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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정숙 Jun 22. 2020

지각왕이 말합니다, 게으른 건 다 이유가 있다고

사실은 하기 싫은 거라고



꾸물대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아무도 들리지 않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때가 있었다. 생각해보면 학창 시절부터 마지막 직장 생활을 하기까지 잦은 '지각'을 했다.


고등학교 2학년, 수학 과목을 가르치던 선생님이 나의 담임이었다. 아침잠이 유독 많았던 나는 늘 학교에 지각을 했다. 누군가 지각하는 이유에 대해서 물어보면, 집에서 학교까지 버스로 1시간 거리였기 때문에 너무 멀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사실 그건 자기 합리화에 따른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 사실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담임은 그런 나의 버릇을 고쳐주고자 지각비를 걷기 시작했고, 교실에 늦게 들어올 경우 복도에서 창문이 달린 벽 쪽을 마주 보고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게 했다. 그때 스쿼트라는 운동을 알았더라면 무릎을 조금 더 보호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 특단의 조치가 무색하게도 한 학년을 마칠 때쯤 나의 별명은 '지각왕'이 되어있었다. 지각비를 걷고 아침마다 운동을 시키는 것으로도 나의 고질적인 병과 같은 지각을 막을 순 없었나 보다. 지각비만 해도 학생이었던 그 당시에는 꽤나 큰돈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고2인 학생에게 16만 원이라는 거금의 지각비는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다.








연말이 되자, 수학 과목을 가르쳤던 만큼이나 철저히 계산적이었던 그 담임은 나와 다른 아이들에게서 모은 지각비를 가지고 반 아이들 전체에게 나누어줄 다이어리를 샀다. 사실 그것에 대한 지분 중 가장 크게 차지한 것은 단연 나의 지각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담임은 그 다양한 디자인의 다이어리를 성적이 좋고 지각도 안 하며, 말 잘 듣는 아이들 순으로 고르도록 했다.


밥 먹듯이 지각을 했던 내가 원하는, 예쁜 다이어리를 가질 수는 없었다. 다른 친구들이 고르고 남은 '그저 그런' 다이어리를 건네받았다. 뭔가 억울하고 부당하다고 느꼈지만 별 내색하지 않았었다. 나는 왜 감정을 숨기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을까.


친구들은 만족스러운 선물을 들며, 내게 장난스레 말했다.




숙아, 다이어리 잘 쓸게.
고마워!





왠지 얄밉기만 한 친구들 사이로 그 대화를 듣는 담임과 눈이 마주쳤다. 나를 보며 입꼬리 한쪽이 올라가 있는 게 보였다. 담임선생님의 미소를 보며 섬뜩해졌고, 절로 쳐진 몸서리에 그만 등을 돌려버렸다.


왜 그토록 잠이 많은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단순히 그것을 '게으름' 때문이라고만 결론지어버렸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가서도 종종 늦은 출근을 했고, 그 때문에 직장 상사에게 모진 말들을 들어야 했다. 퇴사를 결정한 순간부터는 지각하는 빈도가 급격하게 잦아졌다.


마지막 퇴사를 하고나서야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문득 깨달은 사실이 있었다.


게으른 게 아니라 하기 싫은 거였다.








생각해보니 내가 스스로 결정한 것에 대해서는 한 번도 늦은 적이 없었다. 대학을 휴학하고 공무원 공부를 하게 되면서부터는 누구보다 먼저 강의실에 도착해 맨 앞자리를 선점했었다. 그리고는 가장 늦게까지 독서실에 남아 공부를 했고, 다음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하루 공부량을 체크하며 학생 때와는 다른 학구열에 불타오르기도 했었다.


나에게 학교생활은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이따금씩 찾아가는 교내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위안을 얻었을 뿐이었다. 관심이 없는 공부에는 도무지 흥미가 가지 않던 시절이었다.


'무조건 이거 시험에 나와. 그러니까 외워.'라는 일방적 교육에 이걸 왜 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억지로 머릿속에 욱여넣었고 성적에 대한 별다른 목표가 없으니 더욱이 그것에 연연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부모님은 나의 학교 성적으로 한 번도 뭐라고 하신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흥미 없는 공부에 내가 부러 성적을 올려야 할 특별한 이유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한마디로 시험성적에 대한 간절한 목표가 없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더 넓은 조직으로 첫 발을 떼기 시작한 사회 초년생이었을 때도 마찬가지로 특별히 하고 싶은 생각, 더 잘해보겠다는 욕심은 크게 생기지 않았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라는 생각보다는 그저 안정적인 것만을 추구했었는데, 그게 시간이 지나면서 내면에서 탈이 나는 것만 같았다. 무기력증이 생겼고, 의욕이 사라졌으며, 늘 마음이 헛헛했다. 마음이 풍요로운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해야 할까.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잘 사는 건지 알지 못했다. 그저 남들이 다 이렇게 사니까 나도 이렇게 살아야되나 싶기도 했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주입식 교육을 받고, 또 다른 곳에서는 노동의 대가로 매달 받는 월급에 만족하는 그런 평범한 일상들은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다고 느꼈다. 내가 주도하는 삶이 아닌, 주도당하고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꼬리표처럼 늘 따라다녔다.


평범하게 사는 삶조차 쉽지 않다고 말한 누군가의 글을 보며, 그래도 나는 이만큼이면 썩 잘 살고 있는 거 아닌가 싶다가도, '그래도 이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니야.'라는 생각이 반복되었다.


게으름은 두 가지 이유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첫 번째, 하고 싶은 게 없거나

두 번째, 하기 싫거나


두 가지 모두에 해당된다면 무기력증에 빠지기도 쉽다. 이런 감정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 부단히 다양한 시도를 해보았다. 끝을 생각하지 않고 최대한 단순하게 시작하는 것이 중도에 아니다 싶을 때 그만두기가 수월하다. 멈춤에 미련이 남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것은 '포기'와는 별개의 것이다.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지 그렇지 않은 지에 대한 판단은, 단 두 가지로 구별될 수 있는데 그것은 '재미'와 '재능'이다.


조금이라도 재미와 호기심이 생기는 일이라면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그 결과 좋아하는 것과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씩 발견할 수 있었다. 덕분에 게으름이라는 나약한 친구와도 거리를 둘 수 있었다.


스스로 그어버린 한계와도 같은 '평범한 게으름' 속에서 어딘가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일이 존재한다는 것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최대의 행복이자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일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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