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정숙 Sep 28. 2020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얻은 것들

나의 직장생활 고백사


언제부터였을까요. 저의 직장 생활은 일종의 ‘뫼비우스의 띠’와도 같았습니다. 입사와 퇴사를 무한 반복하는 패턴은 부풀었던 기대와는 달리 삶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늘 제자리를 빙빙 돌고만 있는 것 같았죠. 매일 사무실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저 평범한 직원일 뿐이었지만, 하나뿐인 내 인생까지 그저 그런 별볼일 없는 삶으로 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생각들이 늘 마음 한편에 자리하고 있었어요. 아마도 자신감도 자존감도 많이 낮아진 상태가 꽤나 오래 지속되어 있었겠죠.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요.


직장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한다면, 분명 누구나 이런 생각을 갖고 면접을 볼 텐데요.




이 회사에 '오랫동안' 근무할 수 있을 거야, 
최소 몇 년간은.





그러나 입사 후 시간이 흐르고 나면 자의든 타의든 그 생각들이 비껴가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직장을 그만두기 위해 직장을 다닌다.'라는 말이 격하게 공감이 될 정도로 이곳에 뼈를 묻겠다는 고리타분했던 초반의 다짐과는 달리, 더 나은 커리어를 위해 혹은 정신건강을 위해 어느새 '퇴사'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탓에 반복되는 야근과 인간관계에 대한 스트레스를 견디며 지속적으로 회사와의 계약을 연장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정규직으로 전환이 된다고 해도 한 가지 문제 되는 것이 있었는데요. 저보다 더 잦은 야근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주말까지 출근하는 옆자리의 직장동료들에게서 보이던 원형탈모와 중력을 제대로 만난 다크서클, 거친 피부와 함께한 만성피로 증상을 걱정해 주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게 됩니다.





이곳에서 나의 밝은 미래를
기대하기는 어렵겠구나





이 회사 말고는 다른 곳을 향해 갈 탈출구가 없다고 생각해서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도 못한 채 시간만 흘렀었어요. '회사를 그만두면 밖에서 내가 무엇을 잘 해낼 수 있을까.'라는 걱정에 사로잡혀 퇴사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거든요. 직장에서 탈출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저에게 크나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보다 예민했고, 보다 주도적인 삶을 살기를 원했습니다. 회사의 중심에서 당당히 퇴사를 외치고 싶었지만, 현실은 사무실 한구석에서 조용히 ‘퇴사하자'라는 한마디를 나지막이 읊조릴 뿐이었죠.


사실 저는 조직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회사 생활이 쉽지 많은 않았습니다. 첫 입사 때부터 정신이 번쩍 나게 만들었던 직장동료의 텃세, 어떤 회사를 들어가나 존재하던 직장 내 성희롱, 숱하게 들어야만 했던 여성비하적 발언, 사내의 언짢은 소문을 퍼뜨리고 다는 사람으로 오해를 받은 일들까지 꽤나 많은 정신적 고통을 감수하며 직장 생활을 겨우 유지해나가고 있었거든요.


SNS에서 가끔씩 보이던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라'라는 주옥같은 명언들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제게는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어요. 제 작은 그릇으로 인해 조금씩 쌓이던 불만들이 금방이라도 넘칠 것처럼 차오르고 있었고, 그것은 쉽게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끓어오르는 '분노'라는 감정을 바깥으로 표출하기는커녕 오히려 내면의 부정적인 생각들이 안으로만 키워가고 있었죠.








우연히 보게 된 웹툰 드라마 '미생'에 나왔던 대사 한마디가 마음을 콕 쑤셨습니다.


'회사가 전쟁터라고? 밖은 지옥이다.'


수많은 직장인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던, 웹툰 원작이기도 한 그 드라마 속 명대사가 한동안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어요. 미디어가 조장한 불안감에 자꾸만 결정을 미루려는 저의 게으름까지 더해져 이도 저도 못한 채 시간만 흘러가는 시간들이 길어지고 있었죠. 마음 단단히 먹고 회사를 잘 다니는 것도, 그렇다고 호기롭게 퇴사를 고하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의 나날들이었습니다.


겪어보지 않은 일들에 지레짐작으로 겁을 먹고 있던 제 모습을 발견했어요. 어쩌면 제가 느끼기에 삶이 별반 달라진 게 없다고 생각한 이유도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으로 아무것도 해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어요. 불만은 있지만 해소할 생각은 하지 못한 채 말이에요. 다년간의 직장 생활을 통해 세상은 한 가지 사실을 몸소 깨닫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반복되는 깨달음에 종지부를 찍고나니 어느덧 30대가 되었네요.





직장생활은 노력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구나.




매거진의 이전글 제가 누.. 누굴 닮았다고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