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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 Nov 14. 2016

가을날에  등고

■  가을날에 등고(登高) 

음력으로 9월 9일이 되면 가을의 가절(佳節)이라 하여 당나라 사람들은 산에 올라 수유열매를 머리에 꽂았다 한다. 이는 재앙과 액운을 쫓는 풍습이었는데, 양력으로 보면 10월 상강(霜降)쯤 이니 절기상 한로(寒露)와 입동(立冬) 사이로 아침과 저녁기온이 내려가고 서리가 내리기 시작할 무렵인바, 가을빛이 한창 짙어질 때이다.  

    

가을빛 속에서 까만 머리위에 얹힌 자그맣게 반짝이는 붉은 빛 수유열매를 떠올려보며, 10월의 마지막 날에 노란 가을풍경을 기억 속 한편에 담아본다. 11월 입동(立冬)이 지나가면 청명한 하늘아래 무르익은 이 가을빛 단풍은 짙어질 대로 짙어질 것이고, 점차 차가워질 공기와 함께 가을은 더욱 발 빠르게 우리 곁을 떠나갈 것이다.

     


중국인들은 음력 구월 초아흐렛날인 중양절(重陽節)에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높은 곳에 올라, 청명한 가을날 단풍이 든 풍경을 보고 즐기며 시와 술을 함께 나누는 등고(登高)라는 풍속놀이를 즐겼다.  

   

등고 풍속은 후한 때 사람인 환경(桓景)이 집안사람들에게 각각 붉은 주머니를 만들게 하고 수유(茱萸)를 가득 채워 팔에 꿴 후 9월 9일 높은 곳에 올라 국화주를 마시게 하여 집안의 큰 재앙을 피할 수 있었다는 고(故事)에서 비롯돼 중국의 풍속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다.

      

조선후기에 홍석모가 세시풍속들을 정리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한양풍속에 가을날 남산과 북산에 올라 먹고 마시며 즐기는데, 이는 등고의 옛 풍속을 따른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청풍계(靑楓溪; 인왕산자락 골짜기), 후조당(後凋堂), 남산,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이 단풍구경에 좋다"라고 하여 서울의 단풍구경에 좋은 산들을 소개하고 있다.


높은 곳에 올라 가을을 즐기는 것은 환경의 고사와 함께, 재액을 피하고 장수를 바라던 것으로 전해져 온 한편, 조선시대 선비들의 단풍구경은 시와 술을 즐기는 가을철의 풍속놀이로 이어져 오고 있다.   

   

하지만 성당시대(盛唐時代) 두보(杜甫)는 56세 중양절을 맞아, 등고(登高)라는 시제를 통해 스산한 가을바람에 낙엽이 떨어져 흩어지는 높은 언덕에 앉아  무상함에 대한 심회(心懷)를 읊었다.   



風急天高猿嘯哀    세찬 바람에 하늘은 높은데 원숭이의 휘파람이 애달프구나

渚淸沙白鳥飛廻    물 맑고 모래 흰 곳엔 새가 돌아오는데

無邊落木蕭蕭下    끝없이 지는 나뭇잎은 쓸쓸하여라

不盡長江滾滾來    장강은 잇달아 돌아오는데

萬里悲秋常作客    쓸쓸한 가을엔 멀리 떨어져 항상 나그네 되네

百年多病獨登臺    한 평생 많은 병을 지고 홀로 대에 오르노라

艱難苦恨繁霜鬢    온갖 어려움에 귀밑머리 하얗게 세어지고

燎倒新停濁酒杯    이제는 늙고 쇠약해 탁주마저 끊어야 한다네



인생백년 반이 지나버려 귀밑에 서릿발이 희끗희끗하던 두보는 고향에서 만리길이나 떨어져 나그네 신세를 면치 못하며, 풍요로운 가을 중양절에 홀로 산위에 올라  만추(晩秋)의 세상을 내려다보았을 것이다.


은 산의 바람은 세차고 산위에서 보이는 하늘은 높기만 한데 병들고 이룬 것 없는 두보자신의 오십 평생처럼, 발아래 듬성듬성 매달려있는 낙엽들이 세찬바람에 천지사방으로 흩어져 버렸다.

     

두보는 고독하고 힘든 간난(艱難)의 자포자기상태에서 술을 마실 만도 한데, 시구(詩句)의 마지막에 이르러 술을 끊는다고 했으니 즐거운 가절에 조차도 두보는 술을 마실 수 없었으리라.


나이 들고 타향살이에 몸이 망가져 더 이상 술을 마실 수가 없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산위에 선 그의 초로(初老)에 심(心事)가 칼끝에 선 것처럼 비장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두보는 세상 가난한 사람이 자신만이 아니기에 혼자만의 슬픔과 괴로움을 같은 처지에 놓여있는 사람들과 나누려 했을 것이다. 그는 천하에 힘없고 가난한 한사(寒士)들을 보듬어 줄 천 칸짜리 집을 어디서 얻을 수 있을 런지 고민했던 선비였다.

     

때문에 가절(佳節)의 계절에 만리 밖에서 고향을 그리며 신세를 한탄하면서도 세찬바람이 몰아치는 산정(山頂)서 술을 끊고자했다.


불공평한 현실 속에 고통 받는 한사가 비단 자신뿐만이 아니었기에, 그는 외로움과 고독을 술로 푸는 대신 가장 높은 곳에서 스스로를 담금질 했을 것이다.

     

비바람에도 큰 산처럼 끄떡치 않고 모두가 쉴 수 있는 천만 칸 집을 지어 천하에 어려운 한사들을 보듬어주려 했던 두보에게, 행복이란 민초들과 더불어 만들어가는 세상이었을 것이리라.


최근 달 반째 이어지는 상실과 허탈감으로 대한민국이 온통 어수선한 이 가을날, 천이백년  두보의 가을은 어떠했을지 적잖은 생각을 해보게 된다...    - 丙申年 십일월 열 사흗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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