 동안 아이에게 병원은 학교이자 사회였다.정신병동에서도 아이는 자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