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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 Jan 20. 2017

추억의 카세트테이프


추억의 카세트테이프


최근 SNS에 나이 들어 대접받는 일곱 가지인 [7-UP]이 회자되고 있는데, 그중 [Clean up]이 [Give up]보다 먼저 실행해야 할 덕목으로 소개된 바 있다. 내용인즉 나이가 들어갈수록 집과 환경을 깨끗이 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최소 반기별로 주변을 정리정돈하고 또한 자신에게 필요 없는 물건을 과감히 털어내라는 것이다.


2010년 정년퇴직을 했던 나는 30여년 직장생활 동안 틀에 매여 지겹도록 입어왔던 정장 양복을 과감히 던져버리고, 이후에는 편안한 세미 슈트(Semi suit)로 스타일을 바꿨다. 몇 년 전에는 먼지 쌓인 앨범을 끄집어내 이미지 파일로 스캐닝한 뒤 대부분의 사진은 없애버리고, 先親의 사진을 포함해 내 평생추억을 3권의 앨범으로만 남겨두었다.


작년에는 수십 년 소장해왔던 때 묻은 책들과 거실 장식품도 대부분 정리하며, 이제는 보이기 위한 화려함보다 간소하지만 오히려 넓어진 쾌적한 공간을 즐기고 있다. 회갑을 넘기며 나름 많은 것들을 비워가고 있지만, 아직도 장롱 깊숙이 처박혀있는 옷가지를 더 과감히 정리해야 비로소 Clean up의 완성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아 꾸준히 아내를 설득하고 있다.



은퇴시기를 맞아 일상에서의 소소한 즐거움은 시니어들 만에 행복일수 있는데, 늘 새로운 호기심을 충족해가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을 듯하다. 얼마 전 잡다한 소품들을 정리하던 중 장롱꼭대기에 올려놓은 먼지쌓인 상자를 꺼내보니, 중고교와 군복무 시절 받았던 엽서편지들 그리고 대학입시 수험표와 고교시절 간간히 써왔던 낡은 일기장 등이 수북이 담겨있었다.     


더욱 반가운 것은 1979년 말년병장 때 받았던 [신병 신고식]과 1985년 [결혼식 주례사] 녹음테이프가 있고, 2001년 기업은행 [사내방송]에 인터뷰 했던 카세트테이프도 남아있다. 그간 까맣게 잊고 살아왔던 젊은 날 못다 이룬 아쉬운 순간들을 떠올리다 보니, 테이프 속 내용들을 듣고 싶은 충동과 함께 지금껏 간직돼 온 추억의 애장품(品)에 소중함이 절로 느껴진다.


1985 / 2001

하지만 카세트 녹음기가 없어 서둘러 동네 쇼핑센터를 돌아보니 아날로그 녹음기를 판매하는 가게가 없다. 하기야 소니 워크맨이 유행하던 시절이 1980년대 중반쯤 이었으니, 30년 지난 요즘 소형레코더 판매점이 없어진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저런 궁리 끝에 옛 고물녹음기를 수리해 파는 곳이 있으리란 믿음을 갖고 주말에 청계천 세운상가를 찾았다.


세운상가에 밀집했던 전자상가가 오래전 용산으로 이전했지만, 아직도 일부 수리공들이 남아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종로에서 퇴계로까지 이어지는 상가는 새로운 상권으로 변해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인터넷을 뒤져보니 소형카세트가 통신판매 되고 있는데, 자동차조차 카세트와 CD플레이어가 사라지고 있는 시대에 카세트가 생산되고 있는 것이 사뭇 신기할 뿐이다.


새롭게 구입한  카세트

디지털음악이 대세인 요즈음 아직도 소형카세트가 생산되는 까닭은 카세트테이프 같은 아날로그 제품을 소유해 지난날에 향수를 느끼려는 소비자들이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아날로그 사운드를 선호하는 젊은이들이 생겨나며 LP 레코드판을 찾는 사람들도 늘어난다고 한다. 디지털시대에 아날로그 기기는 세월에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는 듯하다.


주문한 카세트가 도착해 수십 년 전 낡은 테이프를 넣고 옛 사연들을 들어보니 지나온 시간들에 그리움과 세월의 무상함이 배어나온다. 문득 테이프에 담긴 아날로그 음성을 디지털로 바꾸면 재미있을 듯하여, PC와 카세트를 연결해 테이프 내용을 MP3 파일로 전환해 보기로 했다. 



음성파일 전환작업을 마친 후 SNS계정인 [브런치]와 [페이스북]에 올리려 하니, 이곳 계정은 음반 저작권문제로 민감한 탓에 MP3 파일을 올릴 수 없도록 전면 제한돼 있었다. SNS계정에 파일을 올리기 위해 이러저런 궁리 끝에 적당한 이미지와 음성(MP3)을 mixing한 뒤, 오디오(MP4)로 재편집해 카세트테이프(아날로그 파일)를 디지털 파일로 복원한 뒤 스마트폰과 USB 메모리에 담을 수 있었다.


새해를 맞아 또 한살이 더해졌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은 즐겁고 흥미로운 삶으로 연결되어진다. 이제 옛 추억이 돼버린 카세트테이프를 직접 디지털 파일로 복원해 스마트폰을 통해 공유할 수 있는 세상에 살다보니, 初老에 들어서도 멈추지 않는 호기심은 늘 자신을 발전해가도록 일깨우는 듯 싶다.  - 丁酉年  正月    



▶  IBK기업은행 사내방송 인터뷰 

MP4 디지털로 복원된  카세트테이프(9분)


▶  군신병 신고식  

공군 교육사령부(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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