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주 Feb 01. 2017

아마추어 세시봉


■  아마추어 세시봉(C'est Si Bon)


뭇 사람들이 인생에서 후회하는 것이 있다면, 살면서 했던 일들보다 살아오며 하지 못했던 일들 일 것이다. 이제라도 후회 없는 삶을 원한다면 Bucket list를 만들어, 비용이 적게 들고 실행 가능한 것부터 먼저 시작해 보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나의 경우 버킷리스트 다섯 가지 중 2가지는 실행에 옮겨 진행하고 있고, 나머지는 아직 그 계획을 매년 이월하고 있는 중이다.



그것은 퇴직 후 일상에서의 소소한 느낌들을 묶어 한권의 책으로 만들고자 했던 바램과 은퇴시기를 맞는 시니어를 위한 재정관리 강의를 하고자 했던 열망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첫 번째, 글을 쓰기에 앞서 어떤 테마를 중심으로 내 느낌을 써나갈 것이며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어떻게 독자들에게 전달할 것인가를 고민했지만, 모든 걱정은 흘러가는 시간이 해결해 주었다.


brunch에 연재하고 있는 글

현재 지면으로 출간된 책을 대신해 Social Network을 통해 불특정다수의 독자들과 함께 다양한 글들을 공유하며 호흡해가고 있다.


한정판매로 제한될 수도 있는 오프라인 독자층을 벗어나, 시공(時空)을 초월한 스마트폰을 통해 3가지 테마를 중심으로 한 글들이 무제한의 독자들에게 조석(朝夕)으로 읽혀지고 있으니, 버킷리스트 중 첫 번째는 나름에 소망을 이룬 셈이다.

    

두 번째, 강의에 관한 열망은 당초목표를 세울 때 어찌 실행해야할지 막연하기도 했지만 꾸준한 NPO(Non Profit Organization) 활동을 하면서 뜻밖에 기회가 주어졌다.


평소 타인과 함께 공유하고자 했던 생각을 원고로 정리해 NPO관련 기관에서 무보수로 시작했던 “노후재무설계” 강의가 알려지며 점차 금융/공기업의 시니어 수강생들로부터 큰 공감을 얻어가고 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시니어들이 "사회공헌활동"을 통해 그들이 경험하지 못한 나눔의 삶에 의미를 전해주고 싶은 바램도 남아있다.


그밖에 여전히 실행하지 못한 버킷리스트를 채워가려하니 마음은 청춘인데 어느덧 체력에 대한 자신감이 예전만 못한 듯하다. 때문에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는 것은 퇴직하며 가고 싶었던 남미여행을 실행에 옮기지 못한 일이다.


마야문명과 잉카문명 탐방을 위한 남미여행을 버킷리스트 1순위에 매년 올려놓지만, 함께 동행 할 멤버를 찾지 못해 계획을 미뤄놓고 있는 중이다.


나머지 이루고 싶은 열망은 연주에 관한 것으로 나이 들어 여전히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모여 작은 무대에 오르는 것과 머리가 희어지면 아코디언을 배우려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반백을 이루고 있기에 아코디언은 순위에서 밀려나 있는 셈이다.     


Happy Senior 시상식 무대

1970년 중학3년을 마감하던 12월 어느 날 신당동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기타연주를 보게 됐다. 호기심이 가득했던 나는 친구에게 몇 가지 기타코드를 익히고, 다음날 용돈을 몽땅 털어 청계천을 찾아 콜롬비아 기타를 구입했다.


고교진학 후 통기타 가수의 연주를 흉내 내며 연습에 몰입했는데, 당시 2년간 독학으로 배웠던 연주경력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고교를 졸업했던 1974년 봄, 대학생활이 익숙해지기도 전에 유신독재를 반대하는 학내시위가 거세졌다.


연일 시위가 확산되자 어수선한 학내분위기를 핑계로 고교시절부터 듀엣을 했던  친구와 함께 기타를 둘러매고 여기저기 많은 곳을 싸돌아다녔다. 당시에는 별도의 연습실이 없었기에 푸르른 오월 경희대 캠퍼스 숲속으로 들어가 연습하다보니 나름 여고생 팬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1974년 활동 무대 [맷돌}

시간이 날 때면 간혹 생음악을 연주하는 무대였던 명동 르실랑스(Lesilence)에 들러 젊은 가수들에 연주를 훔쳐보며 통기타 가수에 꿈을 키워보기도 했다.


한때 MBC에 근무했던 선배가 그 시절 대학축제 전문MC를 했는데, 그를 따라다니며 모교와 여대 축제행사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청와대 33경비단 부대행사 무대에 오르기도 했었다. 1974년 당시에는 대학가요제가 없어 방송국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공부는 뒷전으로 한 채 무절제로 치닫던 대학1년 생활이 끝나자 아버지의 단호한 반대에 부딪쳐 활동을 중단하며, 젊은 날 음악에 대한 꿈을 완전히 접고 말았다. 졸업 후 가정을 꾸리며 직장에 올인 했던 30여년 세월동안, 지난날의 음악활동은 철없던 시절에 낡은 추억이 돼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 시절 중도하차했던 연주에 대한 꿈은 이제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되었다. 가능하면 조그만 연습실을 마련해 통기타를 다루는 지인을 모아 함께 연습을 하며, 세시봉과 같은 아마추어 무대에 오르는 작은 꿈을 꾸어본다.


때마침 최근 1960년대 활동했던 세시봉 출신에 가수들이 전국콘서트를 순회하며 시니어의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그들을 좋아했던 베이비부머 세대들 또한 세시봉 통기타 가수들을 통해 젊은 날에 짙은 향수를 즐길 수 있었다.


지금은 주변 지인들 각자가 마무리해야 할 일들이 남아있기에 여전히 분주하지만, 머지않아 본격적인 은퇴시기에 접어들게 되면 시니어보컬을 결성해 무대에 오를 수 있기를 기대해보며, 슬그머니 내 인생의 Bucket List 맨 위로 올려놔 본다.  - 丁酉 2017年 이월


▷ 追伸: 그 해 유월, 꿈에 그리던 페루 [마추픽추]올랐다.   



매거진의 이전글 추억의 카세트테이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