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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 Nov 07. 2017

짙어가는 가을, 정선의 추억

■ 정선의 가을추억


시간은 마치 시위를 벗어난 화살과 같아, 어느새 은퇴한지도 몇 해를 훌쩍 넘겨버렸다. 명예롭게 직장을 마감하면 이곳저곳 많은 여행을 함께하자고 입버릇처럼 내뱉으며 오랜 세월 참고 기다려주었던 아내에게 큰소리 쳐왔건만 무엇이 그리 분주했던지 정작 그 약속을 지키기 못하였다. 


가을은 깊어가고 추위가 다가오기 전 서둘러 아내와의 좋은 추억을 남기기 위해 인터넷을 뒤적이며 계획을 세우다보니 혼잡한 주말여행보다는 한적히 다녀올 수 있는 평일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평일에 맞춰 때마침 동행할 수 있는 절친(切親) 부부와 일정을 맞춰 정선과 그 주변 관광지를 둘러보기로 하고, 짧은 일정이지만 좀 더 많은 곳을 찾아가기 위해 1박2일로 여행을 떠나본다. 



강원도 정선은 매년 10월 한 달여간 “민둥산 억새꽃 축제”를 정선군에서 열고 있기에 여행지의 첫 코스를 민둥산으로 잡았다. 이곳까지의 가장 빠른 길은 영동고속도로를 지나 중앙고속도로로 진입하여 제천IC에서 영월을 거쳐 정선군 남면으로 진입하는 길이다.


▷ 민둥산 억새풀     


민둥산은 전국 5대 억새풀 군락지 중 하나로 최대 규모의 군락지를 이루고 있는 곳으로,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그 아름다운 풍경을 알리고 또한 가을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매년 가을 등반행사를 열고 있다. 



인파가 몰리는 축제행사가 끝나는 다음날인 31일을 출발일로 정해 호젓한 산길을 올라 본다. 민둥산 제1B코스 입구인 증산초등교가 해발 500m이다보니 완만한 코스를 택해 11시경 산행을 시작하여 3.2Km를 약 2시간에 걸쳐 편안히 오를 수 있었다. 



해발 1,119m의 정상에서 바라본 민둥산은 산 전체가 둥그스름하게 끝없이 펼쳐진 광야와 같은 느낌으로 약 20만평 가량이 억새꽃으로 덮여 있어 그 모습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은빛파도가 일렁이는 민둥산 정상의 억새풀 군락은 농익은 가을의 정취를 흠뻑 호흡해 볼만한 곳이었다.



정상에서 김밥과 간식으로 점심을 마친 후 하산해 숙소로 향했다. 숙소는 다음날 코레일에서 운영하는 레일바이크를 타기위해 이곳 인근의 “양지펜션”을 예약했다. 숙소에 짐을 풀어 놓고 오후 4시경 “오장폭포”를 둘러보았다.  


노추산 옆의 오장산(733m)에서 쏟아져 내리는 폭포는 수직높이가 127m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 폭포라 한다. 올가을의 가뭄으로 물이 적은 때임에도 가파른 암벽을 따라 떨어지는 하얀 물줄기는 따사로운 가을 햇볕아래 시원함을 더해주는 광경이었다. 


숙소로 돌아와 여주인께 사장님이라고 부르니 수줍어하는 친절한 펜션 주인장께서 직접 재배한 배추를 잘라다 주며, 된장과 김치뿐만 아니라 흔쾌히 저녁밥까지 무료로 제공해주는 덕분에 여량면사무소 옆의 정육점에서 삼겹살과 목살을 넉넉히 사들고 들어와 펜션 주인부부와 함께 저녁을 하게 되었다. 


▶ 정직하고 친절한 양지펜션 

주변 펜션 숙박료가 4인기준 최소 8만원인데, 이곳만 유독 5만원을 받기에 궁금해 물어보니 남편이 말년 공무원이고 또한 장사를 목적으로 운영하지 않는다고 한다. 언제부턴가 시골의 인심이 사라지고 팍팍해 보이는 농촌으로 인식해 왔는데, 이렇듯 순수하고 인정 많은 분들이 아직 남아있으니 여전히 우리네 세상은 아름다운 듯싶다. 



10월 마지막 날의 가을밤에 장작불을 피워 놓고 초승달 밑에서 초로(初老)의 펜션 주인부부와 약주를 건네며 늦은 시간까지 순박한 대화에 빠져들어 본다.


▷ 레일바이크  


여행 이튿날, 아침식사는 간단히 라면을 들고 서둘러 레일바이크 탑승장에 도착해 8시 30분 바이크에 올라섰다. 당초 4인승을 계획했지만, 좀 더 재미있어 보이는 2인승으로 나눠 타고 구절리를 출발해 아우라지까지 7.2km를 신나게 달려본다. 



아내와 함께 레일바이크를 타고 몇 개의 터널을 통과하며 50여 분간 달리는 동안 철길양쪽에 늘어선 기암절벽과 아름다운 송천계곡에서 흘러나온 맑은 강물이 눈에 들어온다. 


아침 안개에 가려진 산등성이 아래, 가을에 물든 노랗고 붉은 나무들과 정겨운 농촌풍경을 바라보며 쌀쌀한 아침공기 속에서 정선만의 아름다운 풍경에 흠뻑 빠져들어, 문득 여유로운 시간이 주는 행복에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이곳의 철로는 지난날 아우라지를 거쳐 구절리까지 달렸지만 산업의 변화로 기차가 더 이상 달리지 못하게 됐고, 오랜 동안 기적이 끊긴 철길로 남아있었지만 새로운 레일바이크가 들어서면서 지난날 정선아리랑에 대한 애절한 사연을 담았던 절경을 재연해 보이는 듯 느껴진다. 



되돌아올 때는 어릴 때나 보았던 증기기관차를 연상케 하는 풍경열차가 관광객을 출발했던 구절리역까지 수송해주어 편안히 되돌아 올 수 있다. 이어 “정선 아라리촌”으로 향했다. 


이곳은 정선의 옛 전통가옥을 재현한 곳으로 너와집과 돌집을 비롯해 귀틀집, 저릅집 등 다양한 형태의 정선가옥 민속촌을 이루고 있다. 특히 박지원의 소설인 양반전을 소재로 한 양반들의 허세에 찬 모습을 곳곳에 해학적인 동상으로 꾸며놓아 당시 계급사회의 모순된 사회상을 꼬집어 보여주고 있다.


▶ 평민의 수염을 잡고 허세를 부리는 양반(아라리촌)


▷ 대관령목장 


발길을 돌려 평창군 횡계리에 있는 “대관령삼양목장”으로 향해본다. 대관령목장 도착 전 2Km지점의 비닐하우스로 된 간이식당에서 메밀칼국수와 감자부침개로 허기를 채운 뒤 출발하는 목장의 길목은 1km 정도가 비포장도로로 되어있어 다소 불편함이 따른다. 


대관령삼양목장은 1972년 대관령일대에 600만평의 초지를 개간하기 시작해 1985년에 비로소 완성되었다고 한다. 이곳은 무공해 청정지역으로 해발 850m~1,400m의 광활한 산지(山地) 초원에 900여두의 젖소를 키우는 동양최대의 목장이며 남한 전체면적의 1/5,000의 규모라고 한다. 


▶ 동해전망대에서 바라본 대관령목장

셔틀버스로 정상에 올라 해발 1,140m의 동해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백두대간에서 흘러내려 오는 겹겹산줄기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이었다. 능선을 따라 수십 개가 설치된 거대한 풍력발전기 또한 이곳의 볼거리를 더해주고 있다. 


푸른 잉크를 풀어놓은 듯한 맑은 가을하늘 아래 잠시 시원한 바람과 함께 아름다운 초지를 바라본다. 이곳은 비록 그랜드캐년의 웅대함에는 견줄 수 없겠지만, 광활한 초원에 펼쳐진 아름다움과 탁 트인 시원함은 대관령의 자연만이 지닌 빼어난 풍광일 듯싶다. 


▶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촬영지

셔틀버스로 중간지점에 하차해 양과 젖소 방목장을 둘러보며 드라마 촬영지도 들러보았다. 이곳에서 “가을동화”와 “태극기 휘날리며” 등 많은 영화를 찍었다하는데 영화 “연애소설”과 2008년 방영된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촬영지였던 한 그루 나무 앞에 서는 순간 마치 동화 속 풍경으로 내가 빠져드는 느낌마저 든다.


▶ 대관령삼양목장의 젖소 방목장

스케치북에 붓으로 갓 그려낸 듯 한 맑은 가을하늘과 푸르른 초원의 어우러진 풍경은 동행했던 친구부부의 기억 속에도 오래도록 남아있을 것 같다. 오후 4시가 넘은 시간, 원주의 ”소롯길“ 찻집까지 72Km를 달려 찻집 창밖으로 어둑해지는 가을풍경을 바라보며 대추차 한 잔에 쌓인 여행의 피로를 풀어본다.


▷ 정선여행 일정 


 <1일 코스>

1) 10월 31일 8시 출발/ 11시 10분 증산초교 도착 (3시간) 

  ☞ 증산초교강원도 정선군 남면 무릉리 412-2

2) 민둥산 제1B코스 3.2Km/ 1시간 50분 산행 (13시 30분 점심)

   15시 30분 하산완료 

3) 숙소 이동

  ☞ 양지펜션강원도 정선군 여량면 구절리 304-20

  ☏ 010-4375-6777 (033) 562-5278  (4인실 5만원)

4) 오장폭포  

  ☞ 노추산정선군 여량면 구절리

5) 저녁   

☞ 펜션에서 해결 또는 레일바이크 탑승장 [여치카페 레스토랑] 돈까스, 스파게티


<2일 코스>

1) 11월 01일 아침: 라면

2) 레일바이크 (구절리~아우라지) 7.2Km (셔틀열차로 귀환 : 2인용 .2만2천원)

  ☞ 강원도 정선군 여량면 구절리 290-4 구절리역  033) 563-6050~3

     시간표: 08:40/ 10:30/ 13:00/ 14:50 (동절기 1일 4회 운행)

3) 아라리촌 전통가옥

  ☞ 강원도 정선군 정선면 애산리 560 

     입장료 무료   033) 560-2578

4) 점심: 아라리촌 내 굴파집 (순두부, 칼국수), 아라리촌 주막 (곤드레 나물밥)

5) 대관령삼양목장 

  ☞ 강원도 평창군 횡계2

     입장료 : 1인 7천원       

6) 소롯길: 원주시 신림면 성남리 905  ☏ 033) 763-4071

7) 18시 30분 원주 출발

8) 21시 도착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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