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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정숙 May 17. 2020

제가 누.. 누굴 닮았다고요?

직장 내 성희롱, 참으면 병나요.


다년간의 직장생활로 인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차이점을 말하자면 수도 없이 열거할 수 있지만, 반대로 공통점 하나를 꼽자면 그것은 바로,


어딜 가나 존재하는 '직장 내 성희롱'.


분명 회사마다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이 있다. 내가 알기론 분기별로 꼭 해야 하는 자체 의무교육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중소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대기업마저도 교육은 교육일 뿐, 예방되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성희롱의 가해자는 자꾸 잊어먹는가 보다.

성에 관계된 말과 행동으로 상대방이 불쾌감이나 굴욕감을 느꼈다면 그것만으로도 성립이 된다는 것을. 







때는 매달 열리는 부서의 생일파티 날이었다.

중소기업은 생일에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 들을 수 없지만, 대기업은 매달 해당 생일자의 직원에게 경조금을 나눠주는 복지가 있었다. (지극히 개인적 경험으로 그렇지 않은 기업도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퇴근을 앞두고 모두가 웃는 그날, 혼자만 웃지 못하는 상황이 다가왔다. 마치 운수 좋은 날처럼.


커다란 회의 탁자에 빙 둘러서서 준비한 케이크와 음식을 나눠먹는 사이에 부서에 같이 일하던 '차장 1' 이 나를 옆에 두고 다른 '차장 2'와 이야기하는 게 들렸다. 



차장 1 - 근데 OO(나)씨, 누구 닮지 않았어? 



'차장 2'는 그 말을 듣고 나를 쓱 보더니 전혀 모르겠단 표정을 짓자, '차장 1'은 핸드폰으로 닮았다던 그 사람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조금 닮긴 닮은 것 같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는 그저 그러려니 했다.


그 뒤로 이상야릇한 미소와 함께 의미심장한 말이 이어졌다.



차장 1 - 이 여자 'OOOO(영화)'에 나왔었잖아. 닮았나 오늘 한번 다시 봐야겠네 ㅎㅎ



불길한 예감은 왜 항상 틀리지 않은 것일까. 그 영화 제목이 귓가에 자꾸 맴돌았다. 듣기에도 약간 19금 영화 제목 같은 느낌이었다. 그날 잠이 들기 전, 결국 초록창에 그 영화를 검색해봤다. 제대로 각 잡고 만든 포르노 영화나 다름없었다. 소름이 돋아서 결국 잠을 설치고 말았다. 그 차장이 나를 스캔하며 확인해보겠다던 마지막 한마디가 생각나서.






다음날, 

부서에 있던 여직원들에게 잠 못 잔 이야기를 전해주자 기겁을 하며 그런 일이 있었느냐고 했다. 아마도 그 시끌벅적한 곳에서 나는 그저 내 이야기가 들리는 곳에 집중했고,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았을 뿐의 차이였으리라.


가만히 있다간 가마니가 될 것 같았다. 


점심시간이 되었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순진한 표정으로 핸드폰 게임을 즐기던 그 차장에게 다가갔다. 물론 부서의 언니, 동생들 다 데리고서.


정중하게 이야기했다. 


차장님,
어제 그렇게 얘기하신 거
저 굉장히 불쾌해요.
사과하세요.
그리고 다음부터 그런 일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변 눈치를 보며 '내가 언제?'를 연발하던 그 차장은, 옆에 있던 격분한 언니의 입에서 '신고'하겠다는 말이 큰소리로 나오자 그제야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 미안하다. 



그 후로 그 차장은 나의 시선을 피했고, 근처에도 오지 않았다. 






 


성희롱을 당했을 때, 가까운 직장동료에게 얘기하면 반응은 크게 둘 중 하나다.


1. 그저 그러려니 해. 그 사람 원래 그래.

2. 아 미쳤네! 얼른 따지러 가자 그 XX한테. 


경험으로 느낀 것은 실제로 단체의 힘을 무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혼자 'NO'를 외치는 것과 여럿이서 'NO'를 외치는 것은 확실히 다르다. 단체에서 나오는 영향력을 이길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얘기할 같은 동성 동료조차 없는 회사라면, 특히나 그 회사가 중소기업이라면 본인의 정신건강을 위해 얼른 탈출해야 하는 게 맞다. 혼자 감당해야 할 일들이 업무적인 것 외에도 너무나 많아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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