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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정숙 Jun 13. 2020

호기심에 쓴 한 장의 유서가 내게 가져다준 변화

그것은 내 집 마련으로 귀결되었다


주말을 맞아 밀린 집 청소를 했다. 설거지, 빨래, 청소기를 돌리는 일까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집을 쓸고 닦는 일은 그 집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애착이 있어서 그런 거라고. 부모님 댁에 가면 어머니는 식사가 끝난 후 내가 설거지를 하려고 할 때마다 '아이 놔둬. 내가 할게.'라고 말하시며 직접 정리를 시작하신다. 또는 언니의 집에 가서도조차 나에게 쉬라고 얘기하고 미세먼지 농도를 늘 확인한 후 문을 열어 청소를 하기에 바쁘다.

집주인만이 가지고 있는 청소에 대한 책임감이라는 게 있는 것일까. 항상 직접 하려고 한다.


나도 내가 사는 집에만 오면 이상하게 할 게 많아진다.








삶의 질을 높이는 데에는 집이라는 공간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때는 까마득하게 어린 시절, 언니랑 한 방에 같이 생활하면서 많이도 다퉜던 기억이 있다. 



엄마!
얘 유서 썼어!




초등학생 때였다. 호기심에 썼던 유서를 어딘가에 꽂아뒀는데 그걸 언니가 발견하고는 엄마한테 발각? 되었을 때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었다. 어린 나는 '죽으면 어떻게 될까?'를 고민한 적이 있다.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해 본 적도 없는 꼬마 아이가 뭘 알겠냐만은 진지하게 고민을 했던 이유가 따로 있었다.


그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오빠의 첫 독립영화였나. 단막극 같은 걸 찍은 비디오테이프가 집에 있었다. 오빠는 몸이 조금 불편한, 장애가 있는 역을 맡았고 항상 인형을 품에 안고 있었다. 하루는 우연히 오빠의 극 중 동생이 늦게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아 길을 나섰다가 우연히 교통사고를 당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 장면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차가 오빠를 향해 돌진하면서 클락션을 울리는 장면, 오빠가 차에서 나오는 불빛을 보고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장면, 이내 품에 안고 있던 곰인형이 하늘로 포물선을 그리듯 날아가는 장면.


어린 나는 실제로 오빠가 인형과 함께 하늘나라로 가버린 줄 알고 한참을 울었던 적이 있다. 그때는 단순한 연기에 지나지 않은 장면을 실제와 거의 구분하지 못했다. 심한 충격을 받았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죽음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해 본 게.


유서도 그 생각의 연장선이었다.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죽게 된다면, 마지막으로 무슨 말을 남겨야 할까.


한 방에서 같이 살고 있었던 언니의 고발? 덕분에 나름 진지했던 어린 여자아이의 생각은 창피한 해프닝으로 끝이 났다. 지금은 뭐라고 유서를 적었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꽤나 진지하게 그리고 길게 적은 걸로 기억하는데.








그때부터인지도 모르겠다. 언제부터인가 누군가와 한 공간에 같이 있으면 내 일에 오롯이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선천적으로 그런 내향적인 성격이 타고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집중을 해야 하는 상황이 있다가도 누군가가 옆에서 작은 소리만 들려도 맥이 끊기는 바람에 다시 집중하는 데 시간을 많이 써야 했던 적도 많았다. 차라리 여러 사람이 웅성대는 카페가 더 낫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항상 나만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스무 살이 되면서 대학을 타지로 가게 되었고, 그때 처음으로 부모님의 곁을 벗어나 기숙사를 들어가게 된 것도 사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은 이유가 컸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타지로 직장을 잡고 사택에서 지내게 되고 또 다른 회사로 이직을 반복하면서 집에 대한 애착이 점점 더 강해졌다.


이왕 나만의 집을 가질 거라면 조금 더 넓고 쾌적한 공간에서 살고 싶다는 열망이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그때 내 집 마련을 하기 위해 대학생 때부터 청약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곧바로 청약통장을 만들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십 대 초반의 나는 좋은 집을 장만하려면 청약통장을 만드는 것 말고는 더 나은 방법이 없는 줄 알았다. 







나에겐 집이 거주공간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솟게 하는 곳, 오롯이 내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곳, 누군가에게 의지하려는 내 마음을 스스로 단속시킬 수 있는 곳, 감정에 솔직할 수 있는 곳 등등 여러 가지를 담고 있다.


감정에 솔직해지는 것에 서툴러서 성인이 된 이후에도 대부분의 부정적인 감정들 미움, 분노, 짜증, 화 등에 제대로 의사 표현을 하지 못했다. 그저 주눅 들고 소심했던 어린아이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마음을 다잡게 해 준 것은 예상외로 '내 집 마련에 대한 간절한 바람'이었다.


혼자만의 공간이 있을 때 비로소 에너지를 충전시키고, 마음을 추스를 수 있음을 너무 일찍 깨달아버린 탓에 조금이나마 내 집 마련에 필요한 돈 공부를 일찍부터 시작하게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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