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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 Jun 05. 2016

광화문 연가


광화문 戀歌


5월 어느 날, 우연히 뮤지컬 "광화문 연가"를 예매하려다 몇 년 전 고인이 돼버린 이영훈의 곡을 처음 듣게 되었다. 광화문 연가의 노랫말을 찬찬히 음미해보니 불현듯 50년 전 광화문에 얽힌 기억들이 새로워진다.


광화주변은 철없던 시절 많은 추억이 배어있는 곳이기에, 젊은 날에 방황했던 그 거리를 찾 주말, 아내와 함께 시간여행을 떠나보고자 집을 나선다. 중,고교시절 번질나게 드나들던 종로학원가 골목길과 사춘기시절 기웃거렸던 크라운 제과와 고려빵집들, 무협영화를 보기 위해 열심히 찾았던 광화문모퉁이 극장을 떠올린다.


젊은 향기로 가득찬  광화문 광장

광화문 네거리는 대학본고사를 앞두고 크리스마스 전야(前夜)에 여학생들을 만났던 추억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젊은 날 얄팍했던 주머니를 아는 듯 1970년대 청소년들의 허기를 채워  주었던 광화문 뒷골목 튀김집과 분식점은 개발명분에 의해 사라져버리고 없다.


졸업 후 친구들과 아지트로 삼아 활보하며 다녔던 종각 뒤편건물 2층 시몽다방도 사라졌지만, 그 옛 자리를 찾아 간혹 아내와 만났던 시간들을 회상해본다.


70년대 시몽다방 옛자리

광화문 연가 노랫말처럼 지금도 정동 길에는 그 시절 연극 공연장이 있는지, 아직도 예배 당이 남아있는지 궁금해 하며 40여년 만에 덕수궁 돌담길을 걸어본다. 주말 아침나절 오가는 인파가 드물어 한적한 돌담옆  가로수가 더욱 싱그럽게 다가온다.


예전에는 덕수궁 돌담길을 애인과 함께 걸으면 헤어진다는 풍문이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낙엽이 쌓이는 계절이면 덕수궁 돌담길을 찾았었다. 지금도 젊은 연인들은 여전히 돌담길을  다정하게 걸으며 그들의 사랑을 키워 가리라 여겨진다.


오월 가로수가 싱그런 주말 돌담길

길을 따라 조금 올라보니 젊은 날 추억어린 정동 길에는 다행히도 [정동교회]와 [세실극장]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정동제일교회는 1885년 아펜젤러 목사가 한옥을 구입해 예배를 시작하며 1897년 한국최초 서양식으로 지은 개신교회이다.


한국최초 서양식 정동제일교회

130여 년의 세월을 함께해 온 정동 교회에는 1918년 3·1운동 당시 유관순열사 등이 오르간 뒤에 숨어 독선언서와 각종 유인물을 등사했다는 파이프 오르간이 남아있다. 맞은편에 있는 정동극장은 1908년 한국최 근대 극장이던 원각사의 복원이념 아래 1995년에 건립된 극장이다.


최초 근대극장에 복원된 정동극장

지난날 정동 길 중 가장 기억이 남아있는 곳은 세실극장이다. 1976년 휴학을 신청한 뒤 군 입대를 기다리던 중 연극을 하던 친구를 따라나서 유명 탤런트들의 공연연습을 보며 신기해했던 추억의 세실극장도 들러보았다. 반세기 세월이 흘렀지만 세실극장은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며 무상한 세월의 공백을 잠시나마 잊게 해준다.


76년 연극을 관람했던 세실극장

정동길을 내려와 근대역사가 살아 숨 쉬는 덕수궁을 찾았다. 덕수궁은 조선시대 2차례 궁궐로 사용된 곳이다. 임진왜란 때 정궁(正宮)이 소실돼 피난서 돌아온 선조가 월산대군 사저를 임시궁궐로 삼았으며, 고종이 러시아공관으로 피신했던 아관파천(俄館播遷) 후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정궁으로 삼아 정무를 처리하기도 했다.


덕수궁을 지키는 수문장 행렬 교대식

당시에 궁궐은 정동과 시청 앞 광장을 아우르는 규모로 현재의 3배에 이르는 궁역이었지만, 고종승하 이후 상당히 축소되었다. 덕수궁주변 정동일대는 19세기말 각국 공사관이 들어서면서 개화이후 건립된 서양식 교회와 학교 및 외국공관들의 근대문화가 결집돼 지금도 남아있는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선조가 임시궁궐로 삼았던 中和殿

대한제국 황족과 귀족자녀의 학교로 사용했던 경운궁(덕수궁) 양이재(養怡齋) 자리는 고종승성공회성당이 매입해 지금까지 고풍스런 성당을 이루고 있다.


이 건물은 화강석과 붉은 벽돌을 아울러 쌓은 비교적 큰 규모의 3층 건물로, 서양인에 의해 일제침략기인 1926년 5월 완공된 로마네스크양식 건물이라는 점에서 백여년 세월을 함께해온 역사적 의의가 큰 건물이다.


고풍스런 건축물 대한성공회성당

광화문 네거리로 향하는 길에는 구(舊)국회의사당 건물이 남아 서울시의회가 들어서있지만, 옛 국제극장 자리에는 롯데관광 본사가 있는 광화문빌딩이 우람하게 들어서 있다. 추억어린 화문 주변을 40여년 만에 둘러보니 뻥 뚫린 듯 가슴 한 켠으로 세월의 화살이 스쳐간다.


젊은 날 추억어린 광화문 네거리는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있지만 사라져버린 국제극장시민회관의 정경(情景)이 문득 그립다. 1970년대 통기타 가수공연을 보려고 시민회관을 찾았던 기억과 "파리는 안개에 젖어"라는 영화타이틀에 매료되어 극장가를 서성였던 시절이 아련하다.


국제극장 자리에 들어선 광화문빌딩

세월 속에 사라진 시민회관은 1972년 겨울에 화재로 소실돼 그 자리에 세종문화회관이 들어 섰고 국제극장은 1985년 종영을 고하고 광화문 네거리에서 자취를 감췄다.


보석처럼 빛나며  5월처럼 푸르렀던 우리네 청춘과 함께했던 그 광화문 네거리는 이제 낯선 풍경과 낯선 사람들의 반짝이는 젊은 향기로 가득 차 있었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머릿속을 떠나지 못하는  光化門 일대 기억들은 내게 추억의 연가가 되어 영원한 낡은 풍경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아내와 함께 걸어본 덕수궁 돌담길



<광화문 연가>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해갔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 길은 아직 남아있어요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


  향긋한 오월의 꽃향기가 가슴깊이 그리워지면

  눈 내린 광화문 네거리 이곳에

  이렇게 다시 찾아와요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 길은 아직 남아있어요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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