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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 Dec 30. 2016

그리움

■  그리움


동지(冬至) 넘긴 기나긴 겨울밤 자정을 넘긴 시각, 괜스레 잠을 놓친 아내가 문득 내게 묻는다. 오래전 고인이 되신 모친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자신 중 누가 더 소중하게 느껴지냐는 것이다. 젊은 날부터 고부간에 갈등을 슬기롭게 넘기며 맏며느리의 역할을 잘 해왔던 아내가, 이미 회갑을 넘어 초로(初老)에 들어선 남편의 의중이 갑자기 궁금했던 모양이다.     

 


인간이 만든 언어 중 가장 고귀한 표현이 사랑이란 말이겠지만, 부모와 자식 그리고 아내에 대한 사랑이 어찌 다 같은 사랑이리오. 모친에 대한 사랑은 좋은 기억보다는 아린 기억과 함께 아련한 그리움이 배어있는 소중함이요 아내의 사랑은 그저 고맙고 미안함이 배어있지만 말로 다할 수 없는 소중함이라 얼버무리며 순간을 모면해 본다.


실상 우리네 부모세대를 생각하면 일제강점기 해방 후 혼란과 남북전쟁으로 인한 참담한 고통으로 이어진 가난했던 삶이 연상된다. 그 어려웠던 시절에도 자식에 대한 유별난 사랑과 한없는 희생을 감수했던 우리네 어머니들을 떠올려보는데, 나이 들어가며 한해를 마감할 때쯤이면 그리움이란 것이 시간을 먹고 자라듯 내게 찾아들어 옛일을 회상케 한다.   

   

푸르른 오월, 산위에 올라 비릿한 연록의 향연에 취해 상념에 젖다보면 홀로 남겨진 느낌에 문뜩 산 아래 세상의 그리움이 다가올 때가 있다. 노란 은행잎이 뒹구는 길모퉁이를 생각 없이 걷던 젊은 날의 그리움과 눈 내리던 겨울 찾아가던 따듯한 찻집의 낡은 기억처럼 때로는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이 되살아나 내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게 한다.



어린 시절 동네어귀에 앉아 마을 장에 다녀오시는 엄마를 기다리며 추위도 잊고 서성이던 기억이 남아있다. 장날이 되면 고무신 한 짝이라도 얻어갖기 위해 엄마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칭얼대며 늘어지다가, 뿌리치는 엄마를 따라가지 못하고 장터에서 돌아오실 시간을 가늠해 동네어귀에서 눈이 빠지게 기다리던 모습을 떠올린다.


지난날 뜻하지 않은 인사부 발령으로 쉼 없이 바빴던 서른 후반, 일 년에 네 차례나 이어졌던 인사작업과 잦은 야근으로 주말이면 밀린 잠을 보충하기에 급급했던 그 시절, 갑자기 세상을 등지신 어머니의 기억이 명절이 가까워 올 때면 애틋한 마음이 되어 가슴 한켠 구석이 저며 온다. 돌아보면 지나치게 직장에 억매여 살았던 지난세월이 때로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일에 치이고 부대끼던 그 시절 마흔 줄을 넘기며 아버지마저 유명(幽明)을 달리하자, 선친과 함께 해왔던 날보다 외롭게 살아갈 날들이 깊어진 세월의 오르막길로 막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20세기를 마감했던 그 시절, 설명절을 앞두고 선친을 떠올렸던 “그리운 나의 아버지”를 옮겨본다.

 


아버지! 듣고 계세요?   


글을 올리려 작심하고 나니 왜 이리 눈 밑이 촉촉해지는 걸까요. 아버지 이제 며칠 후면 설날 이예요. 몇 년 만 더 사셨더라도 새로운 세기(世紀)를 함께 하실 수 있었는데 왜 그리 황급히 떠나셨어요. 부모님이 아니 계신 今年 설은 왜 이리 쓸쓸하게 느껴지는 걸까요.


설이 다가오면 어머니와 아내는 음식 장만에 정신없이 바빠지고 설날 당일엔 온가족이 함께 모여 웃고 떠들어대며 즐거워하지만 이날이 지나면 항상 힘들어하던 아내를 보면서 가족을 원망했던 지난날들이 새삼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아버지! 생각나세요?


제가 자라면서 아버지께 큰 꾸지람을 들은 것은 대학입시를 앞두고 새벽 공부도중 잠시 담배를 피우다 들켰을 때였어요. 학교를 그만 두던지 담배를 끊던지 양자택일하라 시던 그 말씀이 지금도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 있습니다.


늘 부족했던 아들이지만 매사를 믿어주고 대견스럽게 여기시던 아버지의 그 크나큰 사랑을 이제야 조금씩 깨달아가게 되는군요. 제가 아버지를 힘들게 했던 시절도 많이 있었으련만 당신의 그 불같은 성격에 저한테 만큼은 항상 너그러우셨어요.


아버지! 가르쳐 주세요


요즈음 아침 출근길에 제 자신을 반성하는 기도를 하고 있어요. 최근 들어 아이들에게 큰소리로 나무라며 화를 내는 일이 늘다보니 이 아이들이 지금의 내 나이가 되었을 때, 제가 간직하고 있는 것과 같은 아버지에 대한 소중한 추억이 없을 것 같아 걱정이 됩니다.


아버지가 제게 베풀어 주셨던 한없는 포용과 사랑의 마음을 저에게 가르쳐주세요. 그래서 아이들의 부족함을 당신께서 제게 주신 사랑으로 제가 당신의 자손을 감싸 안을 수 있도록 아버지 도와주세요. 대화와 사랑을 나눠주는 아이들의 좋은 아버지로 기억되게 노력할 수 있도록...


아버지! 죄송해요


아버지가 안 계신 지금에 모든 것을 비로소 후회하고 있음은 몇 년간 당신을 모셨다는 것만으로 자만했던 까닭이겠지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늘 외로우셨을 아버지의 모습이 이 순간 더욱더 가슴깊이 저며 옴은 아버지 생전에 불효했던 자식으로 늘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까닭이겠지요.


언제나 아이들이 우선이었던 내리사랑이 얼마나 무모한 행동이었던지 이제야 깨닫게 되는군요. 지난날 아버지가 쓰시던 유품을 바라보면서 자식으로서 평생을 다해 노력해도 견줄 수 없는 아버지의 삶 앞에 끝없는 부끄러움과 지금이라도 지팡이를 의지한 채 문을 열고 들어오실 것 같은 아버지의 환영(幻靈)에 한없는 회한(悔恨)만 남을 뿐입니다...  <2000년 02월 03일>



어느새 회갑을 한해 넘긴 세월의 끝자락에 머물며 그간 많은 것들을 견디며 살아온 덕에 하늘이 내 자식들에게 평안함을 주실 것이란 믿음으로 한 살 나이를 보태려 한다. 깊어가는 이 겨울날, 가고 오지 않는 지난시간 속에 그리움이 점차 커져만 가는 아쉬움으로 남는데, 이제 나도 누군가에게 그리움으로 남는 소중한 인연을 이어가기를 구정(舊正) 새해 앞에 소망해 본다.     - 丙申年 섣달 그믐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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