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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 Sep 18. 2015

백두산 등척기(04)

백두산 천문봉에서 바라본 天池


■  백두산 등척기(登陟記) - 백두산 천문봉에서 바라본 천지(天池)


7월 17일,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7시 30분 서둘러 연길을 출발하여 백두산 북파(北坡)코스와 가장 가까이 있는 도시인 이도백하(二道白河)까지 280km 거리를 달려간다. 


연길시내를 빠져나와 용정으로 들어서며 [세전벌]이라는 들녘이 나타나는데, 가이드는 이곳의 땅이 비옥하여 중국내 에서 최고의 상등급 농작물이 생산된다고 설명한다.


세전벌 들녁

용정(龙井)의 기온은 서울보다 4℃정도 낮지만 일조량과 농수가 풍부하고 밤낮의 일교차가 크다보니 풍작을 이루는 듯 보인다. 산이 보이지 않는 푸른 들녘이 대평원을 이루고 그 사이로 흘러드는 시냇물은 빠른 유속으로 보아 농수량의 풍족함을 미뤄 짐작하게 한다.


끝없이 펼쳐지는 옥수수밭

푸르른 전답사이로 간간히 농가가 부락을 이루고 있는데 조선족 농가는 지붕에 처마를 세워  중국의 농가와는 확연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특히  조선족의 주택은 깨끗하고 단정해 보여 옛 선조들이 일궈놓은 간도 땅에 그 후손들이 깊이 뿌리내리고 사는 모습이 엿보인다. 2시간을 달려 휴게소에 잠시 머무는 동안 일행은 먼저 급한 일을 보는데, 야외 화장실에 문이 없다. 



가이드 설명에 의하면 이 휴게소 사장은 여행객의 재미를 더하기 위해 정면이 뚫려있는 화장실과 남성용 변기통이 없는 재래식 형태를 유지한다고 한다. 휴게소에는 장뇌삼을 판매하고 있는데 우리일행은 곡주 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듯 무심히 옥수수만 나눠먹고는 이내 차에 오른다.


개성만큼이나 자세도 제각각

이어지는 시멘트도로 길가에는 푸르른 숲이 우거져 있다. 어느덧 산등성 포장길로 올라서는데 백두산 관광지원 때문인지 산길 도로에 아스팔트를 덧입히고 있었다. 달려가는 좁은 길가 주위에는 온통 옥수수 밭을 이루고 있는데, 최근에는 연료로 정제하기 위해 러시아로 수출까지 한다고 전한다. 


어느덧 [화룡]을 지나 안도현 [송강]에 들어서니, 시내모습이 60~70년대를 연상케 한다. 이윽고 "이도백하" 표지판이 보이는데 이도백하 진(鎭)까지는 4시간이 소요된다. 이곳에서 금토백 맥주를 곁들인 점심을 마치고 다시 30분을 달려 12시 30분 백두산 산문(山門)에 도착했다.



이도백하(二道白河)는 두 갈래로 갈라진 하얀 물살을 뜻한다고 전한다. 이곳에서부터 조금씩 오르막길이 시작되는데 의외로 완만해 보인다. 출발부터 4시간 동안 날씨가 화창해 안도했지만 백두산 정상은 날씨변덕이 심해 예측불허라고 한다.



백두산 초입 [북파산문]에서 대형 셔틀버스로 갈아타고 30분, 완만한 72굽이 고갯길을 17km쯤 달려 주봉(主峰) 승차장에서 하차한다. 


백두산입구 신축 산문(山門)

그곳에서 또다시 10인승 봉고로 환승해 약 10km 꼬불꼬불한 급경사 길을 20분정도 달리는 동안 오르내리는 차가 꼬리를 물고 이어질 정도로 백두산을 찾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다.


백두산 등자락이 구름에 덥힌 환승 승차장 

백두산은 2,000m이상의 고산지대로 10월에서 5월까지는 눈이 내리고 천지가 결빙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6월부터 9월까지가 입산이 수월한 시기라고 한다. 중국을 여행할 때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이번 여행도 역시 예상대로 엄청난 곡예 수준으로 비탈길을 올라가 여행객의 가슴을 조이게 한다.



백두산을 2,000m쯤 넘어 오르자 갑자기 구름이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2,600m 정상에 이르기까지 1m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욱한 구름 때문에, 일행 모두는 큰 실망감으로 탄식을 자아냈다. 


14시경 도착한 백두산정상 주차장은 구름 떼가 몰려들어 산 아래 조망이 확보되지 않는 채 구름이 자욱했지만, 천문봉 정상에는 하늘이 보이는 듯 했다.

 

구름 떼로 산아래가 조망되지 않는 백두산정상 주차장

생각을 정리해보면 천문봉이 2,670m이니 해발 2,000~2,600m 사이에는 구름바다가 드리워져있고, 구름위로 천지를 둘러싼 봉우리자락 끝이 100여m 솟아있는 셈이다. 


저만치 천문봉으로 향하는 계단에는 수백 명이 경쟁하듯 오르고 있다. 서둘러 계단을 따라 정상을 향하니 구름위로 솟아있는 천지는 천우신조(天佑神助)의 맑은 하늘을 띄고 있었다. 



연중 265일 눈비가 온다는 천지는 그 모습을 볼 수 있는 100일중 절반은 구름에 가려 볼 수 없기에, 4대가 덕을 쌓거나 서너 번 찾아야 한번정도 볼 수 있다하니 금차 회갑기념 등정은 진정 축복받은 일정이었다.


백두산의 풍경 중 최고로 꼽히는 천지의 수면은 해발 2,200m이고, 수심은 396m이며 천지에는 북한에서 방류한 산천어가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화산지형 특유에 푸석푸석한 땅을 밟으며 천문봉정상에 오르니 신비롭기 그지없는 옥빛 천지가 눈앞에 펼쳐진다.   


천지를 감싸안은 봉우리(좌측)와 하산길(우측)이 대조를 이루는 변화무쌍한 백두산 날씨




기암절벽 봉우리 안에는 하늘과 맞닿아 경계가 모호해 보이는 천지(天地)의 물이 청옥보다 더 곱다랗게 잠겨있다. 깎아지른 벼랑 아래로 잠깐씩 내비치는 태양이 수면위로 찬란한 빛을 내려놓고, 바람에 잔잔히 퍼지는 물결이 눈 아래 펼쳐지는데, 천변만화(千變萬化)의 신령한 색체에 경건한 침묵만이 가슴에 잠긴다.


파란하늘에 빗기어 걸려있는 흰 구름은 천지물빛과 함께 봉우리를 둘러싼 신성한 정기(正氣)를 빚어내는 숭고한 광경으로 펼쳐져 이승에서의 절경(絶景)을 이루는 듯하다. 태초에 천지개벽과 함께 풍우(風雨)가 천지둘레 기암을 흔들고, 호숫가에는 휘도는 운무(雲霧)가 자욱했을 것이리라.


하늘과 맞닿아 그 경계가 모호한 天地    

찰나, 눈을 감고 가슴으로 전해지는 상서롭고 신비한 천지수면에 손을 적시다 마침내 마음을 열어 슬쩍 빠져 들어본다. 천지를 중심으로 각기 위용을 뽐내는 높고 낮은 수많은 봉우리마다 절경 아닌 것이 없고, 기암을 이루지 않은 것이 없어 보인다.


광활한 그랜드캐니언이 장엄한 모습이요 장가계 천자산이 비경(秘境) 그 자체라면, 모진 풍파를 견디며 수천 년 세월에 변주(變奏) 되었을 백두산의 천지는 숭엄한 모습으로 내게 다가온다.  



1712년 접반사군관 등 조선관원은 청국파견사 목극등과 함께 혜산진(惠山鎭)을 출발해 열흘간을 강행군하여 백두산 천지(天池)에 오른 뒤 그곳을 내려와 2,200m 고지 분수령에 정계비를 세웠다 한다. 2백여 년 뒤 육당(六堂) 최남선은 백두산 정상에 올라, 천지의 진경(眞境)을 경이로운 필설로 남겼다.


당시 선조들이 하루에도 120번씩 변한다는 험준한 산간험지를 오르며 몸소 겪었을 변화무쌍한 자연에 대한 두려움이 얼마나 컸을지 헤아려본다. 백두산정상까지 봉고로 올라, 수백 개 계단을 딛고 천지를 바라보는 현대인의 감동이 그 옛날 원초적 등척 끝에 이뤄냈던 옛 선인(先人)들의 벅차올랐을 감격과 어찌 비견(比肩) 되리오.



선연(仙緣)이 아니고서는 백두산 천지의 천부 자연(天賦自然)에 조화를 몇 장의 사진에 담아 전달하기에 그 깊이를 넘지 못하는 바이다. 1926년 최남선은 백두산 근참기(覲參記)를 통해 박학다식한 문장으로 천지의 경이로운 참모습을 거침없이 써 내려갔다.


『신비만의 세계 하나가 문득 거기 넙흐러져 있구나! 자광(紫光)으로, 금색 으로, 오색으로, 칠채(七彩)로 가진 도약무도(跳躍舞蹈)를 다하다가 홱 젖혀지고 와짝 열려지는 것은 어느 틈에 우주만물이 덧없는 현상과 같이 변화한지도 모르게 얼른 전생(前生)해진 새파란 늪이 둥그러니 움푹 파인 아득한 발아래 신비한 물결이 괸 것이다.


출처/ 임성환 작가/ 전 기업은행 지점장

"거룩"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잘 모르지만 직각(直覺)으로 저 늪을 형언하기 위하여 생긴 말임은 의심이 없을 것이다. 크게 불면 크게, 작게 불면 작게, 바람 부는 대로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저 호면(湖面)을 보아라. 


물결이 이는 족족 색외(色外) 색으로만 변전 무상하고, 심하면 한꺼번에 일어난 물결이 천이면 천, 만이면 만이 제각각 한 가지 색채씩을 갖추어 가졌음을 좀 보아라!



저 조화가 도무지 어디서 나는지를 생각해 보아라. 고인이 이르기를 대지의 물은 오색이라 하고, 오색의 고기가 산다고도 하고 그 속에는 신룡이 들어 있다고도 함이 모두 진실로 우연한 것이 아니다. 


더구나 일절 종자의 고장(庫藏)이라 하여 천지라고 일컬었음도 과연 우연이 아니다. 천(天)이 아니시고야 누가 저 조화를 마음 대로 부릴 것이냐?』



백두산은 크게 삼용과 지용(支龍)인 십이용으로 이루어졌는데, 삼용이 기복(起伏)해 작은 용들을 만들어 냈다. 장군봉(將軍峰)에서 좌선하던 용이 백운봉(白雲峰)으로 이어지며 천문봉(天文峰)을 펼쳤다고 한다.


천지주변 봉우리 중 백두산 동남쪽 북한영토에 있는 장군봉(2,749m)이 가장 높은 일룡이요, 이룡은 중국 쪽의 천지 동북부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인 백운봉(2,691m)으로, 서파에서 올라가며, 삼룡인 천문봉(2,670m)은 북쪽에서 제일 높은 화구로, 북파에서 오를 경우 천문봉에서 천지를 보게 된다.     



백두산은 천지를 가운데 두고 동서남북 네 곳으로 오를 수 있는데, 그 중 동파는 백두산 최고봉인 장군봉을 품은 일대로 북한에서만 오를 수 있다. 남파 또한 북한의 허가를 받아, 제한적인 출입이 가능하다고 한다.


따라서 트래킹이 가능한 중국 령 백두산 정상은 이도백하에서 접근하는 북파와 송강에 접근해 1,422개 계단을 오르는 서파가 있는데 현재 개발사업은 북파지역에 집중돼 있다. 북한쪽의 장군봉에는 천지로 내려가는 아래위로 구불구불한 흰색계단이 있는데 멀리서 바라보는 모양새가 마치 흰색의 실선같이 느껴진다.  



백두산 천문봉에 올라서자 인산인해의 물결로 천지주변은 온통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너나할 것 없이 천지를 배경으로 멋진 흔적을 남겨야한다는 조급함으로 인파를 밀쳐내고 사진 찍기에 급급하다.


함께한 동기일행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그나마 하산하는 길, 물끄러미 천지에 비쳐지는 봉우리들의 청량한 정기를 가슴에 담아 내려왔다. 하지만 시간에 쫓기어, 통일에 그 날을 한번쯤 염원해보는 여유를 갖지 못했던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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