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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정숙 Jun 14. 2020

그림전시회에서 만난 '꽃게랑'의 진실

생각의 빈곤함을 채워주는 '그림의 세계'




현대적인 고층 건물이 빽빽하게 둘러싸인 모습만 보다가, 이렇게 처마가 있는 고풍의 옛 전시관에 오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은 볼거리, 즐길 거리가 별로 없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관심을 갖고 찾아보면 의외로 숨은 '나만 알고 싶은 핫플'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장소이지만, 유난히 나의 발걸음만큼은 멈추게 되는 그런 장소. 그곳에서 영감과 깨달음을, 또 힐링을 갖게 되는 그런 장소.


광주 양림동엔 미술관 하나가 있다. 에어컨 바람이 전혀 불지 않는다는 것은 각오해야 하지만 그 이상으로 내면을 꽉 채우게 만들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누구든지 무료로 입장 가능한 곳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관리자 한 분이 열감지기로 체온을 체크하고나면 방명록에 이름과 핸드폰 번호, 그리고 체크한 온도를 직접 적어야 한다. 나는 36.8도. 내가 제일 열이 많은 걸로 판정이 났다.


입구가 있는 1층에도, 지하에도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6월 21일까지 한다는 그림 전시회는 ‘장복수 기획초대전’이다.


코로나로 인해 모든 전시회가 일시 중단되고, 거의 모든 문화생활이 '방구석화' 되어가고 있는 시기에 소소하게나마 작은 전시관에서 그림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또 하나의 행복으로 다가왔다. 새삼 감사함을 느낀다.


무심코 지나쳐온,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사실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습관처럼 누리고 있는 것들은 사실 다음 세대들이 쓸 것들을 미리 끌어다 쓰는 것 아닐까.


그걸 알기에 자연의 소중함을 알고, 인위적인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을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한 여름날 가게에 들어가면 에어컨이 너무 세게 틀어져있어 이내 추워져버리는 것보다, 이렇게 작은 팸플릿을 부채 삼아 휘휘 흔들어가며 그림을 구경하는 것도 그런대로 선선하니 괜찮은 것 같다.





지하로 내려오는 계단에서 찍은 실내. 대충 찍은 게 티가 난다. 아이폰의 격자무늬에 맞춰서 찍어야 하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중이다. 이렇게나 저렇게나 아무렴 어떤가. 의미만 전달했으면 됐지. 나는 의미를 지향한다.


미술관에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무척이나 조용하고 아늑하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그림 하나하나에 더 집중하기 좋았다.

우리가 그림을 구경하고 있는데, 관리자 한 분이 오셔서는 구경하고 있는 모습을 한번 사진으로 찍어봐도 되느냐고 여쭤보셨다. 그래서 뒷모습을 그림과 함께 멀리서 핸드폰으로 찍으셨는데, 그 사진을 어떤 용도로 쓰실지는 모르겠다.


이것 또한 추억이다.





전체적으로 색감이 따뜻하고 밝다. 동심의 세계를 보는 것 같다. 희망의 메시지를 불어넣어 주는 듯한 느낌이 지배적이다.


혼자 보러 갔을 때보다 여럿이 보러 갔을 때, 그림에 담긴 뜻을 각자 해석해보는 시간도 가져보았다. 하나의 그림을 가지고도 느끼는 각자의 생각들이 모두 다 달랐다. 그래서 더 놀라기도 했고, '아, 그렇게 생각해볼 수 있겠다.'거나, '오 좋다. 어떻게 그렇게 해석이 되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고가 확장되는 시간.

다소 엉뚱하면서도 영감을 얻었던 우리들의 대화. 키득키득


그림 하나에 오랫동안 집중할 수 있었던 이런 시간들을 그동안 얼마나 가졌었나를 반문하게 됐다. 보통 우리의 시선을 주로 사로잡던 것은 새로운 것, 자극적인 것들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시시한 것, 재미없는 것으로 치부해버리고 만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우리가 초등 교과과정에서 글로 교과목을 공부하는 것이 아닌, 그림을 보며 공부하고 그림을 직접 그리기도 하면서 토론하는 교육을 좀 더 심도 있게 받았더라면 어땠을까.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좀 더 자유롭게 얻을 수 있고, 사고가 더 확장되는 경험을 일찍 하게 되지 않았을까.


최소한 개성이 있는 삶을 존중받게 되는 사회가 만들어지진 않았을까.


그림은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그림에 대해서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만 알아주는 그림이 아닌, 그림을 전혀 모르는 '그알못'인 나같은 사람에게조차 영감을 떠오르게 만들어주는 그림이 좋은 것 같다.

마치 그림을 보면서 ‘이 그림은 뭔가 다르다. 궁금해서 조금 더 가까이 보게 된다’라며  그림의 단편적인 부분들까지 꼼꼼하게 보게 되는, 즉 ‘관찰’하게 되는 그런 그림 말이다.


그림의 제목을 먼저 보지 않고, 일단 그림만 보고 감상을 스스로 해 본 후에 제목을 보는 것도 그림을 천천히 보는 묘미라고 생각한다.





이 그림, 꽃게랑 같지 않아?



풉, 참으로 단순하다.

이 그림을 보면서는 게 모양의 과자 이름이 생각났다. 얼기설기 그려져 있는 그림의 제목은 나의 다소 엉뚱한 생각을 순식간에 잠재워버린 일명 '봄나들이'였다.


그래, 봄나들이 갈 때는 꽃게랑을 들고 가야지.





그림 하나를 두고 내 멋대로 상상해버리는 재미는 쏠쏠하다.

묵으로 그린 것 같은 이 작은 엽서 크기만 한 크기에 그려진 이 그림은 나의 발걸음을 멈췄다. 초록초록한 나무, 자연 속에서 하나하나 꽃과 나무들을 살펴보면서 발걸음을 옮기는 그림 속 인물이 평소 내가 원하는 모습을 닮았다.


쓸쓸해 보이기보다 여유가 넘쳐 보인다. 높은 건물들, 인위적인 조형물 모든 것들에서 벗어나 그저 자연과 함께하는 모습에서 어머니와 같은 포근함을 느꼈다.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도 좋지만, 그렇다고 혼자 있다고 하여 외로운 것이 아니다.


가끔은 외부로 향하는 신경들을, 그리고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일들을 전원 OFF 모드 시켜버리고,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더 멋져 보인다.


제목은 모르겠지만, 이 그림은 내 마음의 울림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 그림은 한 인간의 강한 의지가 느껴져서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자세히 보면 그림 속 누군가 가녀린 우산 하나로 거센 바람을 겨우 막고 있다. 간신히 잡고 있는 우산은 곧 부러질 듯 위태하다. 심지어 나무뿌리도 금방 뽑힐 것 같은 모양새다. 그럼에도 인간은 세찬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다. 몸을 최대한 낮춰서.


인간은 자연 앞에서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

그럼에도 조금씩 앞으로 전진하려는 인간의 모습을 담아내는 모습이 다시 내 안에 있던 열정을 끄집어내기 충분했다. 마치 그런 모습이 빙산의 일각이라도 한다듯이, 그 밑면에는 인간의 다양한 모습이 숨겨져 있다는뜻을 내포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상상력을 총동원해 본다.


사진 촬영을 허락해 주신 관리자님께 또 한 번의 감사함을 느낀다.






와 보랏빛 소다!



세스 고딘의 책이 생각나는 그림이었다. 보랏빛 소가 알록달록한 논두렁에서 잠을 자고 있다. 형형색색의 논두렁에서도 존재감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 그림전시회에서는 '소'가 자주 출연하는데, 다양한 색감으로 표현되어있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진갈색의 일반적인 소를 표현하진 않은 것 같다. 보라색, 분홍색, 심지어 매력적인 형광색 소도 발견했다.


그림에 대해서 서로가 느낀 생각이나 표현을 전달하는 데, 내가 생각지 못했던 아이디어들이 왕왕 쏟아져서 깜짝 놀랐다. '나는 그냥 보기만 할게.'라며 시종일관 팔짱 끼며 조용히 돌아다니기만 하던, 뚝배기 큰 친구도 다 둘러볼 때쯤 되자 이야기를 봇물처럼 터뜨렸다.


집중력 갑은 너로구나.


우리는 그림에 놀라고 각자가 관찰하고 감상한 표현방식에 또 한 번 놀랐다.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의미 있는 시간들. 색감 넘치는 이 곳에서 색다른 기분을 느꼈다.


마치 알쓸신잡의 유희열이 된 듯한 느낌이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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