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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정숙 Jun 25. 2020

공포영화보다 더 무서운 일을 겪게 되면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게 되긴 되더라



학생, 그러니까 일찍 좀 다녀요.




그 경찰은 괜찮냐는 한마디도 없이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밤늦게 다니는 여자에게는 그런 일이 생길 수 있음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 같은 태도에 화가 났다. 마치 그런 사람을 만난 게 내 잘못도 어느 정도는 있다는 것처럼.


세상엔 선한 사람이 많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존재한다. 살면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 중에 그렇지 않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아직도 두려운 일들 중 하나다. 그중에서 특히나 충격적이고도 공포스러웠던 경험을 이야기해볼까 한다. 더 정확히는 변태적 성향을 지녔거나, 소수의 사이코패스와 맞닥뜨렸던 잊지 못할 사건을.








예상치 못했던 첫 만남은 고등학교를 졸업 후, 이제 막 대학에 들어간 스무 살 때였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유난히도 그런 일이 자주 생겼었다. 


붉은 가로등 아래 골목길, 텅 빈 터미널 대합실 안, 대학가 공공화장실, 집 앞 엘리베이터.. 등등


위험천만한 공포영화와도 같은 일들이기에 더욱이 현실에선 결코 일어나지 않았어야 하는 일들이었다. 그런데 그 끔찍한 일들을 자주 목격했고, 자주 위험에 빠질 뻔했다. '다른 사람들에겐 한두 번 겪을까 말까 하는 일들이 나에겐 왜 이렇게 연달아 일어날까.'라는 의문이 생길 정도였다. 그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매번 전속력을 다해 소리 지르며 도망을 갔거나, 경찰에 신고하거나 해서 위기를 잠시 모면하는 것뿐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모임을 갖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들른 대학가의 여자화장실 안으로 정체 모를 거대한 체구의 남자가 들어왔다. 검은 모자를 뒤집어쓰고 있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무릎까지 내려간 바지춤을 손에 단단히 쥐어 잡고 성큼성큼 친구들과 내쪽으로 걸어왔다. 공포영화를 보는 그 이상으로 소름이 전율했다. 그 자리에서 두 발 모두 얼어붙을 뻔했다. 그가 화장실 입구를 가로막고 있는 바람에 도망도 못 가고, 화장실 안쪽까지 쫓기듯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곧바로 꺼내 든 핸드폰으로 112에 전화한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 제발 좀 빨리 와주세요..


이름도 모르는 경찰에게 애원하듯 말했다. 전화를 끊고도 그는 가지 않았고, 문을 손으로 계속 흔들어대고, 심지어 긁어대기도 했다. 전혀 튼튼해 보이지 않는 문짝 하나를 사이에 두고 생판 모르는 덩치 큰 남자와 여자화장실에서 대치를 하고 있는 이 상황이 너무 끔찍하기만 했다. 


몇 분이 흘렀을까. '아무도 없으니 이제 나와도 좋다'는 경찰의 말에 안심되어 문을 조심스레 열고 나가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그 공공화장실은 밤늦게까지 거리에 불이 켜져 있던 대학로 한복판이었다. 이런 곳에서 악몽 같은 일을 겪는다는 게 가능하리라고는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악몽보다 더 무서웠던 그 믿을 수 없는 현실은 트라우마로 남게 되었다. 아직 아물지 않은 채로 지내던 어느 날, 난데없이 영화 속 '추격자'처럼 어두운 트레이닝복 차림의 남자에게 집 앞 엘리베이터 1층까지 미친 듯이 쫓기기도 했다. 거의 잡히기 직전인 긴박한 상황에까지 이어졌다. 본능적으로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고, 혼신의 힘을 다해 아파트 계단으로 뛰어올라갔다. 그때 내려다본 그는 유난히 하얀 피부를 가졌고, 상당히 말라 보였으며, 그리고 소름 끼치는 미소를 보이고는 이내 사라졌다.


20대 초반부터 그런 일을 겪고 어떤 생각까지 들 정도였냐면, '남자처럼 머리를 짧게 자르고 다녀야겠구나.' 하면서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지 않아도 되는 굉장히 짧은 숏컷을 강행했다.



그들과 위험한 만남을 겪으며 느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 어두운 저녁, 인적이 드문 한산한 거리였다.

- 가로등 불빛이 붉은색이거나, 아예 가로등이 없는 곳이었다.

- 그들은 대부분 눈이 풀려있었으며, 심지어 아파 보이기까지 했다.


예전에 어디선가 가로등 불빛이 붉은색이면, 파란색에 비해 범죄율이 증가한다는 연구결과를 쓴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래서 지금도 밤길을 지나가다 붉은색 가로등이 보이거나, 가로등이 아예 없는 골목길을 만나면 최대한 그렇지 않은 큰 길가로 돌아서 간다.








트라우마 때문인지 황당했던 일화가 있다. 그 일이 있고 얼마 동안의 시간이 흐른 후, 공부를 끝내고 독서실을 빠져나와 서둘러 지하철을 타고 집 근처에 내려 걸어가고 있는데 누군가 멀리서 내 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게 보였다. 덜컥 겁이 났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인적 드문 길가에 자꾸만 내 쪽으로 오는 남자를 보고 발걸음을 멈췄다. 그는 외투 안으로 손을 넣은 채 계속 걸어왔다. 점점 거리가 가까워졌고,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며 순간 피가 또 거꾸로 솟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 어어...'


그 소리를 들은 그는 외투에서 차키를 꺼내고 마치 항복한다는 듯 두 손을 머리 옆으로 펼쳐 보였다.



저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그의 차가 내가 지나가던 길 바로 옆 갓길에 주차되어 있었고, 별생각 없이 차 키를 외투 안에서 꺼내며 오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놀라면서 뒷걸음질 치니 그도 아마 당황하긴 했을 것이다. 그 뒤로 밤길을 다녀야 하는 상황이 올 때마다 한동안 사람이 있든 없든 관계없이 늘 달렸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생존에 대한 본능적인 달리기를 하던 시절이 그때였다.





 



다분히 의도적으로 다가온 불쾌한 소수로 인해 누군가의 호의에도 늘 의심을 하게 되고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길거리에서 스쳐 지나가는 '아저씨'들이 하는 별 뜻 없는 말에도 불편했다. 나는 그렇게 아저씨 증후군 아닌 증후군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조금씩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세상에는 좋은 분들도 참 많으며 그런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닌데, 그동안 내가 모든 다수의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칼날을 세우고 있었구나. 


충격적인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선명해지기도 한다. 그 때문에 누군가에게서 선한 도움을 받았다는 기억은 쉽게 잊히기도 하는 것 같다. 더 자극적일수록 기억이 오래 남게 되는 뇌 구조가 가끔은 신기하다고 여겨질 때도 있다. 우리는 우리가 받은 누군가의 선한 태도와 행동을 늘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 어쩌면 정신건강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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