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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 Jan 06. 2017

그랜드캐니언(Grand Canyon)

잿빛 추억 컬러링 (05)


■  미 서부 그랜드캐니언 기행


우리세대가 미국여행을 하게 되면 누구나 가장 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가 [그랜드캐니언]일 것이다. 지금은 기억이 희미하지만 고교 2학년 시절 국어 교과서에 나온 "천관우" 선생그랜드캐니언 旅程記를 읽으며 작가의 웅장한 필체에 반해, 어른이 되면 꼭 가보겠노라 다짐했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고교시절 당시만 해도 미국이란 나라는 영화 속의 먼 나라로만 생각했고, 보통사람들미국여행이라는 것은 생각하기도 힘든 시절이었다. 따라서 1970년  학창시절을 보냈던 베이비붐 세대들이 미국여행을 계획한다면 국어교과서 덕분에 제일먼저 그랜드캐니언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랜드캐니언을 바라보며 “K형”으로 시작하던 그의 묵직한 감탄의 표현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데, 당시 눈앞에 펼쳐지는 장엄한 그랜드캐니언에 대한 상상의 나래는 그 시절 내가 갈수 없는 머나먼 곳이었기에 더욱 꿈을 간직하며 언젠가 가보리라 다짐했을 것이다.



7월 27일 점심식사를 마친 뒤 상상을 초월하는 초자연의 웅대함을 볼 수 있다는 설렘으로 그랜드캐니언 탐방 길에 나섰다. 라스베이거스에서 경비행기에 탑승해 방문지를 향해 가는데, 하늘 아래로 보이는 곳곳의 지형 설명을 한국어로 상세히 안내 방송했던 것을 보면 92년 당시에도 이곳을 찾는 한국인이 꽤나 많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랜드캐니언]은 미 애리조나 州 북부에 있는 거대한 대협곡으로 콜로라도 강이 콜로라도 고원을 가로질러 흐르는 곳에 20억 년 전 형성됐다 한다. 협곡의 길이만도 447㎞이고 깊이 또한 1,500m라니 드넓고 깊은 협곡은 그야말로 불가사의한 경관을 보여주고 있다.



비행 착륙 후, 천혜(天惠)의 절곡(折谷) 앞에 서노라니 잠시 가슴이 벅차오른다. 깎아지른 절벽과 형형색색의 기암괴석 아래 유유히 흘러가는 콜로라도 강의 어우러짐은 장엄한 파노라마를 연출하는데 손색이 없었다. 하지만 나의 필설로 그랜드캐니언을 표현하기에 역부족임을 느끼며 천관우(91년 卒) 선생여정기를 일부 옮겨본다.



"K형,  황막의 미개경(未開境) 애리조나에 와서  이처럼 조화의 무궁을 소름끼치도록 느껴보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랜드캐니언의 그 웅혼 괴괴한 절승(絶勝)을 그 한 모퉁이나마 전해드리려고 붓을 들고 보니 필력이 둔하고 약한 것이 부끄러워집니다. K형, 애리조나 주 피닉스(Phoenix), 불사조의 이름을 지니는 이곳에 온 것이 5월 7일. 기온은 화씨 90도를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내리쬐는 강열한 햇볕에 시야에 들어오는 것이라곤 메마른 암괴로만 되어 있는 듯 기묘한 스카이라인을 이루는 미국남부 특유의 산형과 거리마다 우거진 높다란 종려(棕櫚) 가로수입니다. 이 피닉스에서 다시 대협곡의 관문인 '홀래그태트'까지 자동차로 여섯 시간의 행정(行程)입니다." /중략/...



천관우 선생이 [그랜드캐니언]을 찾은 시기는 1952년 미네소타 대학 신문학과에서 약 1년간 연수를 할 때였다. 그는 이때 그랜드캐니언 여정기를 썼고, 이후 글이 명문(名文)으로 인정받게 되면서 1968년도 국어 교과서에 실리게 됐는데, 선생 나이 28세에 이 글을 썼다는 것이 도저히 믿겨지질 않는다.


지금이야 이곳이 관광지로 개발돼 라스베이거스에서 경비행기에 올라 직접 그랜드캐니언 공항으로 쉽게 갈 수 있지만, 1952년 선생이 그랜드캐니언을 오를 때는 콜로라도 강 지류를 따라 랜드로버 차량 또는 말을 이용하며, 꽤나 오랜 시간에 걸쳐  험난한 대탐험 여정에 나섰을 것으로 미뤄 짐작해본다.



"눈앞에 전개되는 아아 황홀한 광경! 어떤 수식이 아니라 가슴이 울렁거리는 것을 어찌할 수 없습니다. 이 광경을 무엇이라 설명해야 옳을지. 발밑에는 천인(千仞)의 절벽, 확 터진 안계(眼界)에는 황색, 갈색, 회색, 청색, 주색으로 아롱진 기기괴괴한 봉우리가 흘립(屹立)하고 있고, 고개를 들면 유유창천(悠悠蒼天)이 묵직하게 드리우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550m의 협곡 남안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K형 나는 이것을 보려 여기에 온 것입니다. 별안간 일진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 닥치며 옷자락을 휘몰더니 휘날리는 눈.



멀리 이 협곡의 대안(對岸)인 포웰 고원을 운무의 품안에 삼키고 기발한 봉우리를 삽시간에 차례차례로 거두고, 마침내 눈앞에 보이던 마지막 봉우리를 삼키고 망망한 운해. 휘날리는 눈보라. 그리고 숨 가쁜 강풍. 회명(晦冥)하는 천지 속에 나는 옷 젖는 것도 잊고 서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당시 先生은 변화무쌍했던 기후와 웅건한 대자연 앞에 선채로 자신만의 고독에서 오는 두려움을 감내하며, 그 험준한 神의 섭리 속으로 떠났을 것이다. 그렇게 어렵사리 오른 그랜드캐니언 정상에서 바라봤을 선생의 감회와 웅혼(雄渾)이 여정기에 녹아있어 후대에게 큰 감동을 전하고 있다.



"염천지지유유(念天地之悠悠: 천지의 유유함을 생각하노라니) 독창연이체하(獨愴然而涕下: 홀로 처연하여 눈물이 흐를 뿐이네) 라고 한 옛사람의 글귀가 선뜩 머리를 스치면서 까닭 모를 고요한 흥분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이 대고원에는 태초에 강이 있었다.  



강은 흐르면서  양안(兩岸)을 침식(浸蝕)하고 고원은 서서히 융기(隆起)했다. 기슭을 깎는 강류(江流)에 협곡은 점점 넓어지고 거기에 풍상우로(風霜雨露)의 쉴 새 없는 조탁(彫琢)으로 산형은 점점 변해졌다. 그동안이 약700만년 내지 900만년..." /하략/



시생대 이후 수십억 년 동안 강에 의해 침식된 계단 모양의 협곡에 생성된 색색의 [지층]들과 [기암괴석]들은 낮보다 일출이나 일몰 때  더욱 풍부한 색감을 드러내 훨씬 아름답다고 한다. 



[그랜드캐니언 국립공원]에는 황량한 듯 메마른  콜로라도 소나무를 비롯한 수천 여종의 식물이 서식한다는데, 간간히 눈에 띠는 커다란 반 갈색 다람쥐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다람쥐(좌측)와 함께

이곳은 콜로라도 강줄기가 격렬하게 흘러든 깊은 협곡 안, 거대한 바위에 새겨진 세월의 흔적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이요, 태초 대자연에 숨소리를 호흡해 볼 수 있는 살아있는 지구역사와, 자연의 불가사이를 함께 느낄 수 있는 곳임에 틀림없었다.



지난날 내가 바라보았던 그랜드캐니언은 미국 속에, 가장 미국답지 않은 원시적인 곳으로 느껴졌다. 초자연(超自然) 앞에 인간의 존재가 얼마나 미미한 것인지를 깨닫게 해주었던 하루해가 어느덧 저물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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